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꽁치리 Dec 10. 2021

모유 수유하기 전 이걸 알았더라면

나보다 3개월 먼저 출산한 친구J가 말했다

“수유 방향을 미리 정해둘걸 후회되더라. 너무 고생했거든.”


나보다 3개월 먼저 출산한 친구J가 말했다. 완모(모유100%)를 할지, 혼합수유(모유+분유)를 할지, 완분(분유100%)을 할지 미리 정하지 못한 탓에 아기도 J도 첫 한두 달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초유만 먹이면 되려나 정도로 막연했던 나는 부랴부랴 여러 육아서적을 뒤적였다. 길게는 3~4년, 최소한 1년을 모유수유하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권고인 듯했다. 모유가 아기에게 영양과 면역력, 안정감과 애착 등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건 반박할 수 없는 '과학'인 것 같았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완모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카페에도 완모보단 혼합수유나 완분할 거라는 예비맘이  자주 보였다. 조리원 가자마자 단유할 거라는 예비맘도 종종 눈에 띄었다.


이유는 조금씩 다르다. 모유 양이 기대보다 적어 어쩔 수 없이 혼합이나 완분을 하는 경우도 있고, 곧 복직을 해야 해서 일찌감치 완분을 결심하는 경우도 있다. (모유수유를 강조할 거면, 최소 1년은 무조건 육아 휴직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달라!)


완모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 해내지 못했을 때의 부채감도 과거보다 희미해진 듯했다. 모유 많이 못 준 걸 지금까지 마음 아파하는 우리 엄마 세대와 달리, 요즘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육아 방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유 방향에 대한 고민도 이 맥락에서 비롯된다. 무조건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지 말지, 얼마나 할지 엄마가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주도권이 생긴 것이다.


문제는 이 주도권이란 게 아직 온전하지 않아서 숱한 참견을 견뎌야 한다는 것. 웬만큼 스스로를 다잡지 않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고, 여기서 받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크다.


출산 3일째 나의 첫 모유. 이날 밤 가슴 통증 때문에 잠을 못 잘 정도였다.


고민 끝에 내가 잡은 목표는 '100일 모유수유'. 모유가 적게 나온다면 혼유를 하다가, 완분으로 갈 참이었다.


하지만 막상 출산을 해보니, 목표 달성의 꿈은 도저히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모유 양을 가늠하는 데만 약 한 달이 필요했다. 그 한 달 동안 얼마나 자주 단유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기는 젖을 잘 물지 못해 울고, 나는 여린 피부를 끊임없이 물려야 하는 아픔 때문에 울었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젖 때문에 가슴이 뭉치면 이를 악물고 마사지를 해가며 고통을 참아야 했다.


게다가 주변에서 얹는 한마디 한마디는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왜 모유수유 더 오래 안 하냐"는 직접적인 책망부터 "아기가 엄마 젖은 잘 먹고?"라는 은근한 점검까지 모유수유와 관련한 크고 작은 참견에 화가 났다. 내 가슴이고, 내 애인데 왜들 참견인지. 모유가 아무리 좋다 해도 그 참견 듣기 싫어 확 단유 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매일 들었다.


그때마다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수유 방향을 결정하는 건 내 몫이고, 내 권리라고. 힘들면 그만 둬도 되고, 더 짧게 줘도 된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당장 그만두는 대신 조금만 더 해보자는 도전의식도 생겼다. 그렇게 100일이었던 목표를 70일로 줄였다가, 다시 45일로 줄이면서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손목 보호대, 가슴 마사지팩, 유두 보호 크림. 꼭 챙겨야 할 아이템들.


수유 방향을 미리 잡는다는 건 이렇게 엄마의 정서적인 면에도 도움이 되지만 실제로 수유를 좀 더 수월히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완모나 혼합수유를 결심했다면 출산 뒤 최대한 빨리, 자주 젖을 물려야 한다. 그러면 아기도 엄마 가슴에 적응을 빨리 하고, 출산 뒤 찾아오는 가슴 통증도 줄일 수 있다.


내 친구 J가 아쉬워한 건 이런 포인트였다. 별 생각없이 병원과 조리원에서 분유를 주로 먹였더니, 아기가 젖병에 길들여져 엄마 가슴을 잘 빨지 못했다. 뒤늦게 모유 수유에 적응하려니 두 배로 힘들 수밖에.


모유를 줄지 말지, 얼마나 줄지는 엄마가 상황에 맞춰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당연해져야 한다. 그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모유 수유의 좋은 점뿐 아니라, 힘든 점도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


'모유 신화'라는 말이 있을 만큼 모유를 줘야 한다는 통념이 강한 상황에선 엄마들이 수유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기도 어렵고, 주도권을 갖기도 어렵다.


나는 가슴이 돌처럼 단단해지는 충격적인 경험을 한 뒤에야, "출산만큼 힘든 게 모유수유"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첫 한 달을 견뎌야 아기의 빠는 힘이 길러지고, 모유 양이 안정될 거란 사실도 전혀 몰랐다.


그나마 미리 수유 방향을 정한 덕에 힘들어도 꾸준히 젖을 물렸고, 그 덕에 가슴 통증도 아주 심하진 않았다.


100일을 20일 앞둔 지금, 나는 여전히 모유수유를 하고 있다. 100일까지만 딱 먹이고 시원하게 단유 할 생각이다. 고생한 나를 위해 비싼 와인으로 축하주도 들 거다.


완분이든 혼합수유든 상관없이, 스스로 세운 목표를 무사히 달성한 스스로가 대견하니까.


그리곤 추후 임신하는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줘야지.


출산 전에 수유 어떻게 할지 미리 생각해보면 좋다고. 100일이든 200일이든, 50일이든, 바로 단유 하든 그건 온전히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고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출산 뒤 나를 가장 속상하게 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