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국을 가게 될 줄이야

by PIAO

我要一步一步往上爬

在最高点乘着叶片往前飞

小小天流过的泪和汗

总有一天我有属于我的天


나는 위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올라

가장 높은 곳에서 나뭇잎을 타고 날아갈 거야

작은 하늘을 보며 흘렸던 눈물과 땀으로

언젠가는 나만의 세상을 갖게 될 거야


가사는 내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준 대만 가수 주걸륜(周杰伦)의 노래 '蜗牛(팽이)'의 한 부분이다.


30대 시절 두 아들과 함께 중국 유학길에 올랐다. 둘째 아들은 아직 한글도 떼지 못한 나이였다.

나는 한어병음은 배웠지만 뭐가뭔지 분간도 못했다. 할 줄 아는 중국어라고는 '니하오'밖에 없는 상태였다.

앞으로는 중국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남편은 한국사람이 많은 대도시로 가면 중국어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상하이에서 3시간 거리의 도시로 우리를 데려다 놓고 한국으로 떠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전의 중국은 그야말로 무법천지였으며,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곧바로 동물원의 원숭이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던 곳이었다.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도시의 무섭고도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남편 없이 아이 둘을 케어하며 공부를 해야 하는 생활은 유학이 아닌 유배였고 고난 그 자체였다.


아이들 앞에서는 늘 웃는 용감하고 씩씩한 엄마여야 했지만 사실은 하루도 올지 않은 날이 없었다. 영하로 내려가지는 않지만 안개가 많이 끼고 우중충한 그곳의 12월 날씨마저도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남편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말해봤자 언젠가는 자기에게 고마워할 날이 있을 거라며 이겨내라고 했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어찌 됐든 아들 둘과 나자신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하루빨리 중국어를 배우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캐나다나 호주로 가지 어쩌다가 중국 그것도 이런 도시로 왔냐며 우리를 불쌍히(?) 여긴 좋은 선생님을 만나 적응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어느새 우리 셋의 중국어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고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잘 지내줘서 다행인 날들이 지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20대 초반의 어린 학우들과 공부하며 내가 이 나이에 여기에서 뭘하고 있는 건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 건지, 불안하고 외롭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힘이 되어준 노래가 바로 주걸륜의 '달팽이'었다.
내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는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위를 향해 올라갈 것이고, 그 끝인 꼭대기에 올라 그동안 흘렸던 눈물과 땀은 다 잊고 나만의 세상을 만날 것이라는 가사가 나에게 꿈과 용기를 주었다.
덕분에 중국에 관심도 없었고 내가 왜 중국어를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시작한 공부는 학부 편입을 하고
전체수석과 조기졸업, 중국현대문학 석사라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다짐을 하고 견디는 법을 배운 나는 어느새 중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