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게임 '레인드롭 팝' 개발기
인디 개발자로서 참여할 수 있는 전시회 혹은 공모전이 국내외에 많이 존재한다. 레인드롭 팝은 BIC Festival 2017을 시작으로 G-STAR 2017, 타이페이 게임쇼 2018, 구글 인디게임 페스티벌 2018에 출품작으로 다녀왔다.
이번 챕터에서는 레인드롭 팝이 가장 처음 참여했던 BIC Festival을 위주로 다룰 것이다. 그리고 이외의 행사 및 공모전 등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챕터에서 함께 다뤄보도록 하겠다.
(이번 챕터부터 게임 이름을 레인드롭 팝으로 고정하도록 하겠다. 개발 기간 대부분을 컬러레인으로 작업하다가 출시를 위해 이름이 바뀐 케이스라 컬러레인이라는 타이틀이 개발기에는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는데, 두 가지 이름이 혼용되다 보니 읽는 입장에서 헷갈릴 것 같아 최종적으로 마켓에 나와있는 이름을 기준으로 통일하도록 하겠다.)
개발기 내내 언급되고 있는 BIC Festival은 매년 부산에서 열리는 인디 게임을 위한 전시회다. 레인드롭 팝이 참여했던 2017년 전시회가 3회째 되는 행사로써 총 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으니 규모가 작다고는 할 수 없는 행사다. 그래서 인디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소위 ‘본진’이라고도 불린다.
그렇게 '본진'에 합류할 준비를 착실히 해가던 어느 날 운영 사무국으로부터 부스 어워드를 수상하면 해외 게임쇼에 나갈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해외 게임쇼에 참여할 수 있다면 게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조금이라도 더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스 어워드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보자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게임 자체에 대해 시상하는 상을 노려볼 만도 할 텐데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이전 해에 수상했던 리스트들을 확인해본바 레인드롭 팝으로는 어디 하나 내밀어볼 경쟁력이 없다는 냉철한 자기 분석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합격 발표 이후 실제 행사까지 남아있었던 약 두 달간 게임 제작을 하는 동시에 그와 비슷한 에너지로 부스를 어떻게 꾸미고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고민했던 영역은 행사에 참여한 관람객에게 어떤 기념품을 나누어 줄 것인가였다. 게임의 특성이나 재미를 제대로 홍보할 수 있으면서도 받았을 때 기쁘고 기념할만한 것이어야 한다는 전제로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검색해가며 후보 목록을 정리했다.
추려진 리스트에서 사용 가능한 자금을 토대로 각 상품의 매력에 대해 평가를 해서 최종적으로 피규어와 스티커로 결정하였다. 피규어는 사실 다른 아이템들에 비해 돈이 많이 들어가는 아이템이라 부담스럽긴 했지만 가장 매력 있는 하나에 몰아서 투자하자는 결론에서 피규어를 메인 굿즈로 정하게 되었다.
목표는 피규어를 만든다로 정해졌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장 처음에는 수제로 만드는 업체에 견적을 의뢰했다가 그 돈이면 그냥 차 한 대 사서 놀러 다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그래서 직접 모델링 해서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방법을 고려해 봤는데 그 시간과 노력이면 그냥 게임이나 더 열심히 만드는 게 미래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또다시 포기했었다.
여러 업체를 찾아보다가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퀄리티로 작업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이곳을 통해 제작을 진행하기로 최종 정리를 하게 되었다.
피규어를 만드는 과정은 피규어로 만들 게임 캐릭터를 선별해서 업체에 이미지를 전달해주면 3D로 모델링을 해서 어떤 형태가 될지를 먼저 보여주었다. 그리고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최종 버전으로 합의를 보았다.
위의 이미지가 최초에 전달받은 모델링 이미지인데 무엇보다 캐릭터가 어떻게 서있으라고 저렇게 디자인을 해서 줬는지 모르겠다. 세심하게 살펴보고 수정하지 않았다면 옆으로 굴러다니는 피규어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후에 합의된 모델링을 토대로 실제 시안을 작업해서 확인시켜주었고, 결과물이 만족스러운듯하여 최종적으로 총 1000개의 피규어를 생산 주문하였다.
피규어를 받아보니 내가 만드는 게임의 캐릭터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세상에 등장했다는 사실에 신기하면서도 감격스러웠다. 기념으로 소장할 몇 세트와 추후에 사용할 여분을 일부 빼두고 행사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리해 두고서 길었던 작업의 끝을 맺을 수 있었다.
계산해보니 최초 의뢰부터 최종 완성까지 대략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미리 준비해서 작업하지 않았었다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계획이 취소되었을 것이고 완성된 피규어도 결국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돈은 엄청 아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로 준비한 기념품은 스티커였다. 스티커는 들이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으면서도 효과는 어느 정도 보장된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서 결정하게 되었다.
업체에 주문을 넣고 물건을 받는 과정은 어려울 것이 없었지만, 스티커 자체의 디자인을 위해 고민했던 기간이 꽤 길었다.
기념품을 제작하는 작업과 함께 행사를 위해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바로 실제 관람객을 맞이할 전시 부스를 꾸미는 일이었다. 행사의 취지가 인디 게임을 위한 축제의 장이므로 축제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전시자로서 일조하고 싶었다.
물론 방문하는 관람객이 게임에 집중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가장 기본으로 갖춰야 할 요건이었고, 외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붙잡아서 게임을 어필할 수 있는 동선 배치를 해야 하는 것 또한 중요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부스에 방문한 경험 자체로 게임 세계에 한발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처음부터 부스 어워드를 노린다는 목표까지 세워뒀으니 최종 퀄리티를 어느 수준까지 올려야 할지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전 해에 열렸던 BIC 행사 현장의 사진들을 참고해가며 어떤 방향으로 부스를 꾸미는 것이 좋을지 오랜 시간 회의를 통해 계획을 세워갔다.
부스의 전체적인 느낌은 게임 내 배경인 마니섬을 상징하는 자연을 표현하면서 게임의 핵심 주제인 색색의 비가 내리는 하늘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를 실제로 달성해줄 수많은 물품들을 정리하고 구매하기 시작했다.
준비해놓고 보니 가지고 가야 할 박스가 너무나도 많아서 직접 가져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큰돈을 들여 대부분의 짐을 택배로 미리 부산으로 보내야만 했다.
행사 준비를 했던 지난 2개월 동안 게임 만드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추가적인 에너지까지 사용했으니 정작 행사 즈음이 되어서는 매우 지쳐있었다. 하지만 힘들었던 시간은 끝났고 이제 즐길 시간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설렘과 두근거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고생했던 시간을 보상받고 충분히 즐기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부산으로 출발했다.
2017년 9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진행되는 본 행사를 위해 하루 전날인 9월 14일에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스에 세팅해야 할 양이 매우 많았기에 숙소에 짐도 풀지 않고 곧바로 행사장으로 갔다. 부스의 자리를 확인하고 그간 머릿속으로만 상상하고 계획했던 3m x 3m 크기의 공간을 열심히 준비한 재료를 가지고 하나씩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부스 꾸미는 것을 계획하던 시점에 가장 걱정했던 점은 준비했던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하나의 컨셉으로 완성될 것인지, 아니면 각자가 따로 놀아서 지저분해지기만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행사에 참가한 다른 팀들이 세팅을 끝내고 돌아가는 와중에 우리는 날이 어두워지고 전등이 없어 깜깜 해질 때까지 부스를 꾸몄고, 힘들게 작업을 해놓고 보니 전체적으로 잘 어우러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우리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과 현장에서 함께 즐기는 일만이 남아있었다.
3일 동안 치러진 실제 행사는 쉴 틈 없이 진행되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 정도까지가 관람시간이었는데, 둘이서 부스를 지키다 보니 밥 먹을 시간 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바삐 돌아갔다.
행사가 진행되던 3일간 느꼈던 감정은 몸은 몹시 힘들지만 즐겁고 생기 넘치는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만든 게임을 눈앞에서 플레이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데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면서 플레이하는지를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었다.
성격이 살갑지 못해 낯선 이에게 말을 잘 붙이는 타입이 아닌데도 이때만큼은 관람객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즐기다 보니 도리어 내가 행사의 손님이 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몸은 지쳐갔지만 정신적으로는 도리어 에너지를 얻고 있는 기분이라 그간 피폐해졌던 정신이 치유되어 힐링하고 있는 기분까지 들었다.
운영상 실수라면 만 명 정도 오는 행사니까 1000명의 관람객은 받겠지라고 생각하고 1000장의 설문지를 준비했었는데, 예상보다 일인당 플레이 시간이 길어서였는지 3대의 시연기기가 끊임없이 돌아가는데도 불구하고 행사 기간을 통틀어 300명 정도의 관람객만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3대의 시연기기로 관람객당 평균 10분으로 해서 3일 치를 계산하면 몇 명을 받을 수 있는지 미리 파악할 수 있는 문제였다. 기본적인 수량 예측을 하지 못했다 보니 힘들게 가져간 피규어며, 스티커, 설문지까지 남은 양이 매우 많았다.
마지막 날에는 시상식이 있었다. 게임 자체에 대한 수상은 애초에 노릴 생각이 없이 오직 부스상을 노리고 참여했었던 목표는 운 좋게도 달성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부스의 퀄리티가 압도적이었던지 다른 부문과 다르게 노미네이트도 없이 단독으로 후보작에 올라서 수상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Excellence in Art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다.
지난 3일을 되돌아보면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행사장에서 얻은 에너지는 앞으로 내가 게임을 개발하는 데에 좋은 자극제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이 기분을 또다시 느낄 수 있도록 다음 해의 행사에도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BIC Festival이 가진 가장 멋진 점은 관람객의 참여 밀도가 다른 게임쇼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시간 진지하게 게임을 즐겨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게임의 발전을 위해 참고할만한 반응과 의견을 계속해서 공급받을 수 있으니 이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한 가치를 가진 행사라고 단언할 수 있다. 제작자의 컴퓨터에서 만들어져서 온라인으로 배포하고 온라인으로 다운로드받아 게임을 즐기는 시대에 제작자와 플레이어가 만나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현장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을 것이다.
덤으로 앞으로 게임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만한 기회를 얻는 계기도 되었다. 먼저 현재 함께 작업 중인 퍼블리셔를 만나 퍼블리싱 계약을 할 수 있었고, 언론사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또한 행사장에서 주고받았던 업계 관계자의 명함들은 여전히 유용하게 잘 사용되고 있는 중이다.
[BIC Festival 이후에 했던 인터뷰 기사 Link]
http://www.khga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5146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면 바삐 돌아가는 행사 스케줄로 인해 개발자들끼리 교류할만한 시간이 많이 없었다는 점과 개발자이기 이전에 게이머인 한 사람으로서 출품된 게임들을 즐겨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럴 여유가 없었던 점 정도인 것 같다.
비록 2018년 행사는 출시 일정 때문에 너무 바빠 출품조차 하지 못했지만, 현재 제작 중인 신작을 착실히 완성시켜서 2019년 행사에는 반드시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6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