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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rics of Life Nov 06. 2021

왔구나 왔어

@HK


왔구나 왔어. 격리 시작하고 두 번째, 그분이 오셨다.


처음은 이틀째였나 사흘째였나. 눈을 뜨기 전부터 숨이 턱턱 막혔다. 밀봉된 창문을 뭘로 깨야하나 가난뱅이에겐 택도 없는 궁리의 찰나를 광속으로 지나쳐 문간으로 달려가 본다. 굳게 닫힌 문과 문틀 사이 작은 틈에 코를 대어 보지만 줄지어선 도시락 픽업 테이블과 카펫 가득 깔린 복도의 음산한 그림이 머리에 그려지면서 답답함은 배가 되어 돌아왔다. 없다 없다 도움을 요청해도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도 그들도 분명히 알고 있다. 사실 이방에 공기는 차고 넘치게 충분하다. 소오름.


그날 나를 구해준 건 혹시나 챙긴 소형 공기청정기였다. 머리맡에 방치해두었던 그 물건에 허겁지겁 홍콩 플러그를 찾아 전원을 켜고 콧구멍을 들이댔다. 이것이 마치 창문 밖 공기인 양 들이쉬고 내쉬고 몇 번을 반복하니 몇 분 전 죽을 듯 고통스러워하던 내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옥 같던 오전이 지나니 갑자기 또 매우 살만했다. 같은 프로그램의 무한 반복이긴 하지만 TvN이 나오는 텔레비전에 전기 주고 따순 물까지, 창문을 대신해 공기를 배달하는 에어컨 24시간 강제 가동은 복병이었지만 한겨울 귀국 대비 플리스 잠바와 한 몸이 되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삼시세끼 배달되는 남이 해준 밥이라니! 자취 20년 차 반찬 투정은 사치다. 물론 다 내가 낸 돈에 포함된 옵션이긴 하지만. 이미 내버린 돈이니 현실 감각 플러스 마이너스 따위는 냥이나 주고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사실 그분이 다시 오시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오늘은 숨이 진짜 막혔던 것일 수도 있다. 에어컨 풀가동에 건조할 때로 건조해진 탓에 콧구멍 안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해져 있었다. 진짜 막힌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강렬한 답답함이 몰려왔다. 곧 지나갈 것임을 알면서도 순간을 이겨낼 방법은 없다. 다시 공기 청정기에 콧구멍을 들이대 보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다. 절박한 마음에 맨손으로 딱딱한 콧 속을 파내어가며 시간을 억지로 흘려보내다 보니 진정이 되었다. 격리 12일 차, 덕분에 오랜만에 치열하게 아침을 시작했다.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침 메뉴를 들여다본다. 참치 샌드위치, 계란 두 알, 그리고 우롱차.


나의 첫 공격을 떠올려본다. 너무 간헐적이라 공황이란 단어는 좀 멋쩍다. 십오 년 전쯤이었나 옆 건물 아래층 매점의 라면이 참 맛있는 회사에 다닐 때였다. 회사는 선릉이고 집은 신림, 출근 시간 2호선은 당연히 지옥이다. 나는 간지 나게 천명관의 '고래'를 읽으며 출근 중이었는데, 갑자기 발끝에서부터 답답함이 치솟아 몸부림치다 어느 순간 천국에 온 듯 고통이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 무슨 일이지 놀라 돌아보니 만원 지하철 한가운데 고꾸라져 있는 것은 바로 나였다. 너무 일찍 깬 탓에 부끄러움이 더 커서 때마침 지하철 문이 열리자 도망치듯 뛰어내렸고, 사람들은 천명관의 '고래'를 던져주었다. 다시는 그 책을 읽지 않았다. 이후에도 고속버스에서 비행기에서 자잘하게 몇 번의 공격이 더 있었지만 피하고, 맞아가며 그럭저럭 살았다.

        

꼬마 때부터 드문드문 아침에 눈뜨기 몇 초 전 즈음부터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혼란스러울 때가 한 번씩 있었다. 나, 사람들, 내가 누워있는 이 방, 이 집, 내가 속해있는 이 모든 것이 실재인지 아니면 나라는 티끌의 꿈일 뿐인지.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덜컥 숨이 막혀왔다. 나는 적막한 우주 한가운데 둥둥 떠다니는 우주인이고 내 머리통보다 조금 큰 헬멧 안에서만 숨을 쉴 수 있다.


더듬더듬 내 공격의 역사를 떠올리며 쓰다 말다 밥을 먹고 씻고 자고 일어나니 다시 아침이 왔다. 격리 해제 D-1 오늘은 그분이 오시지 않았다.


참, 그분이 오신 날 고프로도 왔다. 왔구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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