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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율 Sep 11. 2019

요괴 고양이가 되어도 네가 좋아

루시키의 지하다방







니나야,


오늘 새벽에 일을 마치고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불안하고 거북한 마음이 들었어.

마치

피곤의 끝을 달리던 5년 전, 겨우 자려고 누웠는데 무언가 불안하고 찜찜한 기분이 든다 했더니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가 와,

"은영아 하오가.." 하던 그 새벽 같았어 오늘.


언니는 아직도 하오가 먼저 멀리간 날을 떠올리는 게 많이 힘들어

그 날의 기억도, 그 사실 자체도

떠올리면 무너질 것 같아서 항상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흐트러트려


그래서 문득 널 생각한 거야


너도 이제 나이가 많아져 언니가 보러 갈 때마다 점점 더 약해져

예전처럼 계단을 내려와 언니를 마중 오지도 못하잖아

언니가 작업하느라 책상 앞에 앉으면 야옹 하고 뛰어 올라와 품 안에 안겨 방해하지도 못해서,

네가 발목을 살짝 깨물어 언니 나 왔어하면 너를 안아 올려 방해할 수 있도록 언니가 꼬옥- 안아주잖아



네가 하오한테 먼저 가버리면 아마 언니는 또-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네가 나에게 얼마나 사랑스러운 고양이인지 사람들에게 말하는데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그래서 지금도 엉엉 울면서 한글자씩 쓰고 있지만 힘을 내서

너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해.








너는 처음 온 날부터 정말 활발한 아기 고양이였는데,

노란색 털 뭉치가 분홍색 코로 킁킁 냄새를 맡으며

말랑말랑한 발바닥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것이 아주 사랑스러워서

우리는 만장일치로 너를 "니나"라고 부르기로 했었어.

어디서 주워듣기로 그게 어딘가의 나라 말로 "귀엽다, 사랑스럽다, 아름답다"라는 뜻이라고 했거든.




하오랑 너랑 나는 셋이 함께 오래 살았잖아

그때는 언니가 많이 아팠을 때라 항상 병원에서 돌아온 날은 울곤 했는데

그럴 때면 너희 둘은 언니 양 옆에 딱 붙어 있어 줬지

너는 아기 때부터 항상 상냥하고 따뜻한 고양이였어.




너의 목소리는 아기 때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갈라져있었고 중성화를 한 후에는 많이 통통해져서

사람들은 울음소리도 이상하고 뚱뚱한 고양이다 하고 놀려대지만

언니가 항상 말하듯 너는 정말 사랑스럽고 멋있는 고양이야

우리 니나 예쁘다~하면 갸옹! 하고 회답하는 목소리는 매력적이고

털빛과 냄새는 햇살 같아서 몽글몽글하고 보드랍고 따뜻한 너의 배를 베고 누우면 단숨에 행복해지지.

 



너는 왁왁 씹어대는 걸 좋아해서

너를 가슴 앞에 앉히고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연필 끝을 마구 씹어대서 어쩔 수 없이 너를 바닥에 내려놓게 해.





너는 사실 놀이를 정말 좋아하지만 동생들에게 항상 양보하고 참아.

그런데 오뎅꼬치를 침대 위에서 빙글빙글 돌리는 것, 그건 절대 참지 못하지

침대 위에 탕탕! 하고 오뎅꼬치로 소리를 내면 너는 어디선가 달려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준비를 하고 있어.

몇 바퀴를 멋지게 돌고 나면 잘했어 니나! 하고 엉덩이를 톡톡 쳐주는데

그러면 너는 매우 자랑스러운 표정을 하고 콧김을 폭하고 내쉬어.




네가 좋아하는 캔은 오렌지색의 연어 맛 캔이고

입맛이 까다로워 모험을 즐기기보단 좋아하는 것만 먹는 편이야.

간식도 즐기지 않고 과식도 하지 않아.

깨끗한 물을 좋아해서 물그릇을 갈아주면 항상 제일 먼저 마시지

제일 좋아하는 건 얼음이 가득 담긴 컵에 맺히는 물방울들이라

여름에 언니가 차가운 음료를 마셔도 컵 아래는 항상 물이 고이지 않았어

네가 항상 옆에 있었으니까.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가끔씩 내려가면 너는 만나자마자 첫 숨을 골골 송으로 시작하며

인사를 해줬어. 빙글빙글 몸을 뒤집으며 환영을 해주기도 했어.

그리고 마음껏 그 말랑한 배를 만지게 해 주지.  

좀 더 기분 좋을 땐 배 밑에 손을 쓰윽 집어넣어도 봐주고-

언니가 배를 조물조물하며 마구 까불더라도 절대로 할퀴지 않아.

너무나 상냥한 너는 우리가 처음 만난 날부터 딱 한번 빼고는 남을 다치게 한 적이 없었어.

그 한 번조차 네 탓이 아니었는데도 너는 한동안 다가오지 못하고 많이 미안해했지.





요즘에 너는 만날 때마다 나를 생각해 내는데 시간이 걸려.

요전에는 반나절이 지나도록 나를 기억해 내지 못했어

그럴 때는 네 옆에서 내가 너와 함께 했던 너의 인생의 절반의 시간을 하나하나 이야기해주면서

네가 좋아하는 귀 마사지를 해주면 너는 그때서야 골골거리며 배를 허락해주지  


자꾸 기억을 잃어가는 네가,  좋아하는 침대 위에 뛰어 올라가는 게 힘겨워 한참 망설이는 네가 마음 아프지만

그래도 언니가 항상 말하듯,  

오래오래 살아서

너만 괜찮다면 요괴가 되어주면 좋겠어.

그래서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네가 결심이 서면

꼭  

언니, 니나는 요괴 고양이가 되기 위해 수행을 다녀오겠습니다.

하지만 꼭 돌아올 거예요 

하고 말해줘.


그럼 보고 싶어서 가끔 조금씩 우는 것 말고는 씩씩하게 기다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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