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에 대한 욕심이 크게 없는 편이다. 물욕이 별로 없다. 명품, 좋은 차, 전자기기, 집, 주식. 이런 것들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생활을 했던 4년이 다 되어가는 기간 동안 제대로 돈을 모아 본 적이 없다. 내가 하는 소비의 큰 부분은 식비, 운동비, 문화생활 비용이다. 누군가와 밥을 먹을 때나 여행을 갈 때, 돈을 아끼고 싶지 않다. 음식을 해 먹으면 돈이 덜 드는것을 알면서도 사 먹는다. 배달음식도 남을 것을 알면서 더 시키거나. 굳이 안 들어도 될 운동 세미나에 참석을 한다거나. 항공권도 기왕이면 저가 항공사보다는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조금 더 좋은 항공사를 이용하려고 하거나. 기본적인 생활 용품들을 많이 구매하지는 않지만 그럴 일이 있으면 가격 비교를 하지 않고 덥썩 구매를 해 버린다. 이렇듯 자잘하게 돈을 쓰는 비용들이 티끌처럼 모여서 태산이 된다.
그래놓고선 혼자 쓰는 돈이 아까워서, 혼자 밥을 먹을 때는 최대한 싼걸 찾아보게된다. 평일 혼자 식사할 때에는 저렴한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저녁은 대량으로 싸게 사두었던 간편식이나 편의점 김밥이나 에너지바로 때운다. 회사에 있을 때는 회사 커피를 마시거나 혼자 마실 때에는 값싼 커피 브랜드를 찾아 마신다. 옷이나 신발을 살 때에도, 누군가 나의 외모를 신경 쓴다고 생각 할때에만 과한 돈을 들여서라도 사는 편이다. 예를 들어서, 내 친구가 패션에 민감한 친구고 그 친구가 내가 옷을 잘 입고 잘 꾸며야 한다고 생각할 때 평소에 하지 않던 큰 지출을 하게 된다.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나는 내 것을 사는게 아깝다. 그런데 떠올려보니 이건 아빠의 모습과도 같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빠는 참 검소하게 살았다. 한 번 옷을 사면 10년은 기본이었다. 우리집 차도 그렇다. 내가 기억하기로 첫 차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소나타였다. 아빠가 물려받을 당시에도 할아버지가 10년정도 탔던 구형 소나타였는데 그걸 내가 중학생이 될 때쯤 폐차시켰으니 거기서 10년 이상을 더 탄 셈이다. 그 때 바꾼 차를 또 지금까지 타고 있으니 그 차의 나이도 어느새 10년하고도 중반을 훌쩍 넘었다.
본인에게 쓰는 돈은 그렇게 아까워 했으면서도 우리에게 쓰는 돈은 아끼지 않았다. 내가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없는 것은 아빠와 엄마의 아낌없는 경제적 지원 덕분이었다. 떠올려보면, 한창 친구들과의 관계에 민감했던 시기, 메이커 브랜드의 옷이나 신발, 닌텐도 게임기, 핸드폰 같은 것들을 부모님은 별말 없이 사주셨던 기억이 난다. 학원이나 과외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엄청나게 고액 과외를 받거나 비싼 학원을 다녔던 것은 아니었지만, 고삼때를 떠올려보면 종합학원에 영어 수학 과외를 한개씩은 더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빠의 벌이가 시원찮아서 본인에게 쓰는 것에 그렇게 인색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집은 엄청나게 부유하진 않더라도 서울에서 중산층 이상의 가정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아빠가 검소하게 생활하게 된 이유는 아빠의 가정환경에 있었다. 아빠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이렇다 할 직업이 없으셨다. 그래도 아예 한량처럼 노셨던 것은 아니셨지만 벌이가 일정치 않으셨던 것으로 안다. 할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셨다. 안정적인 직업이었지만 공무원 급여가 넉넉지 않았다. 아빠에게는 가난이라는 상흔이 만들어낸 결핍이 마음속에 늘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에게는 아끼지 않았지만 본인에게는 인색하게 구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가난을 겪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쓰는 것은 아깝고 그게 아니면 돈을 마구 쓰게 되는걸까? 나에게 돈은 어떤 의미일까?
나에게 돈은 수단이다. 사랑받기 위한 수단. 사실 돈만큼 손쉬운 방법이 없다. 내가 이것저것 재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팍팍 구매해왔던 이유는 돈이 없었던 기억이 없어봤기 때문이다. 가난을 겪지 않은 나에게 돈의 무거움은 참 가볍다. 식사 자리에서 내가 먼저 계산을 하거나, 여행갈 때 비용을 더 내거나, 비싼 선물을 하거나, 후원을 하거나. 그런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진심을 담은 소중한 마음일 수 있어도 나에게는 여태까지 그렇지 않아왔다. 직장 생활이 고되질수록 누군가에게 돈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대하여 마음이 쓰라릴 때는 있었지만, 적어도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미안하고 스스로가 더 미울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버틸만하고 견딜만했다. 나에게 쓰는것을 줄이면 됐으니까. 어느정도까지는 나에게 쓰는 돈을 아껴도 나는 돈에 대한 욕심이 크게 없으니 피해의식도 거의 생기지 않았다. 그러니 나에게 돈은 손쉽게 들일 수 있는 품삯같은 것이었다.
나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잘 해주기 위해 진심으로 고심해봤던 적이 있었을까? 예전에 한 친구에게 백화점 상품권 15만원을 선물했던 적이 있다. 그 친구에게 그 선물을 하고 바로 후회를 했다. 그 당시 그 친구와 막 친해지던 시기였고 그 친구는 경제적인 결핍이 있던 친구였다. 그런 상황에서 섵불리, 15만원짜리 물건도 아닌 '상품권' 을 선물했다는 점에서 나는 참 폭력적이었다. 그 선물을 했던 나의 속마음은 사실 '네가 무엇을 좋아할지 고민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나는 손쉽게 얻을 수 있지만 네가 손쉽게 얻지 못하는 돈을 줄테니 넌 나를 좋아해야 해' 라는 무언의 거래적인 마음이었던 것이다. 섬세했던 그 친구는 나의 그런 태도와 마음을 금세 알아채고 상처를 받았다. 내가 돈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 가벼운 돈을 통해 쉽게 폭력적이고 비겁한 마음을 먹을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던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돈이라는 것을 거래의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나에게 돈은 "내가 너에게 돈을 줄테니 나를 떠나지 말아줘" 라는 표어로 자리잡혀 있다. 사실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가 그럴테다. 너에게 작은 선물 하나 맛있는 음식 한 끼 대접하려고 해도 돈이 필요하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비쌀수록 품질이 좋은 물건과 옷 그리고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
아빠가 본인에게는 인색하지만 자식들에게는 후했던 이유도, 어느 부분에서는 돈에 대한 마음이 나와 같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그런 아빠의 마음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유는, 나 역시도 사랑을 그런 방식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 역시도 "네가 떠나도 좋으니 나는 너를 사랑하겠어" 라는 마음이 없었기에, 너를 잡아두기 위한 수단으로 돈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랬을 것이다. 나는 너를 나에게 매어두기 위해 나에게 가장 쉬운 수단인 돈을 사용했다. 그래서 돈이라는 것이 가벼우면서도 무서웠던 것이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면, 더 이상 돈을 손쉬운 사랑의 표현으로 삼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도 나는 기꺼이 너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네가 필요한 것들을 사줄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고되게 돈을 벌 수 있을까? 그것이 나에게 더 기쁨일 정도로 너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렇게 고되게 번 돈을 너에게 썼을 때, 너에게 기쁨이지 않을 결과를 가져와도 나는 나의 노고를 아까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고되게 번 돈을 너에게 썼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나를 버린다해도,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억울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내가 그 정도로 나를 버리고 널 더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일까? 그렇게 할 용기와 관용을 가질 수 있을까?
질문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어느 순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아무리 준비해도 최적의 시기란 것은 없다는 것을. 다만,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나의 주변 사람들이 조금은 덜 다치고 덜 고통스러울 시점에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지금 나의 수준에서는 그런 판단마저도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어느순간부터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 나는 젊어서일까. 사랑해보지 않아서일까. 삶의 고난이 없어서일까. 여전히 상식적이지 않은 나만의 논리로 우기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모든 것이 잘못될수도 있고 모든 것이 어긋날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나는 생각해보았을까? 돈이라는 것의 무거움을 모르는 내가 돈의 어마어마한 무게를 비로소 맞이했을 때 견뎌낼 수 있을까? 그것에 압사당해서 너 마저도 슬픔의 구렁텅이로 끌고들어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모든 마음도 내가 용기가 없어서 비겁해서 너를 이용해서 한 발 물러서려는 마음은 아닐까?
사실 나에게는 그만큼의 고민을 할 정도로 소중한 한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정작 내가 스스로에게 해야 할 질문은 '돈이 없어도 나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주눅들지 않을 수 있을까' 일 것이다. 아무리 내가 나에게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다해도, 나는 누더기를 걸치고 다니거나 집이 없는 노숙자처럼 지내본 적이 없으니까. 만약 그런 최악의 상황이 온다고 해도 나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큰소리쳤던 디오게네스처럼 당당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