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 감자
감자를 세척만 한 다음 굵은 소금 넉넉히 담은 팬에 감자를 올려 오븐에 구우면 감자향이 한껏 살아난다.
찐 감자도 맛있지만 이렇게 구운 감자는 감자껍질 향과 약간의 소금기의 고소한 맛만 남아 감자만 먹어도 맛이 좋다.
뜨거울 때 껍질을 벗겨 버터와 소금을 더해 으깬 감자로 만들면 사이드 메뉴로도 훌륭하고.
다디단 고구마는 여전히 맛있지만 요즘은 구수하고 최소한의 단맛만 있는 감자를 더 찾게 되는 걸 보니, 정말 나이가 들었나.
고구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황작물이었는데.
찐 감자를 소금에만 찍어 드셨던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감자를 까먹으며 요새 굉장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를 본다. 유치하다면 유치한 만화 같은 드라마가 맞지만, 스무 살의 앳된 연애가 얼마나 귀여운지를 공감하며 빠져들게 됨은 어쩔 수 없다. ‘좋~을 때다’라는 말이 절로 입에서 튀어 나는 삼십 대 아줌마가 되었음을 또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스무 살 첫 연애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마 많은 이가 본인의 연애를 상기해서 드라마가 인기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시간이 안 갔으면 좋겠다.’
‘어디에 숨어있다 나타난 거야?’
‘너를 만나기 전과 후의 인생이 달라.’
등등, 드라마 대사를 읊어대던 푸릇푸릇한 첫사랑. 일명 ‘투투데이’부터 100일, 200일, 300일, 생일에 1주년, 2주년 등 기념일이 거의 매 달, 손 편지를 많이도 주고받았고 온종일 붙어있다가도 밤에 통화를 하다가 잠들기도 했던 전형적인 어린 연애였다. 매일 봐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처럼 뜨거워서 헤어짐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연애.
그런 관계도 결국 끝은 있었고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지만 잘 살고 있다는 소식만 전해 들을 뿐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소중한 추억과 기억으로 남아있는 날들에 감사하며 그 사람도 계속 잘 살기를, 안 좋은 소식이 안 들리길 바란다.
그렇다고 남편과의 연애가 사랑스럽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해는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