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rn it, Love it, and Leave it
잘 지내셨나요?
국외훈련에 선발되었을 때, 이 소식은 꼭 전해야지 생각했었답니다!
초임 때부터 국외훈련을 꼭 가보고 싶었거든요.
선발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확인했는데 국외훈련은 근무기간이 3년 이상 되어야만 한다는 조건이 있었어요.
근무기간이 3년을 넘어갈 때에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국외훈련은 대부분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올해 초 프로파일링 역량 강화를 위한 국외위탁교육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1명만 선발한다고 해서, 떨어지더라도 한 번 지원서는 써보자! 하는 맘으로 서류를 작성했는데 운 좋게 선발되었어요.
3월 초에 선발되었고 여러 준비 절차를 거쳐 드디어 미국에 도착을 했습니다. ^_^
지원서를 쓸 때 우리나라와 미국 간 범죄수사 환경의 차이를 떠올려 보았어요.
경찰 활동에 대한 인식, 관할구역의 넓이, 대륙법/영미법 체계, 플리바게닝 여부 등 많은 부분이 크게 다르다는 것은 모두 알고 계실 거예요.
우선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차이는 ‘CCTV 밀집도’와 ‘지문 등록 제도 여부‘ 였습니다.
우리나라는 CCTV와 지문 등록 덕에 굉장히 높은 검거율을 보이잖아요. 사건이 발생하면 형사들이 인근의 CCTV를 전부 뒤져 초 단위로 피의자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죠. 그러나 미국은 워낙 넓어 CCTV가 밀집해 설치되기 어렵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모든 성인이 지문을 등록하기에 현장에서 지문만 발견하면 피의자가 바로 특정됩니다. 알아보니 미국은 특정 상황에만 지문을 등록하더라고요.
CCTV와 지문 없이, 수사는 과연 어떻게 이루어질까?
이는 제가 법심리학을 공부하며 내내 관심을 가졌던 주제인 ‘간접증거의 증명력’,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는 증명’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CCTV에 범행 장면이 촬영된다면 그보다 더 직접적인 증거는 없겠죠.
그런데 CCTV가 없다면 피의자의 범행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피해자가 자신의 집에서 사망한 사건을 상정해 봅시다. 천만 다행히도 피해자 옆에서 발견된 칼에서 피의자의 지문이 나온 상황입니다. 형사는 확실한 증거를 찾았다고 안도할 수 있을까요? 피의자가 “나는 피해자의 집에 놀러 갔던 것뿐이고, 집을 구경하다가 피해자의 칼을 만져보았으며, 내가 나올 때까지 피해자는 살아 있었다”라고 주장한다면 그의 범행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요?
지문이 발견되지 않는 사건 현장도 상상해 볼까요.
야외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피해자, 현장감식을 아무리 해봐도 발견되는 것이라곤 피해자의 지문과 유전자뿐일 때. 대체 누구를 수사해야 할까요?
피해자에게 원한이 있을 법한 사람? 동종범죄 전과자? 주변 거주 전과자?
CCTV와 지문은 수사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지면, CCTV와 지문 없는 상황에 대한 대처가 어려워지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다른 수사환경에서는 어떻게 범행을 입증하는지,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는 증명’에 대한 기준이 우리나라와는 다른지에 대한 궁금증이 늘 있었습니다.
또 넓은 영토 특성상 사체가 즉시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 같더라고요(우리나라는 부패취로 인한 이웃의 신고, 등산객/낚시꾼의 발견이 상당수 있는데요). 사체 유기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쉽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제가 온 플로리다는 악어가 굉장히 많은 지역이래요. 늪지에 사체를 유기하면 영영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겠죠.
사건이 발생하고 시일이 지날수록 수사가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지거든요. 미국 경찰은 이런 사건을 많이 경험할 텐데 어떻게 대처할지도 궁금했습니다. (딱히 묘수는 없겠지만...)
이번주 월요일이 수업 첫날이었어요. 미국 전역에서 모인 경찰관들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경찰들은 수업 시간에도 대부분 총을 차고 있더라고요. 총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시간 전부가 경찰관으로 복무해야 하는 시간일 텐데 대단하더라고요.
저는 지구대에 있을 때만 근무를 위해 총기를 다뤄보았거든요. 출근해 무기관리명부를 작성하고 반출하고, 퇴근 전 무기고에 반입하는 절차를 철저히 지켜 근무시간에만 총기를 소지하도록 통제받습니다.
한국의 경찰관이 총기를 소지하고 대학에 간다? 9시 뉴스를 크게 장식하지 않을까요.
미국에 온 지 며칠 안 됐지만 “총기에 관대한 문화는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아직 1일 차 수업 밖에 듣지 못해서 교육 내용에 대해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인상 깊은 부분도 있었어요.
미국 경찰관들은 순찰로 시작해서, 재산범죄 수사와 주요 범죄 수사 경력을 거친 뒤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구조인가 봐요.
그렇게 살인사건 수사를 선택한 이들은 결국 살인 사건의 잔인함 등에 소진되어 다시 순찰로 돌아가곤 한대요. ‘Learn it, Love it, ... and Leave it" 이라나요. 그러니 살인 사건에 개인적인 감정을 투여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당신이 담당한 사건은 평생 당신의 것이기에, 직업적으로 뿐 아니라 남은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대요.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후회 없는 수사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
제가 한국에서 Criminal Profiling 업무를 하고 있다고 소개하니 FBI의 프로파일링에 대해서도 간단히 들려주었어요. 아마 다음 주 교육에서 조금 더 자세히 배울 것 같아요.
2주짜리 단기 교육이지만 최대한 많이 배워서, 꼭 실제 사건에 적용해보고 싶어요.
교육과 관련해 재미있는 일들이 있으면 또 글 쓰러 올게요.
항상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