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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머리 아가씨

어설프지만 씩씩하게

by 커피중독자의하루

내가 해외여행을 처음 다녀온 건 IMF 때였다.

IMF가 터진 그 해, 나는 고3이었다. 아빠는 IMF가 터지기 전부터 '사립대는 절대로 입학원서 비용조차 내줄 수 없다'라고 하셨었고, 나도 아빠의 의견에 따르겠노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IMF로 인해 국립대 열풍이 불었고, 영향으로 나는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 했다. 그래서였을까, 1년간 원치 않던 대학에 다니던 나는 이듬해 특별한 목표도 없이 휴학을 한 채로, 무기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런 날 보더니 언니가

"아빠, ㅇㅇ이는 우리가 데려갈게요."라고 말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평소 서울도 못 가게 하시던 아빠께서 허락을 해주셨다.

제일 먼저 언니와 함께 읍사무소에 가서 여권 발급신청서를 내고 왔다. 내가 내 이름을 중학교 때 영어선생님께 배운 대로 쓰려고 하자, 언니는 단호하게 그렇게 쓰면 현지인들이 원래 내 이름과 다르게 발음한다며, 언니 주관대로 철자를 바꿔서 제출했다. 그 이름이 아직도 그대로 사용되어 여권이 바뀔 때나 중요 서류 제출 시마다 늘 따라다닌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당시에는 그 중요성도 모른 채 쉽게 결정되고, 쉽게 지나쳐버린다. 사소하게 여긴 여권 철자 하나가 평생을 따라다닐 줄 그땐 몰랐다.

나는 엄마랑 함께 시장에 가서 사 온, 커다란 이민가방에 읽을 소설책과 서예도구를 챙겼다.

그러면서도 정작 입을 옷은 최소한으로 챙겨서 캐나다에 가서는 늘 똑같은 옷만 돌려가며 입고 다녔다.

이렇게 스무 살, 나의 첫 해외여행이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다른 여대생들과 다르게 똑 단발 보다 더 짧은 몽실이 스타일의 단발머리를 하고(드라마 첫사랑 속 이혜영 머리처럼 쇼트커트로 잘랐다가 기르는 중이었던 것 같다.) 청바지와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인천이 아닌 김포공항에서.


캐나다 수도 오타와

자리는 가운데 다섯 개가 붙어 있는 좌석 중에도 가장 가운데 좌석...

지금 같았으면 화장실 가기가 어려운 관계로 많이 불편해했을 텐데, 그때의 나는 그것에 대해 별 불만이 없었다. 화장실 가고 싶을 때마다 그냥 일어서서 '잠시만요.' 하고 씩씩하게 잘 다녀오고, 그 와중에 양치와 세수까지 하며 18시간의 비행을 잘 끝마쳤다.

다만, 자리가 몹시 좁아 그것이 불편이자 충격이었다. 보통키에 마른 편인 내가 이렇게 좁게 느껴질 정도면 내 옆자리 건장한 저 아저씨는 얼마나 좁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외국에 가는 거면 무조건 다 좋을 줄 알았는데 128만 원이나 하는 비싼 티켓값을 내고도, 몸조차 앞뒤좌우로 움직이기 힘든 환경에서 가야 한다는 게 무척 놀라웠다. (참고로 당시 학교 학생식당 밥이 1200~1500원이었다.)


이렇게 쓰니 나 혼자 떠난 여행인 것 같지만, 사실 언니부부가 저 멀리 앞쪽에 있었다. 지금이면 '좌석체크인을 내 것만 늦게 해서 그런가 보네'했을 텐데, 그때는 왜 나만 따로 떨어뜨려놓고 한 번도 보러 오지 않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나 역시 그 자리로 찾으러 가지 않았다.


본인이 데려가면서도 막상 여행이 시작되니 한 번도 보러 오지 않는 언니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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