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의 큰 노키아가 아닌, 백 개의 작은 노키아

핀란드의 스타트업 육성법

by 글쓰는 유진


핀란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것들이 있다.

눈이 가득 덮인 설원, 뿔이 달린 순록, 산타클로스 마을, 그리고 스타트업.


핀란드의 스타트업 육성정책을 이야기할 때, 한 때 휴대폰 시장을 주름잡던 노키아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노키아는 90년대 후반부터 2010년까지 휴대폰 판매 1위를 담당했다. 이 회사는 2011년 기준 핀란드 GDP의 20%를 차지할 정도였으니, 핀란드 경제는 노키아가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시대가 개막되고 애플, 삼성 등 여러 기업에서 스마트폰의 발전을 급속도로 이루어 내자 노키아는 뒤쳐지기 시작했다. 결국 휴대폰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노키아는 13년도에 마이크로소프트에 모바일 사업부를 매각하며 쓸쓸히 막을 내린다.


이후 휘청이던 핀란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다름 아닌 스타트업 육성정책이었다. 핀란드는 노키아의 쇠퇴 이후 큰 규모의 고용불안과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경험하며 이미 '대기업 의존 경제'의 뼈아픈 실패를 경험했고, 더 이상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하나의 큰 노키아 대신에 100개의 작은 노키아"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본격적인 민관 협력 주도의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기에 육성된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 모바일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 앵그리버드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글로벌 스타트업들이다. 이후 핀란드 전역에는 기업가정신문화가 확산되었으며, 핀란드의 엑셀러레이터들은 물론 젊은 학생들 스스로도 혁신을 찾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핀란드는 자생적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노키아의 회생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시장을 개척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민관 주도의 스타트업 육성 사업을 통해 학생들과 액셀러레이터들이 주도하는 북유럽 최대의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북유럽의 창업 성지, Startup Sauna와 비영리단체 AaltoES



이후 핀란드 창업 생태계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알토대학의 비영리 법인단체 'AaltoES'가 만들어졌다. 헬싱키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모인 AaltoES는 매년 11월에 열리는 유럽 최대의 스타트업 페스티벌 '슬러시(SLUSH)'등을 개최하며 핀란드의 기업가정신문화 확산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또한 핀란드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액셀러레이터, '스타트업 사우나(Startup Sauna)가 있다.

스타트업 사우나 건물 외관

스타트업 사우나는 흔히 창업 성지라 불린다. 이곳을 방문했을 때, 무언가 거대한 창고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알고 보니 알토 대학의 살충제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곳이 이 스타트업 사우나라고 한다. 스타트업 사우나의 입구에는 모두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라운지와 주방이 있고, 주방을 지나 공간 안쪽으로 들어오면 바로 강연을 할 수 있는 단상이 보인다. 이곳에서 해커톤, 피칭 대회 등 여러 행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또한 공간 측면에는 여러 방음부스들이 설치되어있는데, 이 안에서 자유롭게 팀 회의도 진행하고 업무를 볼 수도 있다. 스타트업 사우나는 4개의 핀란드 학생주도 창업단체(AaltoES, Kiuas,Startuplifers, Junction) 들의 거점으로도 사용되고 있으며, 창업자를 위한 무료 Co-Working Space로서 업무공간이 되어주기도 하며, 투자자와 창업자가 만나게 해주는 창구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창업자와 액셀러레이터, 투자자까지 한 데 모아놓으니 마치 축소판 창업 생태계를 보는 듯하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Wework와 FASTFIVE 등 큰 규모의 공유 오피스 개념이 도입된 지 오래이기 때문에 그 자체에 대한 놀라움은 없었지만 여러 부분이 인상 깊게 다가왔는데, 그중 첫 번째는 모든 공간 사용료가 없이 운영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와서 회의나 미팅을 진행할 수 있고 공간을 자유로이 사용하며 창업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학생들의 창업을 지원하며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팀 회의를 하거나, 개발을 진행할 공간이 부족해요' 였는데, 스타트업 사우나는 공간이 부족할 일이 없을 만큼 넓은 '창업 창고'를 자유롭게 개방하고 온전히 창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놓았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들이 보여주기에 치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타트업 사우나의 프로그램 매니저에게 한 달에 몇 팀 정도가 이 사우나를 이용하는지 물어봤을 때 'Actually, We don't count that point'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유를 들어보니 몇 팀이 왔다 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닌 스타트업 사우나를 방문한 사람들이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고, 기업가정신을 함양한 채로 각자의 역할을 해 나아가는 것에 더 의미를 둔다고 한다. 이렇듯 평가를 위한 수치에 연연해 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대의를 위해 움직인다는 AaltoES 다웠다.



핀란드 정부가 창업자들을 대하는 자세



우리나라에서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잔소리가 '제대로 못 할 거면 시작조차 하지 마라' 라면, 핀란드는 이와 정 반대이다. 무언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일단 시도해보고 최소화된 책임감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그렇게 시도하다 보면 우연히 아이디어를 함께 완성시킬 좋은 팀을 만날 수도, 우리의 가치를 알아줄 좋은 투자자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많은 정부기관과 대학교육기관은 '우연히 마주한 사소한 일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믿음 아래 오늘도 민관이 협력하여 자유로운 창업 생태계를 조성해 놓는다. 제2의 스포티파이, 앵그리버드와 같은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도록 기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