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yrics of Life Feb 02. 2021

그래, 욕은 지내보고 하면 되니까

개방형 창작공간 1년 6개월, 언박싱 및 반품기

그게 정신 승리야 이 바보야

나는 오늘을 기준으로 약 1년 6개월 간 지역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개방형 창작공간'이란 곳에서 '무소속'으로 '소속'되어 애니메이션 워크숍을 운영해왔다. (사실 코로나 때문에 몇 번 진행하지 않아 이 소개도 부끄럽다) “무소속으로 소속되어 있다”는 말이 우습긴 하지만 그만큼 나의 상황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은 없을 것 같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정신 승리인지 몰라도 나는 사실 이 기관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한 바탕 성질을 부리고 더 이상 머물지 않기로 결정을 낸 지금 이 순간까지도) 물론 이곳이 좋은 곳이란 뜻은 아니다, 다른 곳과 비교하여 특별히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도. (이 문장의 마침표를 찍으며 “그게 정신 승리야 이 바보야”라고 되뇐다. 이런 바보.) 다시 문장을 바꿔보자면 이곳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어서 수월했다. 유령처럼 지내는 사이 1년 반이 지났다.


그래 욕은 지내보고 하면 되니까

과격하긴 하지만. 미안하지만. 나는 이곳이 ‘사라져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냈던 '개방형 창작공간'은 이 기관의 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순수예술 작가들을 위한 개인적인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아티스트 레지던시와 달리, 디자인 공예 기반으로 굿즈/콘텐츠 제작 체험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한 장르의 '메이커스'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주 3일, 주말 1일, 일주일에 총 4일은 시민에게 개방하여 공유하도록 마련된 곳이다. 물론 나는 이 공고문을 꼼꼼히 읽어보았고, 불합리하게 느낄 여지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M(나는 M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만든다)은 한국에서 함께 작업할 공간이 필요했고, 베트남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진행했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워크숍을 발전시키기에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는 ‘개방형 창작공간’이라는 이 묘한 타이틀의 정체가 궁금했다. 또, 귀국 직후라 시간도 많고, 오라는 곳도 없었다. 그래, 욕은 지내보고 하면 되니까.


이 기관은 이런 공간을 관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를 론칭한 담당자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관심도 기대도 없다는 것은 명확했다. 그리고 그 담당자마저 계약직이라 그해 겨울 이곳을 떠났다. 사실 그건 나와 M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예상했던 부분은 예상했던 대로, 예상하지 못한 부분은 "우리 일이나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흘렸다. 기대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지. 기대는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당신들처럼 우리도 낯설고, 부족하니까. 억울할 건 없었다.


동료 의식 개나 줘버려

하지만 나는 '동료'는 필요했다. 기관도, 우리도 모두 부족하지만, 의논하고, 부딪히고, 싸우며 성장할 동료가 필요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청춘물을 너무 많이 봤나 보다.) 나는 내가 머문 '개방형 창작공간' 뿐 아니라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동료 의식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곳이라고 착각했다. 입주 전 3개월간 지낸 베트남의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소규모라 공간도 지원도 부족했고, 생각도 취향도 달랐다. 불만도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서로의 작업에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고받았고 좋건 싫건 우리는 동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동료의식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나 보다. 하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1년 6개월간 지나쳤던 말과 행동을 떠올려보니, 우리는 이 레지던시의 잉여 공간을 채우고, 지역의 세금으로 운영되지만 예술가의 작업실이라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아티스트 레지던시라는 공간에 '개방'이라는 명분을 더하는 '값싼' 알바들이었다.


먼저 우리를 부르는 호칭부터 살펴보자. 기관의 직원들은 우리를 부를 때 '작가님'이라고 부르지만 공고와 계약서 상에는 '운영자'라고 명시했다. 사실 누가 뭐라 부르건 호칭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고 그게 우리를 대하는 기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주설명회에서 반복해서 들은 말은 우리가 기관에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당부 또 당부였다. '개방형 창작 공간'인 작업실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공용 키친과 각종 기자재가 비치된 공동작업장은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진짜 '작가님'의 공간이므로 사용 불가. 공용 키친을 사용할 수 없다면 세 팀이 함께 사용할 만한 작은 정수기라도 설치해줄 수 없냐고 했지만, just "Nope". 아티스트 레지던시 오픈데이 잔치 한편에 깍두기처럼 마련된 우리의 플리마켓, 팀장 부부는 프로그램을 체험시키겠다며 자기 아이를 맡겨 두곤 바로 곁에 앉아 열심히 핸드폰 하기 바빴다. 차라리 어디 멀리라도 가있다 오지 부끄러움도 모르는 것들. 다른 하루는 팀장이 우리의 오픈 시간을 체크하겠다고 학생주임처럼 시계를 보며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가쁜 숨을 헐떡이며 늦지 않아 다행이라며 바보처럼 웃었다. 그 사람은, 이 기관은, 나와 M에게 무례했다.


이럴 거면 우리 모두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이곳은 우리에게 무례했던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무례해왔을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계약직 직원들에게도 무례했을 것이고, 무례한 당사자조차도 자신의 역할을 평가절하하며 스스로에게 무례했을 것이다. 진짜 '작가님'들이라고 귀히 여겼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날 회의에 이어진 커피 타임에서 팀장은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작가들은 사회에서 도태된 사람들. 그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이 곳의 기능"이라고 묻지도 않은 얘기를 주절거렸다. 물론 나는 속으로 그 말에 동의하면서 생각했다. "사실일지도, 그렇다면 당신이 그들보다 더 아래로 보는 우리는?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할 정도로 우리가 친한가?" 사실 이 뒷담화의 뒷담화가 본질은 아니고, 그곳에 있는 일종의 계층들(직원-진짜 작가님-가짜 작가님)은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무시하고, 싫증내고, 또 기대하고, 피해의식에 어떤 날은 방어적으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실제로 사라진 사람도 있다. 이럴 거면 우리 그냥 다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유행처럼 시작된 아티스트 레지던시, 우리의 경우엔 '개방형 창작공간'이라고 부르는 메이커스 스페이스는 애초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작은 운동처럼 시작됐던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기관 단위로 짓고 관리하면서 거대한 기숙사, 작가들의 엘리트 코스, 혹은 경력 단절 방지용 커리어 관리 프로그램 정도로 변질되었다. 기획력 없는 사무실이 기계적인 일정에 맞추어 생산하는 갖가지 무쓸모 행사와 전시, 초등학교 환경 미화보다 못한 설치들. 메이커스 스페이스, 개방형 창작공간도 마찬가지. 보여주기 식 지원에 그곳에 동원되는 인력의 시간과 노동에 대한 배려도, 섬세함도 없다. 그리고 관리자들조차 몇몇 정규직을 제외하곤 자신이 쏟는 시간과 노동에 대한 배려를 받지 못하니, '작가님'들을 배려할 에너지가 있을까? 그래, 그러니까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개방형 창작공간'을 반품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나는 이곳에서 나름의 성장을 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는데 그 성장에 이 기관의 지분은 1도 없다. 오히려 끊임없이 자존감을 저하시키고, 쭈글쭈글하게 취급했던 기관이라는 빌런을 상대하며 무기력해지지 않고 이렇게 욕쟁이 할머니로 성장한 내가 스스로 대견할 정도다. 뭐 프로그램을 위한 지원을 받지 않았냐고 하겠지만 나와 M은 일주일에 네 번 열 두시부터 여섯 시까지 무급으로 공간을 지켰고(물론 개근은 아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그 이상의 대가를 치렀다. 함께 공간을 지켰던 창작공간의 다른 두 팀 동료들, 투닥투닥했지만 열정적인 동료였던 전임 담당자, 외국인인 M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항상 돌봐주신 경비실 김 선생님, 한파를 뚫고 워크숍에 참여해 자신의 애니메이션을 완성한 <보고 싶어요>의 ‘보고 싶은’ 어르신들(이 얘기는 다음에 따로 이박 삼일이 필요하다)까지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리고 한계가 왔다.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어제 나는 애증의 '개방형 창작공간'을 반품하기로 마음먹었다. 표면적으로는 새로운 워크숍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와버린 나의 더러운 성격과 기관의 비 매너가 만난 환장의 콜라보가 이유지만 미뤄둔 버튼을 눌렀을 뿐, 사실 결정은 이미 오래전에 되어 있었다. 어른이 될 때까지는(물론 지금도 간헐적으로) 부모님이, 다음은 7년 동안 함께 산 착한 남자 친구와 다정한 친구들의 살뜰한 돌봄을 받았다. 이별하고 오른 유학길은 이기적으로 차곡차곡 모아둔 은행 잔고가 나를 돌봤다. 그리고 어찌 됐건 지난 1년 반 동안 의탁했던 개방형 창작공간의 나쁜 돌봄을 벗어나기로 결정했다. 이제 진짜 독고다이, 이번엔 자립할 수 있을까?


반품 취소에 대한 양해의 말씀

밤새 썼던 이 글을 마무리하고, 담당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밖에 없는 '퇴실 사유서' 작성을 마무리할 용기를 얻었다. 솔직하지만 못된 말을 적어 완성하고 오전 10시에 맞춰 담당자에 예약 메일 전송,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오전 10시 01분에 알람을 맞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지금, 나는 지금 반품 결정을 다시 반품한 상태다. 퇴실 사유서 제출 이후 기관(아마도 담당자라 해야 정확하겠지)의 사과로 나의 더러운 성격은 한풀 꺾였고, 나도 내가 일으킨 소동에 대해 담당자에게 사과했고, 퇴실은 취소, 다시 워크숍을 준비하고 있다. 반품을 반품하자 브런치 알림이 뜬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허허허 나 반품을 반품했는데?

  

다시 며칠간 이 글을 발행할까 말까 망설였다. 혹시나 기관이 글 속 당사자가 이 글을 볼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앞서 밝혔듯 이곳은 나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다. 나도 기관의 관심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이글이 기관의 존속에 큰 영향을 끼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마 문간방에 머물다간 뭣도 모르는 듣보잡이 쏟아낸 소박한 앙갚음 정도로 치부하면 될 것이고,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고. 또 듣보잡이라 나는 걱정할 이해관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민을 했다. 이 글을 발행할까?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고쳐볼까? 좀 더 나를 포장할까? 누가 썼는지, 어느 기관인지 못 알아보게 숨길까? 아니면 못다 한 말들을 더 집어넣어 아주 강력하고 사사롭게 써버릴까?


과격하긴 하지만. 미안하지만. 나는 이 글을 원본 그대로 발행하고 싶었다. 대신 다시 변경된 계획과 상황에 대한 설명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주절주절 파란 잉크를 꺼내 더한다. 어른이 될 때까지는(물론 지금도 간헐적으로) 부모님이, 다음은 7년 동안 함께 산 착한 남자 친구와 다정한 친구들의 살뜰한 돌봄을 받았다. 이별하고 오른 유학길은 이기적으로 차곡차곡 모아둔 은행 잔고가 나를 돌봤다. 그리고 어찌 됐건 지난 1년 반 동안 의탁했던 개방형 창작공간의 나쁜 돌봄을 벗어나기로 결정했다가 나는 다시 주저앉았다. 언제쯤 자립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