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간다면 낫지 않을까?
몸이 무겁고 피곤함이 사라지지 않던 어느 날이었다. 일하던 도중 견딜 수 없이 아팠다.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반드시 쉬어야 합니다. 지금 안 쉬면 평생 이 고통을 달고 사셔야 합니다.”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여러 가지 검사를 시킬 때도 으레 하는 검사이겠거니 했고, 이래 봐야 어차피 마지막엔 ‘정상입니다. 스트레스네요' 정도가 다 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뭐람? 진짜 내가 그렇게 아픈 거라고?’
그 후로 나는 쉬는 기간을 갖게 되었다.
‘아, 나는 아직 젊은데, 이렇게 일만 하다가 죽는 건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20대부터 꿈꾸던 파리여행을 준비했다. 어쩌면 여행이 나를 치유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자유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버스로 편안히 운행해 주는 패키지여행을 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느린 여행, 파리 근교만 일주일을 보는 여행이었다.
여행지로 파리가 괜히 선택된 건 아니다.
20대 때 읽었던 자기 계발서에 부록으로 담긴 마법카드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카드들에는 ‘나는 oo을 이루게 된다.’와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때 가장 맘에 와닿았던 카드가 '나는 파리여행을 한다.'였다. 그래서 그 카드를 지갑에 소중히 꽂고 다녔다. 반드시 이뤄질 수 있도록!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을 위해 다이어리에 ‘몇 살에 파리여행을 간다.’라고 적어두었다. 그리고 그 나이가 바로 ‘4n살’이다.
4n살로 정한 이유는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너무 활발하지는 않던 시기라, 파리는 최소 40살은 넘어야만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막상 살아보니 40살이 되기도 전에,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파리에 갈 수 없었다.
‘내가 아니어도 세상은 돌아간다.’
자주 들어왔던 식상한 말이지만, 알 수 없는 책임감에 파리로 떠나지 못했다.
‘지금 이렇게 바쁜데 어떻게 휴가를 그렇게 길게 써, 그냥 하루 이틀 국내로 다녀오자.’
‘지금 지출해야 할 곳도 많은데 어떻게 파리를 가, 파리는 비싸잖아.’
이렇게 한 해 두 해 미루다 보니 40살이 훌쩍 넘어 있었고, 갑자기 병이 나버려 강제로 쉬게 되었다.
재밌는 것은,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 진짜 그 마법카드가 소원을 이뤄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후자라면 꼭 이런 방법으로 해야 했을까?라고 마법카드에게 따지고 싶다. 이렇게 아프지 않고서 좀 더 말랑말랑하고 사랑스러운 방법으로 이루어줄 수도 있는 거잖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