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들로 May 20. 2018

늦게 찾은 사랑을 제때 표현하기
<그대를 사랑합니다>

혼영일년 5月 : 혼자서 알게 된 가족 4

몇 해 전 대한민국 가족 응원 캠페인을 기획했었다.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가족 구성원 5인을 응원하는 힐링영화 특집이었다. 질풍노도 아들에게는 <완득이>, 취업대란에 허덕이는 딸에게는 <내 깡패 같은 애인>, 욕망이 사라진 엄마에게는 <마마>, 만성피로 아빠에게는 <즐거운 인생>, 애정결핍 할아버지에게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편성하면서 시청자들이 가족 구성원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시간을 마련코자 했다. 


고향에 내려갔을 때 부모님께서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고 계셨다. 

어머니가 고구마를 쪄서 가져다주면, 다이어트 중인 아버지가 소파에 누워 드시면서 영화를 보셨다. 

토요일 아침, 두 분이 고구마를 드시며 내가 편성한 영화를 오붓하게 보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같이 보면서 아버지가 영화 속 만석(이순재)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경상도 남자답게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부엌을 들여다보는 일은 평생 없으셨고, 어머니가 차려준 밥만 먹고 무뚝뚝하게 TV만 보는 게 일상이었다. 영화를 보던 그때도 아버지는 어머니가 찐 고구마를 냉큼 받기만 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과연 알고 있었을까. 당신도 만석처럼 얼마 뒤 부인을 떠나보내게 된다는 사실을.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만석은 부인을 사별로 떠나보낸다. 

부인을 늘 타박하던 만석은 부인이 암에 걸리자 그제야 후회한다. 항암으로 힘든 부인 옆에서 뒤늦게 애정을 표현하지만, 때는 늦었다. 만석은 항암 중 부인이 그토록 마시고 싶어 하던 우유를 부인의 산소에 뿌린다.

  

아버지도 참 바빴다. 평일에는 늦은 근무로, 주말은 산골 요양원에 운전해서 항암 중인 어머니를 보고 오셨다. 연로한 나이에 체력적으로 부치셨을 텐데 힘들다는 표현은 없었다. 아버지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주말에 요양원에 갈 이유가 없어졌다. 

또 몇 년이 지나 평일에 회사 갈 이유가 사라졌다. 

경상도 남자는 혼자가 됐다. 

 

요즘 고향에 내려가면 그 남자는 설거지를 하고 계신다. 꽤 잘 하신다. 

스스로 고구마도 쪄서 드신다. 소파에 누워 TV 보다가 그대로 잠드시기도 한다. 

그러면 그냥 이불을 덮어드린다.

  

나는 알 수 없다. 늘 같이 먹던 고구마를 혼자 먹는 기분을 알 수 없다.  

수 십 년 곁에 있던 반려자가 사라진 빈자리를 알 수 없다.  

처음부터 혼자였던 나는 끝내 혼자가 된 아버지를 알 수 없다.   

원래 혼자였으면 가끔 쓸쓸하지만, 나중에 혼자가 되면 매일 쓸쓸한 걸까.  

이것도 추측일 뿐 나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 옆에 있어도 말없던 남자가 이젠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만 안다. 


 

만석은 송이뿐(윤소정)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만석이 이뿐이 사는 집 창문에 돌을 던지는 장면이 있다. 

글을 못 읽는 이뿐에게 일일이 그린 동네 지도와 시계 그림을 건네고는 거기서 보자며 씩 웃고 떠난다.

부인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만석이 이제 새로운 사랑을 위해 노력한다.  

첫 데이트를 약속하는 장면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만석처럼 사별하셨으니, 이제 송이뿐 같은 분을 만나셨으면 좋겠다.  

아버지에게 '송이뿐'이 송이 뿐이었으면 한다.  늦게라도 누군가를 만나 제때 사랑을 주고 표현하셨으면 한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  


한 번은 늦으셨지만 두 번째는 잘 하시리라 믿는다. 

그럼 갈 때마다 내게 건네는 찐 고구마를 이제 그분께 주시겠지. 


사실 나는 감자가 더 좋다. 



#. 둘이 있다가 혼자가 되면 더 외롭다. 그래서 홀아비들은 왠지 짠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승의 날에는 카르페 디엠 <죽은 시인의 사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