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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흔들, 흔들의자

그래도 행복은 가까이

by 커피중독자의하루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흔들의자에 앉아서 차 한잔하고 있다. 여전히 머리와 얼굴이 욱신거리지만 이제 그 고통도 익숙해져 참을 만하다.

나는 영화를 볼 때 줄거리보다 영화 속 예쁜 장면 보는 걸 더 좋아하여 배경과 소품들을 주의 깊게 보는 편이다. 어느 날 영화에서 등장인물 할아버지가 빈티지한 원목가구들로 인테리어 된 집에서 예쁘고 견고해 보이는 흔들의자에 앉아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는 장면을 본 뒤, 나는 흔들의자를 갖는 게 꿈이 되었다. 아직 내 집도 없는 청년의 처지에, 저런 빈티지하고 예쁜 가구들을 살 형편은 못되고 형편이 되어 산다 한들 놓을 곳도 없으니, 그런 인테리어까지는 진즉 포기했지만 흔들의자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흔들의자 진입 장벽도 꽤 높아서 계속 못 사고 있었다.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그러다 결혼하고 나서 살게 된 첫 신혼집도 아닌 두 번째 집에 이사 가고 나서야 장만하였다. 그게 벌써 몇 해 전 일이다.

흔들흔들, 흔들의자. 앉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림출처:AI)

되게 비싼 흔들의자도 아니고 그저 이케아에서 보고, 모양도 가격도 적당하다 싶어 산 흔들의자였는데, 신랑 없을 때 배달이 왔다. 살 때와는 다르게 사놓고 보니 '아,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괜히 샀나'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런데 신랑이 퇴근해서 흔들의자를 보더니 활짝 웃으면서

"여보, 이거 늘 갖고 싶어 했던 거잖아. 이제 영화 속 주인공 된 거 같겠네? 잘 샀다."

라고 했다.

그 순간 그전까지의 모든 고민이 날아가고 어찌나 뿌듯하던지, 의자 사기를 천 번 만 번 잘한 것 같았다. 물건을 산 건 나인데, 정작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 준 건 신랑이었다. 흔들의자를 곧 사겠다거나 샀다고 말해 준 적도 없는데 나보다 더 좋아해 준 신랑.

흔들흔들, 차 한잔 마시며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시름도, 나의 통증도 잠시 잊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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