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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무 Sep 28. 2021

아이를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

#첫 만남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응급 수술이 있는 날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소아 응급 간이식 수술이라는 것.

간이식 팀에 합류한 지 4년째… 전격성 간부전으로 진행이 빨라 급히 진행하긴 했지만 기적적으로 뇌사자가 발생했고, 여느 아이와 다르지 않게 회복하여 내일이면 엄마를 알아보고 무사히 걸어 나갈 그런 아이 중의 하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직 소아 케이스는 후배들의 손이 익숙지 않았기에, 자청해서 수술장에 들어갔다. 소아라서 그랬을까. 왜 나는 이 아이와 이렇게 엮일 운명이었던 것인가....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중환자실에 아이를 옮기고 아이의 부모님을 처음 보았다.


S는 7살 건강하고 똑똑한 남자아이였다. 또래보다 배우는 걸 좋아하고, 공부도 잘해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 S가 갑자기 열이 나고 간이 망가지기 시작한 건 채 1주일도 되지 않아서였다.

“원인은 명확하지 않은데, 간부전이 급속히 진행하는 아이가 있어요” 소아과 선생님으로부터 긴급한 연락이 왔다.

소아 간이식 환자들 중 응급으로 받는 친구들은 이렇게 원인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급하게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워낙 진행이 빨라, 뇌사자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성인의 좌외측구역을 잘라 이식을 하는 경우가 1년에 1건 정도는 매년 있었다.

저렇게 연락이 와도 중환자실에서 잘 회복해서 간이식까지 가지 않는 아이도 있었기에, 여느 아이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예상보다 빨리 S는 급격히 진행한 간부전과 저혈당 및 의식저하로 중환자실로 내려갔고, 생체 간이식을 준비하려는 찰나, 뇌사자가 갑자기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친구는 살 친구구나..’

그 사이에 검사를 진행한 부모들도 생체 간이식에  적합한 상태는 아니었기에, 운이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다만 의식이 돌아오는지 며칠 동안 잘 지켜봐야 할 겁니다. 그리고 떼어낸 간의 조직검사를 확인해야 원 질환을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걱정과 달리 아이는 다음날부터 의식을 회복하여 합병증도 없이 무사히 병실까지 올라왔다.

다만 조직검사에서 엡스타인 바 바이러스(EBV)의 공격 소견이 확인되어, 소아과, 병리과와 함께 관련 리뷰를 하고 항바이러스제를 유지할지에 대해 논의하였다.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간이 망가진 것이라면, 다시 바이러스에 의해 공격당할 수 있기에 이를 막기 위한 장기 치료계획을 세웠다. 수술 후 합병증은 없지만, 여전히 피에 바이러스가 검출되고 있기에 정맥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위해 입원을 계속하게 되었다.

이게 나의 9개월 간의 아이와의 인연이 시작이라는 걸 이때엔 알지 못했다.


#재발 괴질?

갑자기 열과 함께 간 수치가 오른 아이. 설마 바이러스의 공격은 아니겠지. 바이러스는 안정적이었는데 1주간의 항생제 치료에도 불구하고 열은 잡히지 않았고 균도 동정되지 않았다. 많은 고민 끝에, 감염 파트가 아닌 혈액종양 파트로 협진을 냈다. 

Hemophagocytic lymphohistiocytosis(HLH, 혈구탐식성림프조직구 증식증)라는 희귀 질환을 진단받았다…. 바이러스에 의해 활성화된 면역체계가 아이의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 간이식에 이어 항암이라니….


#항암

항암의 효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열이 바로 내리고, 아이는 어느 정도 웃음을 찾았다. 하지만 장기간의 입원기간 동안 아이는 가고 싶었던 유치원을 가지 못했고, 면역억제제로 쓴 스테로이드 때문에 통통하게 변해버린 모습에 실망한 모습을 보여, 부모에게도 의료진에게도 마음을 잘 열지 않았다. 매일 아침 아이에게 들러서 보는 나와 Y교수님에게만 의지하려 하고 새로 바뀐 혈액종양 선생님들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았다.

그때부터인가… 매일매일 출근길, 퇴근길 두 번씩 항암 병동을 방문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주말에도 나올 수 있으면 늘 나왔고, 항상 열이 나거나, 이벤트는 왜 주말에 일어나는지…


#친구 소개

아이는 장기간의 입원으로 말도 잃고, 항상 우울해 보였다. 친구가 보고 싶다고 …

우리 집의 첫째 아이도 S와 같은 나이였다. 그래서 더 그렇게 부모에 감정이입을 했던 것은 아닐까… 백혈구 수치가 올라서 격리병동에서 나올 수 있는 컨디션이 되자, 첫째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혹시 새로운 친구 만나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흔쾌히 S를 만나고 싶어 했고, 둘은 짧은 몇 번의 만남을 한 이후 친구가 되었다.

이때는 S가 건강히 회복하여 학교도 같이 다니고, 밖에서 놀자는 희망에 부풀었던 것 같다. 이때쯤은 우리 둘째와 셋째들도 병원에 찾아와서 지하에서 함께 얼굴도 보고, 서로 동영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긴 병원생활에 한 자락의 희망을 보았던 것 같다.

아이는 친구와 동생들이 생긴 이후로 웃음을 찾았고, 서로 선물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몰래 병동 뒷문으로 들어와서 (사실 그러면 안된다..) 잠깐 이나마 얼굴을 보고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었다.


#한 번의 퇴원 그리고 재입원

아이가 드디어 외래 주사실에서 치료가 가능한 컨디션이 되고 나서야 1주간의 평화가 찾아왔다. 주말에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과 주말에 놀아주고, 이제 S도 안정화되겠지라는 희망도 잠시

한 주만에 아이는 열과 함께 다시 입원하였다. 비장과 간에 동그란 여러 점들이 보였다….

곰팡이 감염이 의심되었다. 간이식으로 인해 면역억제제도 쓰는 데 항암까지 해서 그런가… 곰팡이 균 치료는 쉽지 않기에, 다시 입원하여 치료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컨디션은 생각보다 좋아지지 않았다.

설마….


#최악의 시나리오

비장 조직검사를 보니, HLH를 넘어선 림프종으로 진단되었다. 진짜 암이 발생한 것이다. HLH때보다 훨씬 센 항암이 시작되었고 항암이 잘된다면 이후에 골수이식까지 생각을 할 상황까지 왔다.

아이의 엄마는 생각보다 강했다. 본인이 스스로 공여자를 모아 오고, 진행하려 하였으나, 올해는 예산이 마감되어서 검사와 등록이 불가하다는 기증원의 대답에, 국회의원 사무실과 국민청원까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서, 등록 진행 절차를 하도록 하셨다. 부모의 마음은 그렇다. 아이의 앞에서 부모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겠는가…하지만 항암이 일차적으로 성공해야 골수이식까지 갈 수 있는데, 아이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좋아지지 않았다.

격리 병동에서의 피 말리는 하루하루가 지나고 어느덧 병원 생활은 계절이 바뀌고 아홉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선생님, S 가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선생님을 찾고 있어요…"

수술 중 전화를 받았다. 나와 Y 선생님은 소아중환자실로 달려갔다. 이전 이식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림프종이 빠르게 간을 침범하여 아이는 고통에 괴로워하며 꺼져가는 숨을 겨우 몰아쉬고 있었다.

같은 부모로서 감정이입되지 않을 수 없기에… 한동안을 아이와 아이 부모님과 함께 있었다. 의사가 되고 많은 죽음을 보고 사망선고도 해보았지만…. 아이의 죽음은 우리에게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의식이 있는…


아이는 그렇게 9개월간의
병원생활을 끝냈다…

아이의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길, 이식 환자를 전담해주시는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을 뵈었다.

선생님.. 아이를 잃은 부모를 달래러 가는 길인데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같이 있어주세요..”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며칠이 지나 친구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첫째 아이에게 소식을 알렸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기나 할까...아이도 슬퍼하고 함께 울었다.


운명. 팔자. 그런 것을 믿지는 않지만..

간이식을 받지 못하고 사실 그날 하늘나라로 갔을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9개월 동안 나와 Y교수님, 그리고 첫째 아이와의 인연. 그 와중에 느끼지 못할 추억들을 가지게 해 주려고, 신이 잠깐 유예를 해준 것인가… 아이의 부모님에게 잠시 이별할 시간을 주고 가게 해주려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야 이 아픔을 겪을 수 있을 것 같아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S에게... 9개월간 아픈 기억보다 좋은 추억만 가지고 천국에선 행복하길


2020년 1월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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