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태생부터가 아닐까
고치지 못하는 고질병이 있어요. 소비입니다. 벌어서 쓴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요. 문제는 벌지 못하는데 아니, 벌지 않는데 쓴다는 것입니다. 벌기도 전부터 썼어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요. 비단 저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10원 하는 땅콩캐러멜을 그리도 좋아했고요, 50원 하는 사탕, 젤리, 100원 하는 초콜릿도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네, 문제는 10원도 50원도 100원도 없었다는 거죠. 돈이 없으면 안 먹어야 되는데 밥을 굶는 것도 아닌데 할머니 지갑에 손을 대기도 하고요. 누가 뭐라도 하나 사준다 치면 간도 쓸개도 빼 줄 것처럼 가서 모래알 한알 만한 뭐라도 얻어먹고 그랬었어요. 그때는 그냥 다 그런 줄 알았고 자존심 따위 아니 그런 단어도 몰랐습니다. 아주 한참 크고 나서야 주전부리에 집착하는 것이 원 없는 사랑을 받지 못함과 연결된다는 짐작을 할 뿐이죠.
아이는 주전부리를 좋아하지 않아요. 이걸 이해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연히 어린아이들은 단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닌 걸 알게 되면서 아직도 달고 사는 저를 돌아보게 되었고요. 그렇게 내린 결론이 아주 어릴 적 흔히 육아서에 나오는 36개월까지의 시간이 저에게 꽤나 외로움의 시간이었나 보다 짐작할 뿐입니다. 허한 마음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었는데 그게 단 거였던 거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단거 마니아 입니다만 조금 더 넓어져서 이제는 필요 없고 필요 있어도 당장 사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소비하는 습관으로 번졌습니다. 이걸 왜 사는지 그냥 예쁘니까 혹은 너무 싸잖아 혹은 있으면 언젠간 쓰니까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이것저것 사고 버리고를 반복하고 있더라고요. 가계부도 써봤고 카드도 다 잘라봤고 제 딴에는 이런저런 시도를 했던 것 같은데 40살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러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채워지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네요. 이제 더는 유년기를 탓할 나이가 지나고도 지났는데 게다가 돈도 안 벌면서 남편이 버는 돈을 이렇게 저렇게 쓰고 있으니 자존감은 더 내려가고 남편에겐 미안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요.
유튜버가 그러더라고요. 소비로 너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저는 소비로 저를 증명하려 했다는 생각조차 못했는데 여전히 나를 증명할 무언가를 찾는 중인 건가 싶기도 하고요. 학창 시절에는 항상 부족한 용돈이었기에 어떻게든 아무리 멀어도 굳이 친척집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렇게 받은 용돈을 모아서 대단한 걸 사느냐 옷도 신발도 아닌 역시나 단거 사 먹는 것에 다 썼습니다. 일하면서 벌 때는 잘해서가 아니고 운이 좋았던 것인데 무지함이 가져온 실수로 제 그릇 이상의 돈을 벌면서 소비가 더 커졌었고요.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가 되면서 벌이가 제로가 된 상황인데 하루가 멀다 하고 마트 구경을 갔고요. 할인한다고 잔뜩 산 식재료는 버리는데 더 큰돈이 들었고요. 바지가 천 원이라며 맞지도 않는걸 사서 욱여넣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어휴, 그때의 나야, 왜 그랬니 싶은데 여전히 그러고 있으니 이거 정말 어떻게 고치죠.
이 글은 일종의 고해성사입니다. 앞으로는 소비를 줄이겠습니다 뭐 이런 건 아니에요. 어차피 못할걸 알고 있어요. 적어도 한 번은 더 생각해 보고 사겠습니다 공표하는 거죠. 먹는 것도 사실 맛있는 음식 얼마나 많아요. 끝내주는 디저트들도 매일 쏟아져 나오니까요. 그냥 당장 몇 천 원 안 하니까 이 정도는 괜찮잖아 하는 그런 마음을 좀 버리고 싶어요.
왜 우리가 그렇잖아요. 학생들이 공부해야 하는 거 알죠. 근데 하기 싫을 때 꼭 그러잖아요. 왜 해야 되냐고요. 살아보니 대부분에서 왜라는 질문이 맞지 않는 거 같아요. 당장 몇 천 원 이거 왜 아껴야 되는데 새벽기상 왜 해야 되는데 핸드폰 그만보고 책 읽으라고 왜 그래야 되는데 빵이랑 커피 말고 건강한 식단을 왜 먹어야 되는데 지금도 안 아프고 괜찮은데.
'왜'가 들어가서 좋은 질문들도 많은데요 안 하고 싶은 거 안 먹고 싶은 거 안 입고 싶은 거에 왜 를 붙이면 기가 막히게 안 할 이유가 생기더라고요. 사실 글은 왜 써야 되나요 안 써도 상관없잖아요 당장 돈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요.
그러니 앞으로 해야 하는 일에는 '왜'를 붙이지 말 것. 안 해도 되는 일에만 '왜'를 붙여볼 것.
이 어려운 난관을 헤쳐나가다 보면 글이 돈이 되는 미라클을 경험하거나 '고객님 잔액 부족이세요'라는 말은 안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웃음 나는 상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