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와 테라피스트의 시선
아나운서의 말_ 주거가 운명이 된 시대
벽으로 나뉜 사회
(이 글엔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아주 조금 있습니다)
<은중과 상연>의 시작은 상연이 은 중의 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전학 온 학생이 한 명이 아니다. 무려 열두 명이다. 보통 학창 시절 경험했던 전학생은 기껏해야 한두 명, 선생님을 따라와 어색한 인사를 하며 선생님이 정해주는 빈자리에 앉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열두 명이 한 번에 전학을 오니 교실도 감당이 안 된다. 드라마에선 서글프게도 가난한 동네 아이들의 자리를 양보케 한다. 그러고 보니 전학생들은 기존 교실의 아이들과 입성(옷차림)이 다르게 보인다.
드라마의 시작을 알린 1992년은 노태우 정부 들어 시작된 주택 200만 호 건설의 정점을 달리던 시절이었다. 성공적인 88 올림픽 개최와 함께 압축 고도성장을 이어가던 우리나라는 전국에서 서울로 인구가 몰려들었고 주택난에 천정부지로 치솟는 주택가격을 안정화시킨다는 명목으로 강남과 분당, 일산 등에 대규모 주택건설이 지속되면서 새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지역에는 어김없이 학교가 부족하기 마련이었다.
필자가 어릴 적 전학을 갔던 학교도 작중의 학교와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학기 초반 날마다 들어오는 전학생들로 한 반에 70명의 학생들이 다닥다닥 붙어, 공간이 워낙 좁다 보니 책상은 늘 배에 붙어 있었고 맨 앞줄은 거의 칠판에 붙어 있다시피 했다. 지금은 상상조차 힘든 한 반에 60~70명의 학생들이 우글거리는 곳. 요즘말로 ‘강한 자만이 살아남은’ 90년대 초반 학교의 흔하디 흔한 풍경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가 우유배달과 식당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은 중이네는 반지하에 산다. 예쁘게 차려입고 전학을 온 상연은 은중이 선망해 마지않는 무려 화장실이 두 개나 있는 새 아파트에 산다. 은중이 옷장 안쪽에 붙여 놓은 ‘넌 참 좋겠다.’라는 스티커는 극을 끌고 가는 갈등의 시대적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사실 은중이 사는 반지하도 노태우 정부시절 주택 200만 호 건설정책의 산물이기도 했다. 영화 기생충으로 해외에 널리 알려지기도 한 ‘반지하’는 당시 정부가 서울에 치솟는 주택가격과 전세 가격을 잡기 위해 대규모 아파트 건설과 함께 지하층에 대한 규제도 완화함으로써 태어난 산물이기도 했다. (1985년부터 95년 사이 지어진 반지하 주택이 전체 반지하 주택의 80.9%를 차지한다.)
같은 하늘아래 높고 넓은 아파트 주민과 반지하에 사는 주민이 공존하는 마을 그리고 학교. 벌어지는 소득격차와 부동산가격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씨앗이 본격적으로 뿌려지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래도 작중의 은중 엄마와 상연의 엄마는 부의 거리는 있을지언정 서로 간의 거리는 두지 않고 지낸다. 은중과 상연의 사이에서도 생활 여건의 차이는 우정의 성립에 크게 작용하지는 않았다. 상연의 아빠가 우유 배달하던 은 중의 자전거에 부딪힐 뻔해 화를 내다가도 ‘애가(가난이) 무슨 죄야’라며 혼잣말하던 얼굴에서 난 ‘애가 무슨 죄야’가 ‘가난이 무슨 죄야’로 들렸다.
양극화의 서막은 열렸지만 이웃 간의 대소사를 함께하고 낮은 담 사이로 공동체적 정서가 남아있던 시대는 은중과 상연이 가정 배경을 떠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 시절만 해도 말이다.
2000년대 이후 우리는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 주민 간의 갈등 기사를 수시로 접하게 된다. 분양 아파트의 주민들이 아이들을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보내지 않으려 하고 임대 아파트 주민들이 자신들의 단지로 다니지 못하게 길을 막아버리기도 하며 심지어 아파트 외벽의 색을 다르게 칠해 구분을 짓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https://v.daum.net/v/20210415201912993
1992년의 아이들과 달리 2025년의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어떤 원죄를 안고 태어난 것일까? 어떤 죄를 지었기에 부모의 재력이 일상적 차별로 돌아오는 암울한 시절을 살게 되는 걸까. 은중과 상연은 친구가 될 수 있었지만 주공거지, 개근거지, 전세거지 같은 차별과 혐오의 언어가 아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소식을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오늘.
두 여성의 10대에서 40대를 관통하며 선망과 성장 그리고 원망과 해원까지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드라마 한 편을 보다가 엉뚱하게도 상연 아버지의 한 마디가 멍으로 남았다. 애가 무슨 죄야…….
PS1. <은중과 상연>을 나에게 추천해 준 문학평론가는 ‘오랜만에 만난 피와 살이 터지지 않는 잔잔한 한국드라마’로 추천의 이유를 들었다.
PS2. 언제부터인가 80년대와 90년대를 추억하는 드라마와 영화가 많아졌다. 개발과 속도의 시대 속에 그래도 공동체와 한국적 정이 남아있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그들만의 캐슬을 쌓고 지키기에 여념 없는 현재의 일상에 대비돼 위로가 되기 때문 아닐까.
테라피스트의 말_이 시대의 진짜 재건축
벽이 아닌 관계를 짓는 일
저는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보며 오래된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주인공 은중과 상연은 제 또래이기도 하지요. 1980~90년대, 이른바 ‘아파트 키즈 세대’로 자란 저는 그 시절의 풍경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제가 살던 동네도 극 중의 이야기처럼 새 아파트 단지가 완공되자마자 동시에 입주했고, 저를 포함한 또래 아이들은 한꺼번에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교실마다 책상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매일 같이 전학생이 늘어나던 시절. 졸업할 무렵에는 한 반에 50명, 많게는 60명, 전교에만 13반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죠.
그때는 다들 비슷했습니다. 누가 부자인지, 누가 가난한지 몰랐고 비교는 부러움이 아니라 이야기의 시작이었지요.
잠시 제 얘기를 해보자면, 수출선 선장이셨던 아버지는 항해를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오셨답니다. 동생들의 로봇, 그리고 아직도 기억나는 헬로 키티 철제 가방과 문구 세트. 그 시절엔 일본산 물건이 귀했고, 해외를 나간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기에 친구들은 저를 부러움과 호기심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곤 했지요. “너희 집 부자야?”라며 묻던 그 웃음 섞인 질문들이 지금도 따뜻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부러움 속엔 질투가 아닌, 순수한 감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시절에도 분명 격차는 있었겠지만, 〈은중과 상연〉 속처럼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고 서로의 집을 오가던 정이 있었던 시절. 가난한 친구가 부끄럽지 않았고, 부유한 친구가 미움의 대상이 되지도 않았던 시절. 지금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자라던, 그런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를 지나며 우리 사회는 점점 닫힌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 아파트 담장은 점점 높아졌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우리끼리’의 안도감을 느끼며 보이지 않는 벽을 날카롭게 세우며 살아가고 있어요.
한국인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애정을 갖는 차원을 넘어 그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같은 집단 안에서도 서로 평등하기보다는 위계적으로 구성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 그것을 수직적 집단주의라고 말해요.
이런 수직적 집단주의가 ‘갑을관계’와 ‘계층 의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들어 언젠가부터 누군가보다 조금 더 높은 층, 조금 더 넓은 평수, 조금 더 비싼 브랜드에 속한다는 사실이 존재의 증명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사회. 그렇기에 ‘주공 거지’, ‘전세 거지’ 같은 언어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사람을 평면적으로 나누는 말들이 일상이 되었고, 이웃은 경쟁자가 되었으며, 공동체의 온기는 점점 식어가는 것 같아 아쉬운 요즈음. 급기야는 아나운서님 말씀처럼 ‘아파트 외벽의 색을 다르게 칠해 구분을 짓는 시대’가 왔습니다. 태어난 집, 사는 곳, 가진 것의 크기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짓는 사회에서 관계를 잃고, 존재를 증명하려 애쓰고 있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림책 《나의 둔촌 아파트》을 저는 실향민의 마음으로 펼쳐보았어요. 143개 동 5,930세대였던, 그 시절에도 엄청난 대단지였던 둔촌 주공아파트는 제가 국민학교 입학 전 살았던 곳입니다. 그림책은 철거를 앞둔 아파트를 배경으로,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어요. 아파트 단지의 라일락 향, 복도에 흐르는 도마소리와 따뜻한 밥 냄새, 때가 되면 울렸던 두부 장수의 종소리까지.. 그림책 속, 기억의 공간을 따라가 보니 어렸을 적, 저를 한 조각을 찾을 수 있었답니다.
둔촌 주공아파트는 얼마 전 ‘올림픽 파크 포레온’이라는 고급진(?) 이름으로 12,000세대의 초대형 단지로 다시 태어났어요. 가끔 둔촌역 근처를 지나칠 때면, 시커먼 외벽의 새 아파트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모습에 괜히 주눅이 들어 발걸음을 재촉하게 됩니다. 오히려 저는 그 곁에 여전히 낮은 층으로 조용히 자리한 옆 단지의 오래된 아파트가 더 다정하게 느껴져요. 시간이 흘러도 그곳엔 오래된 나무와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는 듯해서입니다.
제 어린 시절의 고향이었던 둔촌주공아파트도, 이후에살았던 아파트도 모두 재건축으로 사라져 저는 ‘실향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적 자주 놀러 가 추억을 쌓았던 올림픽공원 근처를 지날 때마다 그 시절의 바람, 나무, 함께 웃던 이들의 얼굴이 그리워집니다. 그러니 그곳만큼은 부디 오래도록, 고향으로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결국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것은 벽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아파트 담장 너머로 다시 눈을 맞추고, 서로의 하루를 나누는 일. 그것이 이 시대의 진짜 재건축이며,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사람 사이의 거리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