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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서 Jul 08. 2020

제나 입양 일기 part 1.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2020년 5월 30일.

남양주에 위치한 어느 반려견 유치원.




"아리맘님, 제나 입양 신청서 보내주신 지 오늘로 딱 4개월 10일 되었더라구요.”


나는 입양 담당 매니저 G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그녀 어깨 너머로 보이는 '제나'와 S를 바라본다.


나와 S는 제나를 입전임보(입양 전제 임시 보호)하는 동안, 제나를 데리고 주말마다 이곳 남양주의 반려견 유치원에 등원했다. 산책할 때, 다른 강아지와 마주치면 유독 짖고 으르렁거리는 제나에겐 아무래도 주기적인 사회화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매니저 G의 권유가 계기였지만, 그 이후 주말마다 가족 나들이하듯 이곳에 온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처음 이 유치원에 왔을 때엔 분명 외투를 걸치고 있었는데.


어느새 5월도 훌쩍 지나, 유치원 창밖으로 성큼 다가온 여름은 벌써 자글자글 아스팔트를 달구고 있다.


“아, 제가 입양신청서 보낸 게 1월 말이었죠..!”



올해 1월,
나와 S는 어느 유기견 구조 및 입양 어플에서
'제나'라는 이름의 닥스훈트 믹스견의 사진을 보았다.


사람의 손과 강아지의 발이 서로를 맞잡고 있는 듯한 따뜻한 아이콘의 어플, 포인핸드(Paw in Hand).


그러나 그 아이콘을 클릭해서 들어가면, 침대에 엎드려 엄지손가락으로 폰을 스크롤하며 보기엔 너무나 가혹한 사진들로 가득했다. 언뜻 보기에도 뼛속까지 시릴 것 같은 시멘트 벽에 둘러싸여, 그 안에 또 철창에 갇혀 굶주린 채 주인을 기다리는 작은 동물들의 눈망울. 담요 하나 없는 철창 사이로 보이는 오물 자국들. 나도 모르게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사진을 보던 중, 제나의 사진에서 손가락을 멈춘다.


사진 속 제나는 어느 유기견 봉사 단체에서 구조한 후 가정집에서 보호 중인 듯, 따뜻해 보이는 크림색 담요에 앉아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갈색의 털에, 얼굴에는 하트 문양이 있는 검은 눈동자의 '제나'.


나와 S는 제나의 카메라를 바라보는 어딘지 장난기가 번득일 듯한 그 눈에 반했다.


2020년 1월, 포인핸드에서 S와 내가 처음 봤던 제나의 사진.



'그게 벌써 4개월전이라니. 시간 정말 빠르다...'


매니저 G가 말을 이어간다.


"그동안 저랑 상담도 많이 하셨고, 제나 임시 보호 하시면서 이렇게 훈련도 쭉 이어나가주셨구요.

그래서... 인내심을 갖고 제나를 알아가 주신 아리맘님과 부군님께...


오늘부로 제나 입양 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매니저 G를 비롯해서 제나를 처음 만나게 해 준 유기견 봉사 카페 운영진들이 나를 보며 함께 약속이라도 한 듯 박수를 친다. 짝짝짝짝!!


"정말요!? 이제 확정인거에요?"


오늘은 운영진들과 정기적인 체크 단계의 미팅인줄 알았는데. 이들은 이미 사전 회의를 거쳐, 오늘 우리에게 '입양 확정'이라는 선물을 주기로 마음을 먹고 온 것이다.


마스크를 낀 채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 서글서글한 웃음이 흐른다.


"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괜히, 코끝이 시큰해진다.


"와... 드디어..."


"하하하, 맞아요! 정말... 드디어..."


나도 모르게 터져나온 말에 운영진은 함께 깔깔 웃더니, 잠시 감회에 젖는 듯, 서로를 바라본다.




드디어 우리 제나가 가족을 만났네요.




매니저 G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더니, 자신의 눈두덩이를 꾹 꾹 누른다. 하긴, 나는 고작 손가락으로 어플을 눌러 클릭 몇 번으로 제나를 발견했지만, 이들은 작년 2월 16일, 추운 겨울에 제나를 보호소 철창에서 꺼낸 후부터 1년 3개월동안 보호하며 가족을 찾아왔다. 앙상한 모습의 제나를 철창에서 꺼내어, 여러 회원들의 가정집 보호를 거쳐, 지금 나와 마주하고 "가족 선언"을 한 매니저 G의 머릿속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을 터.



2019년 1월, 유사베에서 구조 전, 보호소 철창 속 제나. 제나는 경기도 포천시의 어느 마트 내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때 당시의 몸무게는 3.5kg


'유사베(유기견 사랑 베품이)'라는 봉사 카페의 운영진인 이들은, 안락사 위기에 놓인 유기견들을 구조하고, 치료하고, 아이와 생활 패턴, 성격이 맞는 새가족을 찾을 때까지 몇 달, 몇 년이 걸리더라도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그 이름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


이들은 2019년 2월 16일 제나를 구조 후, 임시 보호해줄 카페 회원들을 찾고, 병원에서 검진을 하고 접종을 맞추고, 어디 그 뿐인가. 검사 후, 심장사상충 2기 판정을 받은 제나를 두달동안 약물 치료, 입원 치료를 병행하며 완치시킨 다음, 수년 후 닥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혹은 혹여나 못된 사람들에게 잡혀가 새끼들을 한 달에 수십번씩 낳게 만드는 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중성화 수술까지 마쳤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내 주변에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 나도 그랬지만 중성화 수술을 안시킨 반려견이 과반수이고, 심장사상충이 뭐더라? 고 검색을 해보는 견주가 대다수이다. 부끄럽게도, 사랑하는 '아리'와 16년간 함께 살았던 나조차도 그런 부족한 견주 중 한 명이었다.


그렇게 모든 검진과 미용, 치료를 거쳐 제나가 바르르 떨고 있는 앙상한 유기견이 아닌 건강한 한 마리 어엿한 강아지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유사베'의 <제나 가족 찾기> 프로젝트가 비로소 시작된다. 제나는 다시는 버림받지 않도록,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 나쁜 습관을 교정받기 위해 훈련사 선생님 집에서 무려 6개월동안 교육을 받는다. 운영진 중 홍보 스탭은 건강해진 제나의 모습을 예쁘게 찍어서 '포인핸드'와 같은 유기견 입양/보호 커뮤니티에 공고를 띄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매니저 G를 비롯한 운영진들과 임보맘들이 서로 공유하고, 임보일기(임시보호하며 제나의 상태를 기록하는 일기)를 매주 카페에 게제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비단 제나뿐만이 아니라, '유사베'가 구조한 모든 유기견들이 그렇게 철저한 '가족 찾기' 프로젝트를 거친다는 점이다.


'유사베' 디자인스탭 E님이 제작한 제나의 입양 홍보 사진. '유사베'에서 구조 후 제나는 체중이 5.2kg까지 늘었고, 견생 첫 프로필 사진 촬영까지 마쳤다.


이들은 구조한 마릿수보다도 구조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얼마나 맞는 가족과 만나게 되는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1년에 100마리를 구조해서 입양을 보내도, 한 마리 한 마리 신경 쓰지 못하고 책임감 없는 견주에게 입양을 보내서, 한 번 상처받은 아이들이 똑같은 상처를 받으며 파양된다면 무슨 소용인가. 100마리를 구조해도 결국 그 중 50마리가 다시 버림받는다면... 나는 아직도 얼마전 인터넷에 떠돌던 어느 유기견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세 번째 파양되어 다시 보호소 철창으로 돌아온 강아지의 얼굴을. 이제 그 어떤 인간이 다가가도 눈동자에서 두려움의 그늘이 걷히지 않을 듯한 절망의 검은 눈을. 그 눈밑에 지워지지 않을 눈물 자국을.


이러한 이유로, '유사베'는 평생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구조한 한 마리, 한 마리에게 맞는 최선의 방법과 절차를 밟는다. 그 과정이 몇 달, 때로는 몇 년이 걸릴 지라도.


저희 유사베는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가 모토입니다.


그들의 눈은 이 한 마디를 머금고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제나의 가족이 되어 줄 사람들을 찾아 왔다. 영문도 모른 채 버려진 강아지 한 마리를 중심으로 각자 다른 지역, 연령대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 하나의 바람으로 버텨온 것이다.


그랬던 사람들이 입을 모아 나에게 "이제 당신들이 제나의 가족입니다" 라고 선언을 한다.


박수를 쳐 준다.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저들이다.


"매니저님이야말로 고생 많으셨어요. 다른 운영진 분들도 그렇구요. 임보해주셨던 카페 회원분들도요. 정말 훌륭한 일 하신 거에요.


제나를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입양이 확정된 5월 30일, 유치원 마당에서 활짝 웃는 제나.



나는 내 눈앞에서 아직도 눈두덩이를 꾹 꾹 누르고 있는 매니저 G의 얼굴을 바라본다.


내가 G를 처음 만났던 게 언제였더라?


생각해보니, 우린 오늘이 고작 두 번째 만남이다. 허나 우리가 함께 강아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나눈 시간은... 무려 15시간. 수치만으로 놓고 보면 눈 앞에 앉은 아직은 조금 낯선 이 여성과 나는, 6년 연애 끝 결혼한 남편 S보다도 긴 통화를 나눴음에 틀림 없다. 첫 상담 때부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두 명의 여성이, 오로지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세시간 반동안 통화를 했으니.



2020년 2월 10일, 저녁 8시 경.



지이잉- 지이잉-


부엌 테이블 위에 놓은 입양신청서를 바라보던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핸드폰 모니터를 바라본다.


발신인

‘유사베 매니저 G’


아직 이름도 알지 못하는 매니저 G(매니저의 카페 닉네임)와의 첫 입양 상담이다.


“안녕하세요 아리맘(나의 닉네임)님!! 유사베 매니저 G입니다!! 보내주신 제나 입양 문의 신청서는 운영진과 잘 검토 했구요-“


활기차고도 의욕충만한, 쩌렁쩌렁한 여성의 목소리.


아, 듣기 좋다. 연극했던 선배들 생각이 나는 속 시원한 목소리.


매니저 G는 기본 성량이 큰 편이지만 하이톤이 아니어서, 제나와  '유사베'에 대한 설명을 수화기너머로 처음 들었을 때에도 귀에 쏙쏙 들어왔다. 나긋나긋하다기보다는 또렷하고 명료한 목소리, 그래, 색깔로 치자면 연두보다는 진녹색, 맛으로 치자면 유자차보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녀는 분명 어릴적 반장 한 번, 아니 한 번 이상 해봤을거야. 아니, 아니, 학생회장이었을지도 몰라. 나는 처음 만난, 아니 처음 듣는 수화기 너머의 그녀를, 오로지 그녀의 목소리와 화법만으로 상상해 본다.  


우리의 첫 입양 상담 처음 한시간 가량은 입양신청서로부터 예상 가능한 질문들에 대한 나의 정해진 답변들이 오고 갔다. 이미 신청서에 한 번 썼기에 익숙한 주어와 동사들. 왜 ‘제나’를 입양하고 싶은지, 지금 생활 패턴이 어떻게 되는지, 주거 환경 및 동네가 반려견을 키우기엔 적합한지.


나는 눈앞에 내가 쓴 내용을 보면서, 그 자리에서 알맞게 내가 쓴 답변에 요리 조리 덧붙여 조금이라도 더 내가 “옳바른 견주”로 보이게, 아니 들리게, 애를 써서 머리를 굴린다.


와, 벌써 한시간 반이 지났네. 꽤 순조로운거 같은데?


안도의 한숨을 쉴 때 즘.



“아리맘님은 아리를 왜 키우셨나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훅 들어오는 어퍼컷.


이 질문을 듣는 순간, 눈앞이 잠시 흔들린다. 어퍼컷은 바로 내 뒷통수를 가격한 듯 하다. 잠시 아찔하다. 눈물이 핑 돈다.


아리 생각만 해도, 누군가가 아리 이야기만 해도, 나는 아직도 이렇게 핑-하는 아픔을 감출 수 없다.


“이제는 하늘나라의 별이 된 나의 ‘아리’ 와의 생활은 어땠나요?”


“아리랑 16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했다고 입양신청서에 써주셨는데요. 시츄였다구요.


아리는 어떤 강아지였나요?”



우리 가족이 사랑했던 아리, 당시 14살.


16년동안 우리 가족의 일원이었던 아리에 대해, 나는 아리를 반려동물로 왜 맞이했는지, 단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물을 이유가 없었다.


그냥 가족인데? 식군데?


‘원래 동생 생일 선물이었어요. 동생이랑 생일이 같아서, 어느 신혼 부부가 키우던 시츄 두 마리가 새끼를 낳아서 분양중이길래 엄마랑 동생이 데려왔어요.’


‘아리가 한창 어렸을 땐 저는 고등학교 때라, 공부하느라 바빠서 많이 못놀아 줬어요.’


‘기억이 잘 안나네요... 아리가 6살때 까진.’


‘글쎄요, 하지만 노년에는... 그 누구보다 아리를 정말 아꼈어요... 아리는 평생 산책을 안 나간 날은 손에 꼽아요... 여행도 같이 다녔구요...’


이런 입밖으로 내뱉으면 분명 G가 오답 판정을 내릴 거 같은 하찮은 말들만 떠오른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문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갸우뚱 기운다. 핸드폰을 잡은 손과 핸드폰 커버 사이에 조금씩 땀이 나서 미끌거린다. 시계를 보니 거의 밤 11시가 다 되었다.


가만...


나는 왜 아리를 키운 것인가? 아리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건...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애완이 아닌 반려인 건... 왜일까. 비록 처음에는 솜뭉치같은 인형의 크기로, 그 앙증맞은 모습으로 동생의 생일 선물이 되어 우리집에 왔지만.


가만, 나는 그렇다면 지금 왜, 다른 동물을 다시 가족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아직 아리 생각만 해도 명치부터 눈물이 솟구쳐 나오는 슬픔이 일렁이는데.




사람은 왜 개를 키울까?



아직 만나보지 못한 제나 라는 유기견과, 내가 16년동안 매일을 마주한 가족 아리의 사이에서, 나는 갑자기 길을 잃은 듯 했다. 나는 가족을 잃고 애도중이면서 또다시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고자 준비중인거야.


도대체, 왜?


G가 핸드폰 너머로 나에게 또박 또박 물은 그 질문은, 늦봄의 끝자락에 내리는 안개비마냥 축축히 내 머릿속을 메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름은, 지금은, 이미 코앞에 와 있다.


제나를 맞이하기 전, 나는 그 답을 찾아야 한다.




Part 2. 에서 계속됩니다.


제나의 긴 입양 절차를 마무리하며, 처음 입양담당 매니저 G가 나에게 던졌던 질문은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당신은 왜 개를 키우시나요? 당신은 왜 한 마리의 동물을 사거나, 혹은 입양해서, 그 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 밤하늘의 작은 별이 될 때까지 함께 사나요? 당신의 인생에서 반려 동물이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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