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두콩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인턴을 했을 당시 매일 해야 했던 고된 작업 중 하나는 각종 버섯 손질이었다. 한국에서 흔한 팽이버섯이나 표고버섯은 손질이 쉬운 편이지만 프랑스에서 많이 먹는 꾀꼬리버섯이라는 주름이 많은 이 녀석은 주름 사이사이에 흙이 묻어있어 털어내기가 여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아니다.
그리고 완두콩. 완두콩은 일 년 내내는 아니고 제철 한 달 정도를 작업하는 것이지만 노동 대비 결과물이 말 그대로 ‘한 줌’이라 온 직원이 달라붙어 콩을 까던 기억이 난다. 서비스 중에도 틈이 잠깐 나면 완두콩을 집고는 했다.
알맞게 데쳐낸 완두콩을 얼음물에 담그고 나서 또 한 번의 작업이 있다. 입에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콩껍질을 일일이 벗겨내야 한다. 이렇게 작업한 콩으로 당시에는 보리로 만든 리소토에 버터와 치즈를 풍미 있게 넣고 콩을 마지막에 섞어 색감과 식감을 살렸다. 프랑스 완두콩은 알이 내 검지손톱만큼 크기도 해서 알알이 가득 찬 껍질에서 콩을 분리하는 작업은 힘들지만 풍족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 어마어마한 양을 보다가 한 소쿠리 완두콩을 시장에서 사 왔더니 일을 하다만 것처럼 가볍게 끝낼 수 있다. 소금물을 끓여 껍질에서 나온 귀여운 콩들을 가볍게 데쳐내면 톡 터지는 달큼함에 수고로움을 보상받는다. 절반은 비닐팩에 넣어 냉동해 두면 필요할 때 쓰기 좋다. 파스타나 리소토에도 좋고, 한식, 중식, 일식까지 두루두루 어울리는 카멜레온 같은 존재. 여유롭게 콩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고 있으니 일분일초 낭비할 시간이 없던 레스토랑에서의 박진감 넘치는 현장이 조금은 그립기도 하다. 사실 나는 매사 여유를 부리는 타입이라 주방의 엄청난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요리에 들어가는 수고로움을 알고 음미하는 프랑스인들이 많아 매한가지로 힘든 요식업이지만 조금은 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 한 아이의 엄마가 될 날을 앞두고 다시 하루 열 시간 이상 끊임없이 돌아가는 주방으로 갈 여유도 자신도 없다. 하지만 싱그러운 재료들을 만지고 기뻐할 줄 알고 요리할 수 있는 기회는 만들어가고 싶은 욕심은 버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