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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는 소매치기가 많다던데?

핸드폰 주세요.

by 커피중독자의하루

그날은 몽생미셸 가는 날이었다. 몽생미셸에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고, 가이드님은 몽생미셸 입구에 들어가기 전 본인이 소매치기당한 이야기를 해주며, 단속을 철저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래서 나는 무척 날이 서 있었다. 여행 전부터 파리에는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을 무수하게 들었고, 특별히 현지에 사는 가이드님이 몽땅 다 잃어버린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 소매치기는 현지인, 관광객 안 가리는구나 싶어서 더욱 날이 섰다. (최대한 관광객 티를 안 내면 안 위험할 줄 알았기에.)

몽생미셸 수도원 전체 전경
호그와트 성 같은 몽생미셸 성문과 외벽
돌계단 그리고 가운데 성모자상
돌계단 저 멀리 갯벌

그날도 복대를 면티 안쪽에 두르고, 그 위에 치마를 입었다. 이렇게 입었어도 사진은 찍어야 하니 핸드폰만은 손에 들고 다녀야 했다. 그래서 핸드폰을 쉽게 못 가져가게 하는 스트랩을 다이소에서 구매해서 달고 있었다. 평소 안 하던걸 하고 있으니 손이 부자연스럽고 사진 찍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불편을 잠재울 정도로 공포스러운 것이 있었으니, 파리로 신혼여행 갔다가 핸드폰을 잃어버린 신랑 회사 직원의 얘기였다. 얘기인즉슨, 그냥 들고 있는데 갑자기 다가와서 쓱 가져갔다는 것이다.


게다가 몸까지 심하게 아팠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버스 안에만 있다가 갈 수는 없었다. '하나님, 저 오늘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여행 내내 함께 해주세요.' 기도와 함께 가장 센 진통제를 먹고 여행에 임했다. 약기운으로 몽롱했지만, 씩씩하게 돌계단을 오르내리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은 다 찍었다. 친절하게도 가이드님이 포토 스폿에서는 우리 일행들 하나하나를 다 찍어주셨다. 대체 어디 계시다가 나타나시는 건지 그 프로 정신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렇게 포토스폿과 중요지점에 대한 가이드님의 설명을 듣고 몽생미셸을 하나하나 클리어하며 드디어 수도원 내부 본당 미사드리는 곳에 도착했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카메라 렌즈를 가리는 사람들이 걷히고 제단의 전부를 찍게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찍으려는데 누가 내 뒤에서 가만히 내 팔을 잡아당겼다. 신랑이었다.

"여보, 비켜봐. 할머니가 사진 찍으시려나 봐."

하얀 셔츠에 금발머리를 한 멋진 할머니 한분이 우리 뒤쪽에 서 계셨다. 내가 지금 사진을 찍으면 그분의 렌즈를 가리게 되어 제단의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살짝 비켜섰다. '아, 이렇게 또 사진 찍는 타이밍을 놓쳤네..'하고 아쉬워하는 순간, 그 할머니가 나에게 "메르시"라고 말하며 손짓으로 내 핸드폰을 달라고 했다. 짧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스무 살에, 캐나다에서 처음 만난 할머니가 본인 집에 가서 차를 마시자고 했을 때, 별다른 고민도 없이 따라갔던 것과 다르게 경계를 하게 된 것이다. 하얀 셔츠에 화려한 액세서리, 금발머리를 한 멋진, 누가 봐도 관광객 같은 할머니가 소매치기일 리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다. 하지만 파리에 온 뒤로 극에 달한 공포와 불안은 모든 낯선 이들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망설이는 나에게 신랑이 조용히 말했다.

"여보, 핸드폰 드려, 괜찮을 거야."

나는 신랑과 그 할머니의 미소를 믿어보기로 하고 핸드폰을 드렸다. 그리고 그 결과, '멋지게도' 수도원 내부 본당 미사 드리는 곳 제단 계단 바로 앞에서 신랑과의 커플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반려인과 함께. 면티 안쪽에는 복대, 면티 위에는 크로스백, 크로백은 셔츠로 감추고 그 위를 손으로 꽉 쥐었다.

소매치기와 인파로 인해 아무 곳에서나 삼각대를 놓고 커플사진을 찍을 수 없는 걸 감안한다면, 이렇게 인파가 많은 곳에서, 원하는 배경으로 커플사진을 남길 수 있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었다. 특별히 사진으로 그 순간을 붙잡아두고 싶어 하는 나에게는 더욱.


사실 그분이 사진 찍어주고 핸드폰을 돌려줄 때, '같이 사진 한 장 찍자'고 말해볼까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30대 초중반 여행 때와는 참 달라진 모습이었다. 33살의 동유럽 여행에서는 멋진 골든 리트리버와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강아지와 셋이서 사진 찍자고 부탁했었고, 34살의 미국 여행에서는 지나가던 중년 여성분에게도 부탁해 파서데나 도서관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었다. (다들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변하게 했을까?


이 일을 통해 나는 낯선 이에 대한 신뢰와 타인에게 먼저 다가갈 용기를 잃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타인은 생각보다 친절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모르는 할머니가 핸드폰 달라고 했을 때) 내 옆에서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는 신랑을 보며 잃어버렸던 용기와 신뢰는 곁에서 지켜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의 도움으로 되찾을 수 있다는 것도.

꼭 혼자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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