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사욕의 장
며칠 전 공개수업이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교실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올해는 교실 뒤에 서서 볼 수 있다고 하니 설레었어요.
그간 S가 불평을 쏟아냈던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도 볼 수 있겠고 새로 바뀐 짝도 볼 수 있겠네 하고는 10분 먼저 도착했습니다.
이미 많이들 와계셨고 아이와는 눈인사를 마치고 귀퉁이에 섰습니다.
수업 주제는 '말'이었고 왜 예쁘고 고운 말을 써야 하는지 알려주셨어요.
부모님이 와 계신 것이 얼마나 부담일까 싶었는데 웬걸요.
얼마나 말대답을 꼬박꼬박 하는지 내 자식 남의 자식 할거 없이 '아우, 조용히 좀 해라'라는 말이 입천장까지 나왔는데 내뱉을 수는 없었습니다.
집에 와서 '애들은 애들인가 더 크면 대답도 안 하겠지'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요.
수업의 피날레는 '누구' 한테 '어떤' 말을 듣고 싶은가에 대한 발표였어요.
(40분이 이렇게나 길었던가요.)
선생님께서 예로 들어주신 말은 '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라던지 '친구에게 난 네가 좋아'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같은 훈훈한 결말이 예상되는 것들이었는데요.
시작부터 S는
"용돈 줄게 라는 말을 엄마에게 듣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지갑에 있는 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입니다."라고 발표해서 다들 웃어버렸어요.
덕분에 훈훈함이 아닌 사리사욕의 장이 열렸습니다.
"오늘은 학원 쉬어도 된다는 말을 엄마에게 듣고 싶습니다."
"요즘 살쪘다고 간식을 못 먹게 하는데 마음껏 먹어라는 말을 아빠에게 듣고 싶습니다."
"이번주는 받아쓰기 시험 안 본다 라는 말을 선생님께 듣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는 유튜브 마음껏 봐도 된다는 말을 엄마에게 듣고 싶습니다."
이 친구들 보통이 아니었어요.
돌아가며 발표하는데 아직 순서가 오지 않은 친구들이 다급하게 지우고 다시 쓰는 모습이 왜 이리 귀엽던지요.
저녁때 집집마다 무슨 얘기가 오갔을지 예상은 되지만 공개수업 덕에 짜릿한 몇 시간쯤은 보냈을 겁니다.
아직은 부모님이 학교에 오는 것이 마냥 즐거운 아이들과 애쓰신 선생님께 감사와 사랑을 보냅니다.
덕분에 많이 웃었고 이렇게 글도 쓰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