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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 Jan 09. 2017

동남아 일주 / 뭘 고민해?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여자 혼자 26일간 동남아 일주 결심기





    내 키는 158cm다. 재는 곳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충 그 정도 되는 것 같다. 대한민국 여자 평균보다 작고 대만에서는 XS 사이즈, 미니미, 키 큰 친구들의 팔 받침대 등을 담당했다. 손도 발도 작아서 키보드를 칠 때면 한 옥타브 차이 나는 음을 한 번에 누를 수 없고 신발을 살 때는 항상 사이즈가 있는지 먼저 물어봐야 한다.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다.


    키가 작으면 조금 무섭게(?) 생기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안전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대만에서조차 몇 번 위험할 뻔했던 경험이 있는데 제일 친한 친구에게 하소연했다가 '작고 하얗고 애 같고 동양인이라 위험하기 좋은 조건은 다 갖췄다'는 평을 들었다. 이 친구가 누군가와 헤어질 때면 '나한테만' 항상 집에 잘 들어갔는지 꼭 확인하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이런저런 이상한 일들이 있었다고 얘기했던 게 마음에 남아서였을 수도 있고.


    친한 한국인 언니에게 귀국 전에 2주 정도 혼자 대만을 한 바퀴 도는 환도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는 또 어떤가. 일언지하에 '다른 사람 다 돼도 너는 안 돼'라고 말씀하셨다. 뒷덜미 잡아 주워가기 좋게 생겼다는 말도 함께 꼭 다른 사람이랑 같이 가라고 덧붙이시는데 친구가 했던 말이 오버랩됐다. 난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거지?



여행자로서의 꿈, 나 홀로 여행




    대학 입학 후 1학년 1학기를 제외하고는 아르바이트를 쉬었던 적이 없다. 매일매일 바쁘게 살면서도 항상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주된 이유는 여행을 가기 위해서였다. 엄마론을 쓰고 나중에 갚는 일은 있었어도 '여행은 내가 벌어서'라는 생각이 강했다. 부모님께서 내주실 생각이 없으셨기도 했고. 네가 가고 싶은 건데 우리가 왜? 매 학기 시간표를 짤 때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학기 중 여행 갈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었고 당일치기 여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서울을 떠날 때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비행기를 타는 것도 좋았고 전혀 새로운 곳에 가는 것도 좋았다. 여행지에서의 식도락 탐방은 물론이다.


    바쁜 일상에서 낼 수 있는 시간은 거의 다 빼서 돈이 모이는 대로 여행을 다녔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나 홀로 여행'이었다. 혼자 갔다 진짜 누가 주워가면 어떡해? 하는 생각에 겁나는 것도 있었고 여행을 가고 싶을 때면 주변에 여행 메이트가 돼줄 만한 친구들이 많았기도 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혼자 멀리 여행을 가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나 홀로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고나 할까. 혼자 하는 건 다 잘하는데 여행이라고 뭐 다르겠어?


    그렇게 대만 환도 여행을 희미하게 스케치하고 있던 중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9개월간의 유학 생활 동안 아빠에게 전화가 온 적은 몇 번 없었지만 늘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되곤 했는데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이미 귀국 항공권을 산 상황에서 학기 종료일부터 한 달 정도가 남는데 그 시간 동안 뭘 할 거냐는 전화였다. 이때부터 이때까지 귀국 정리 해야 되고 혼자 여행도 가고 아빠도 놀러 왔으면 좋겠고, 종알종알 나름의 브리핑을 하는 내게 아빠가 딱 한 마디를 던졌다.



뭘 또 대만이야? 안 가본 데 가




    ...응? 엄마면 몰라도 아빠가 혼자 여행 가는 걸 반대하진 않을 거란 생각이 있긴 했는데 그래도 예상외의 답변이었다. 이미 한 달의 공백기에 빨리 와서 졸업 준비 안 하고 속 편한 소리 한다는 엄마의 잔소리에 약간 주눅 들어 있었던 터였다. 그래도 일찍 돌아갈 생각은 없었지만 살짝 벙쪄있는 내게 아빠가 덧붙였다. '그동안 안 가본 나라 가서 가봤던 데랑 비교도 하고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그렇게 또 가겠어? 일본 한 2주 가도 좋고. 대만은 1년 가까이 살았잖아.'


    기껏(?) 환도 여행 정도를 계획하고 있던 내게 아빠가 훨씬 큰 그림을 던져준 셈이었다. 역시 우리 아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빠 덕후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도를 보며 가고 싶었던 나라들을 꼽고 항공권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사실 대만은 한국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싸고 가까운 나라들이 많아서 여러모로 동남아를 여행하기에는 최적의 출발지다. 덕분에 8월에 베트남을 다녀왔을 때도 경비를 대폭 절약할 수 있었고.


    왜 남은 시간을 온전히 대만에서만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따지고 보면 내 휴학 기간은 3월 복학 전까지인데 표를 예매하고 나니 너무 귀국 날짜에 매여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한국에 돌아갈 생각과 돌아간 이후의 계획을 생각하는 데 바빠 그 사이의 시간을 좀 더 현명하게 쓸 생각을 못했던 거지. 이래서 해야 하는 것이 가득한 현실이 무섭다. 사고의 자유가 갇혀버리는 느낌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의 가출


총 여행 기간 26일 (2017.1.8~2017.2.2)
총 예상 경비 200만 원+
여행 테마 : 나 홀로 여행+버킷리스트+히든 젬을 찾아!


    그렇게 그 날부터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평소 여행을 다닐 때 그다지 열심히 계획을 세우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심지어 베트남 여행에서는 당일날 숙소를 예약하기도 했었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여행 전에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간 가보고 싶었던 곳들과 여정 상의 여건을 고려해 총 6개국 9개 도시를 포함한 루트를 완성했다. 이 루트를 만드는 데만 몇 번을 갈아엎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름대로 최선의 안을 만든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다.



사실 저가항공을 탈 때마다 돈 많이 벌어서 비즈니스 타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쯤 이뤄질진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26일간의 장기 여행. '나 혼자 여행 갈 거야!'라고 말한 순간부터 이미 약간 주위의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여행을 마치고 나면 분명 스스로 한층 더 성장할 거라고 믿는다. 혹시나 나처럼 한 번쯤 여자 혼자 길게 여행을 해보고 싶지만 두려우신 분이 계시다면 내 여행기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떠날 수 있도록 여행을 준비하며 블로그부터 트립어드바이저까지 샅샅이 뒤지고 휴민트까지 동원한 정보도 자세하게 글로 남길 생각이다.



    여행 첫 날의 밤은 유유하게 흘러간다. 이제서야 조금씩 그리워지기 시작한 서울의 한강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다낭의 한강에서 첫 날 밤을 보냈다. 사실 루트나 열심히 만들고 여기가 좋다더라, 하고 수집해놓기만 했지 그 이후는 어차피 가면 다 된다는 생각에 계획 없이 왔는데 그런 것 치고는 첫 날이 괜찮게 흘렀다. 내일은 또 어디를 갈까? 그냥 발길 닿는 대로, 흐르는 대로 남은 26일이 행복하게 지났으면 좋겠다. 그게 내 특별했던 휴학 기간을 마무리하는 예쁜 여행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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