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조회수 100 미만 — 그래서 나는 계속 쓴다"
브런치 작가 신청 후 칼럼 다섯 개를 올렸다. 브런치에. 조회수를 합치면 100이 안 된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이건 최악의 ROI다. 차라리 X에 어그로 한 줄 던지는 게 낫고, 인스타에 말랑말랑한 사진 한 장 올리는 게 낫다. 모든 지표가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나는 오늘도 브런치를 열었다.
커서가 깜빡이고 있다. 흰 화면.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콘텐츠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기획하고 전략을 짜고, 제작 현장을 직접 진두지휘하는 사람이다. 유튜버 김계란과 함께 일했고, 슈카를 한 앵글에 담았으며, 가짜사나이의 덱스를 섭외해 콘텐츠를 찍었다. IT 유튜버 잇섭의 레이싱 장면을 가장 가까이서 찍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드래곤레이크 용호X . . . 인연이 깊다.
코로나 시대, 영화와 드라마 프로젝트가 줄줄이 엎어졌을 때 — 나는 빠르게 늘어나는 유튜브 트래픽을 간파했고, 콘텐츠의 흐름이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읽었다. 느린 영화·드라마 현장 대신 빠르게 움직이는 유튜브 대형 예능 씬을 선택했다. 그렇게 코로나 시대에 우리 회사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AI 파이프라인을 설계해서 하루 수백 개의 영상을 자동으로 수집·분석하는 시스템까지 직접 만들었다. 낮 시간의 나는 알고리즘을 분석하고, 데이터를 읽고, Gemini에게 요약을 시키고, 효율이라는 단어에 둘러싸여 산다. 하루에 300개가 넘는 영상을 AI가 대신 읽어주고, 대본까지 써주는 세상을 — 대단한건 아니지만 내가 직접 설계하고 만들었다.
그런 사람이 밤마다 브런치를 연다.
브런치. 2026년 현재, 한국에서 가장 조용한 플랫폼. 알고리즘 추천도 미약하고, 바이럴도 드물고, 유입 경로라고 해봐야 검색 아니면 운이다. 유튜브의 속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가장 느린 플랫폼을 골랐다.
의도적으로.
처음엔 나도 몰랐다. 그냥 쓰고 싶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처음엔 뭔가를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글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AI를 다루면서도 언어를 직접 다듬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글을 쓸 때 이상한 일이 생겼다.
초고를 쓰고, 고치고, 다시 읽고, 또 고쳤다. 한 문장이 마음에 걸려서 30분을 버렸다. 접속사 하나가 리듬을 깨는 것 같아서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러다 문득 —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뭔지를 알아차렸다.
나는 독자를 위해 고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독자가 없으니까.
나는 나를 위해 고치고 있었다. 아직 정확하지 않은 생각을, 문장으로 눌러서, 정확하게 만들고 있었다. 모호한 감각이 글자가 되는 순간, 비로소 내가 뭘 생각하고 있었는지가 보였다. 글을 쓰는 게 아니라 — 생각을 발굴하고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 잘 꾸며야 한다고 한다. 거울을 보고, 피부를 관리하고, 옷을 다려 입는다. 남에게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거울 속 자신을 마주할 때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글쓰기가 내게는 그거다.
수십 번 고민하고, 수십 번 고쳐 쓰면서, 내 안의 내면과 지성과 자존감을 고쳐 다듬는다. 마치 내 내면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어떤 문장이 허술하면 그건 내 생각이 허술한 거다. 어떤 단락이 공허하면 그건 내가 아직 거기까지 가보지 않은 거다.
모르면 — 더 노력해야 한다. 알았다는 확신이 들면 — 더 겸손해야 한다.
이 두 문장을 동시에 연습할 수 있는 행위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글쓰기는 그중 하나다. 아마도, 내게는 유일한 하나.
그래서 나는 이렇게 나눈다.
낮에는 AI와 일한다. 모든 이성, 모든 전략적 사고, 모든 효율은 거기에 집중한다. 알고리즘을 분석하고, 파이프라인을 돌리고, 데이터에서 패턴을 뽑는다. 그건 내가 잘하는 일이고, AI가 더 잘 도와주는 일이다.
밤에는 글을 쓴다. 모든 감성, 모든 사색적 낭만, 모든 느린 사유는 여기에 둔다. AI에게 시킬 수 있을까? 물론이다. 초안도, 구조도, 심지어 "감성적인 에세이"라고 주문하면 30초 만에 나온다.
그런데 그건 내 거울이 아니다.
AI가 쓴 문장에서는 내가 뭘 모르는지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 막히는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고치고, 지우고, 다시 쓰는 그 마찰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 — 그걸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건너뛸 수는 없었다.
이제 사고의 속도는 AI를 이길 수 없다. 그건 인정한다. 잘 짜놓은 자동화 파이프라인 하나면 하루에 영상 수백 개도 만들어내는 시대다. 내가 직접 설계한 시스템이 그걸 증명하고 있으니까.
대신 — 사고의 깊이와 입체감이다.
AI는 빠르게 정리한다. 요약하고, 분류하고, 패턴을 뽑는다. 그건 탁월하다. 하지만 그 알고리즘을 왜 이렇게 짜야 하는지를 입체적으로 상상하는 힘, 데이터 너머에 있는 맥락을 읽는 힘, 내 생각을 말로 — 글자로 — 그려내는 힘. 그건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다.
그리고 그 힘의 정점에 가장 아날로그한 기술 - 글쓰기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글을 쓴다는 건 생각을 선형으로 펼치는 일이 아니다. 하나의 문장 안에서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보고, 독자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어디서 갈라지는지를 감각하고, 논리와 감정이 어떤 순서로 와야 설득이 되는지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건 — 프롬프트 한 줄로 시킬 수 있는 종류의 작업이 아니다.
2026년이다. 유튜브 쇼츠는 15초 안에 사람을 사로잡아야 하고, 인스타그램은 3초 안에 스크롤을 멈추게 해야 하고, 엑스는 280자 안에 분노하거나 공감하거나 웃겨야 한다.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콘텐츠는 점점 짧아지고, AI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대신해준다.
그 한가운데서, 누군가 브런치의 흰 화면을 열고, 첫 문장을 쓰기까지 15분을 멍하니 앉아 있다.
나다.
그 속도의 한복판에서 십 년을 싸워온 사람이, 가장 느린 곳을 골라 앉은 거다.
이건 클래식도 아니고 우스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게 — 이상하게도 — 하루 중 가장 생상적인 시간이다.
AI 앞에서는 효율적인 나. 클라이언트 앞에서는 전략적인 나. SNS 앞에서는 편집된 나. 그 모든 버전의 '나'를 내려놓고, 문장 하나에 삼십 분을 쓸 수 있는 곳.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 포장할 필요가 없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으니까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 자유가 — 편하지만은 않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거울은, 그래서 더 정확하다.
"당신도 써보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이건 권하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특히 브런치에는 말이다.
유튜브를 시작하기엔 기력이 딸리고, 인스타를 하기엔 보여줄 것도 포장할 라이프스타일도 없어서 — 여기까지 밀려온 사람의 말이다.
다만,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밤이 있다면 — 그냥, 계속 쓰면 된다. 이유는 쓰다 보면 알게 된다.
나도 그랬으니까.
커서가 깜빡이고 있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