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타파스를 찾아서

스페인 마드리드

by 파리누나


"거기는 타파스 Tapas 하는 식당이에요."

라고 설명하면 이제는 많은 이들이 대충 짐작을 한다. 스페인 요리를 기본으로 다소 적은 양의 여러 가지 디쉬를 술 한 잔과 가볍게 먹는 식, 정도랄까? 저녁식사를 8-9시에나 하는 스페인에서 씨에스타(낮잠)를 즐긴 뒤 느즈막 한 오후에 즐기는 간식과 식사의 중간 정도. 올리브, 치즈, 토마토 등 찬 디쉬나 오징어 등 해산물 튀김, 감자 요리도 많다.


내가 유럽 땅에 발을 디딘 첫 비행이 스페인 마드리드다. 정식 첫 오퍼레이션 operation 싱가포르 비행 전, 깍두기 비행 때 받은 레이오버 비행이 바로 마드리드였다. 스물아홉 겨울에 처음 유럽을 가본다니,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공기부터 다르다고 느낀 건 정말 기분 탓이 아니다. 격자무늬 돌바닥이 낭만적이고 당시엔 유럽식이라고밖에 묘사를 할 수 없는 건물들이 그저 생경했다. 바닥 두드려보며 걷느라 건물 쳐다보랴, 사람들 구경하랴 24시간 스테이는 너무도 짧았다.


내가 입사한 2015년은 불과 몇 년 전이지만 항공업계가 승승장구하던 좋은 시절이었다. 신입을 대거 채용하던 때라 한 비행에 서너 명은 비행 초짜 승무원들이 항상 있었다. 신입이 신입을 가르쳐야 했던 비행들. 또 달리 말해 비행기가 향하는 목적지에 처음 가보는 크루들이 많았다는 의미로, 머무는 시간 동안 똘똘 뭉쳐서 관광할 확률이 많다는 것. 마드리드발 비행에서 들뜬 게 나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뭘 먹죠?"

"추로스, 빠에야.. 아이 참, 타파스지 물론!"

"...?"


보통은 목적지 국가 출신 승무원이 최소 한 명, 많게는 네다섯 명도 타는데 하필 그날은 현지 사람이 없었다.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승무원만 탑승하면 비행이 가능했기 때문에 남미 크루가 하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잘 모르는 아이들만 모아서 가는 비행이었달까. 얼마나 몰랐으면 우리 중 하나는 화장실 가려고 기다리는 승객을 붙잡고 마드리드에 관해 물어봤을까. 하하. 우리는 '타파스'라는 이름만 기억하기로 했다.


나를 포함해 네 명, 옷만 갈아입고 호텔 로비에서 모여 시내로 나갔다. 처음 타보는 유럽 지하철에서부터 신이 난 나는 유난을 떨었고, 그런 내가 홀로 민망하지 않을 만큼 함께 나간 크루들도 상기된 상태였다. 광장에서 교회 앞에서 이름 모를 분수대에서 사진을 있는 대로 찍다가, 허기가 몰려온다.


타파스를 어디서 먹어야 하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식당을 들어갔다 나왔다 메뉴판을 훑어보길 여러 번.


타파스라 적힌 메뉴가 없는걸?


급기야, 시내 한복판에서 행인을 붙잡고 물었다.


"Excuse me, 혹시 타파스를 잘하는 집이 어디예요?"


붙잡힌 아저씨는 조금 당황한 눈치다. 그러다가 홀로 껴있던 자그마한 동양인 나를 보고 외국인 무리임을 깨달으셨는지 이내 친절 모드로 돌입하셨다. 상당히 진지하게 고민하시다가, 아하!


"여기 길 끝에서 왼 편으로 꺾어서 조금 더 가면 2층 높이 쇼핑몰 같은 건물이 있어요. 커서 딱 보일 거야, 그 옆집에 가면 오래된 타파스 집이 있거든. 허름해 보여도 맛은 알아주는 곳이에요. 마드리드 사람이라면 다 안다니까."


상호명도 알려주시지 않고 가는 방법만 여러 번 일러주셨다. 먹겠다는 일념으로 우리는 기어코 잘 찾아내기는 했단 말씀. 식당에 들어가서 무턱대고 타파스가 먹고 싶다고 했다. 바빠 뵈는 바 직원이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는데 아무리 들어가도 의자 하나 없다. 대체 어디서 먹으라는 거지? 아직 세팅이 안 되었나?

주위를 둘러보니 사오십 대 아저씨들이 둥그렇고 높다란 테이블을 두고 서서 맥주에 안주를 들고 있다. 그저 그런 노천 호프집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의자 없는 것 빼고는. 나 본인은 원체 가리는 것도 없고 현지인이 추천한 곳이면 일단 가보고 해 보는 편이라 그 분위기도 개의치 않았건만, 오히려 유럽권 언니들이 표정을 찌푸리며 여기선 못 먹겠다고 나가버렸다. 하, 타파스 한 번 먹기 이렇게 힘들 일이야?


아니 근데. 타파스가 대체 뭔데?


유명한 타파스 집인데도 정체를 밝히지 못한 채 나왔다. 결국 저녁식사를 한 곳은 행인이 알려준 2층짜리 쇼핑몰에서다. 제일 무난한 스테이크를 먹었다는 슬픈 결말. 뭔지 모르는 타파스를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이후에 여러 번 마드리드 비행을 갔으나 결국 그 유명하다던 타파스 집은 다시 찾지 못했다. 타파스의 묘미를 알고 나서는 찾지 못하는 타파스 바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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