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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 Jun 21. 2023

정말 왜 이럴까, 나의 마음

마음이라는 우물을 들여다보는 일

늦깎이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경제적으로 (아직 통통한 쥐꼬리에 불과하지만)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서, 직장 밖에서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자주 생겼다. 여러 가지 취미모임에서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사실 나는 대학 재학 시절 이후에 사귄 사람들밖에는, 친구라 할 만한 이들이 없다. 사춘기 시절에 읽은 책과 만화책들, 보던 영화들은 정말 낱낱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친구라 할 만한 이는 거의 기억나질 않는다. 당연히 연락하고 지내는 이도 없다. 한때 심각하게 고민했다. 내 성격이 이상한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사람 사귐에 서툰 편이다. 지인도 많지 않다. 많이 만들 생각도 그다지 없다. 마음에 근력이 없어 그렇다.


게다가 일단 굉장히 소심하다. 엄마 말을 들어보면 초등학교 때까진 발표도 나서서 하고 엄청 싹싹한 아이였던 것 같다. 그러나 사춘기 이후 엄청나게 자기 안으로 파고들어갔다. 친구들을 만나 노래방에 가고 떡볶이를 사먹는 것보다, 혼자 FM라디오를 들으며 윤상이나 김현철, 조규찬 같은 사람들의 음악을 듣고, 신일숙과 황미라, 유시진 같은 사람들이 그린 만화를 보는 게 좋았다. 아니면 소설을 읽거나. 지금 내 취향의 대부분이 만들어진 건 아마도 사춘기 무렵부터다. 그래서 나는 당시에 찍힌 사진도 거의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 학창시절의 기억은, 마치 칼로 도려낸 것처럼 없다.


그래서 천안 이북에서 나만큼 소심한 사람이 없다는 농담을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한다. (그런데 최근에 이 말에 깊이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되어서, 이제는 남방한계선이 조금 더 내려갈 것 같다. 아마 공주나 부여 정도까진 내려갈 예정이다) 게다가 나는 다른 사람들 눈치도 엄청 본다. 최근까지 사귄 단짝도 그런 나를 무척 염려했었다. 어떨 때는 혈족이나 친구보다도 심정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단 한명의 연인에게마저 눈치를 보는 사람이라니.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도, 이 부분 때문에 정말 스스로 견디기 힘들었다. 사실은 지금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 말투, 몸짓, 심지어는 카카오톡 메시지에 쓴 이모티콘이나 글자들까지도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내가 입밖에 말을 내거나 어딘가에 글을 쓸 때도 무척 조심하는 편이다. 다른 글에 내가 말과 글에 민감하다고 쓴 적이 있는데, 아마 이런 성격 때문일 것이다. 내가 무심코 뱉은 말, 내가 무심코 지은 표정, 내가 무심코 쓴 문장 때문에, 다른 사람이 상처 입는 것이 너무나도 두렵다. 그러다 보니 말수가 적어지게 되었고, 지을 줄 아는 표정도 많지 않다. 최근에 달리기에 빠지면서 러닝크루들에 줄지어 가입을 했고,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사진 찍힐 일이 많아졌는데, 찍힌 사진들을 보면 표정들이 하나같이 정말 가관이다. (이 글을 빌려 사진작가님들, 내가 인스타그램에 공개하는 사진들을 보는 나의 지인들에게 심심한 미안함을 전한다)


대신,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열심히 헤아리려 하는 편이다. 지나치면 시건방진 오지랖이 될 수도, 소위 '넌씨눈'이 될 수도 있어 무척 조심하지만. 내가 소심하고 다른 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을 보면 잘 지나치지 못한다. 특히 마음이 여리고 선하고 순할 것 같은 사람들을 보면 말 그대로 무장해제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렇게 글로라도 주절거리기를 좋아하는 나와 달리,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신경이 자꾸만 쓰인다. 저렇게 꾹꾹 담아놓고 있다가 마음에 병이라도 들면 어떡하나, 싶어 걱정이 된다. 요즘 들어 지인이 많이 생기면서, 그들의 소식을 접할 일이 많아지면서, 그런 걱정을 종종 한다. 참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가족들은 이런 내가 마음이 여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남들은 아이 키우고 집 사고 가정 이루고도 한참 남은 그런 나이에, 제발 사람 조심하란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렇게 나약해서 험한 세상 어떻게 살래, 하는 엄마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킥킥 웃는다. 다행히 주변사람 복이 많아서인지, 누군가와 크게 다퉈본 적이 없다. 가끔 사람 때문에 크게 속앓이를 할 때는 있지만, 그거야 누구나 흔히 겪는 일이니 뭐 그러려니 한다. 이 나이를 먹고 보니, 모든 것이 경험이다. 언젠가 다른 곳에도 쓴 적이 있지만, 나는 굉장히 배움과 이해가 느리다. 겪고 또 겪어봐야, 겨우 이해하고 적용할 줄 안다. 그래서 늘 모든 것을 배우는 마음으로 지낸다. 달리기도, 책 읽기도, 글쓰기도, 직장생활도, 사람 만나는 일도, 모두 배울 것 투성이다.


요즘도 열심히 배우며 지낸다. 어쩌다 러닝크루를 4개나 가입하고 보니,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난다. 거의 매일같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들에서, 인스타그램에서, 블로그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심지어 때때로 전시 감상 모임과 독서모임도 나간다. 매 모임마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앞서도 말했듯이 내가 다행히 주변사람 복이 많아서, 대부분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한결같이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들. 그들에게 이것저것 많이도 배운다. 달리기를 잘하는 법부터 사람을 세련되게 대하는 법까지. 때로 정말 난처한 말실수나 글실수를 저지르면서도 배운다. 이런 말이나 글을 쓰면 어떤 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자,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고 삼가자, 생각한다.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자고 생각하면서 괴로웠던 부분은, 이런 나의 마음이 워낙 못났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기쁨에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소심하여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너무 보다가 의도하지 않게 말실수나 글실수를 하고, 기타 등등. 그런 나의 마음을 돌아보는 일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자책과 자괴가 일상이다. 너는 정말 왜 그러니, 남들은 잘 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못 하니. 자꾸만 다그치고 채찍질하려 든다. 그러다보니 마음에 병이 깊어진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내가 퍽 불쌍하다. 대학 재학 시절, 어떤 선배가 내 글을 읽고, 수란이는 자기연민이 심하구나,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지금껏 자기연민을 지독하게 혐오해 왔는데, 그래도 왠지, 글 속 내가 조금 안쓰럽게 보인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그렇구나. 내가 나의 마음을 계속해서 들여다보려고 했던 것은, 이렇게 축축하고 깊고 더러운 나의 우물을, 그래도 고개 돌리지 않고 계속해서 들여다보려고 했던 것은, 이런 나마저도 기꺼이 끌어안으려는 노력이구나. 내가 나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그래서구나. 기어이 나를 마주하려고. 나의 가장 저열하고 비참한 부분까지도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결국에는 맞닥뜨리려고. 그것으로부터 끝내 배우려고, 아주 느리고 오래 걸리겠지만 어떻게든 익히고 적용하려고, 나의 남은 삶에, 그 모두를. 어쩌면 내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마음이 퍽 소중해진다. 작고 못생겼지만 조금 귀엽게도 느껴진다.


살아있는 동안 아껴줘야겠다, 이 마음. 좋은 사람들에게, 기쁘고 슬프고 아름다운 모든 순간들에게, 어디서든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면서 갈고 닦아야겠다, 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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