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눈을 많이 써서 그런지 시력이 확 나빠졌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양안이 1.5와 1.2 정도로 양호한 편이었다.
물론 15년 전 라식을 해서 그 시력이다.
그러나 벌써 작년부터 밤길 운전에 자신을 잃었고 요새는 덜컥 겁이 날 정도로 낮에도 잘 안 보일 정도다.
이것도 노안인가 궁금했지만 가까이도 안 보이는 데다 멀리도 안 보이는 이 현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서서히 나빠진 것이 아니라 자고 나면 뚝뚝 떨어지는 시력을 느꼈다.
작년 여름에 진단받은 녹내장이 이렇게 빨리 진행된 건가?
눈은 왜 이렇게 빠질 것 같고 뻑뻑하지?
이물감은 물론 두통까지 수반되는 이 안통이 그 어떤 상태보다 심각하게 다가왔다.
무슨 병이 생긴 게 분명해...
사실 녹내장으로 3개월 혹은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기 때문에 녹내장이 시력저하의 원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의심쩍었다.
이 모든 상황을 다 말씀드리고 검사를 마친 후 의사 선생님의 결과를 듣던 나는 그만 생각지도 못했던 말씀에 멍~ 해졌다.
"노안의 현상으로 초점을 맞추기까지 근육의 반응이 느려 그럴 수 있어요.
시력이 0.6 정도로 떨어진 건 맞네요..
하지만 감사하세요.
근시가 생긴 덕분에 가까이 보이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은 겁니다.
이제 안경을 쓰세요."
엥?! 근시와 원시를 모두 갖게 되었으나 그나마 근시가 원시보다 심하니 돋보기 사용이 그만큼 늦어지게 된 거라고? 그게 감사.. 포인트인가?!
나보다 10세 정도 많아 보이시는 의사 선생님은 마치 노안 현상을 처음 겪는 후배에게 '내 다 안다~ 너도 이제 네 나이를 자각하고 현실을 받아들여라'라는 뉘앙스로 설명하시는 듯했다.
노안이 오기 전에는 가까운 것도 멀리도 잘 보인다.
근육이 빠르게 전환도 잘 되기 때문에 초점 맞추는 것도 순식간이라 내가 굳이 초점을 맞춘다는 것조차 못 느낀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도 노화가 되어 가까이, 멀리 볼 때 초점 맞추는 시간에 로딩이 걸린다.
뿐만 아니라 가까이도 잘 안 보이고 멀리 보는 것까지 흐릿하다.
나로서는 급격한 시력저하를 받아들이기 전에 노화를 온몸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시력저하를 (말씀처럼)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라식을 했던 입장에서 다시 근시 안경을 쓰는 건 너무 억울하다.
게다가 근시가 생긴 걸 기쁘게 생각하라니 단시간에 너무 많은 걸 수용하기가 버겁다.
우울감이 밀려왔고 하필 작년에 일본 유후인으로 가족여행 갔던 광경이 떠올랐다.
토토로가 뛰어다닐 것만 같은 뾰족뾰족 침엽수들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이어져 장관을 이뤘던 그 때가 자꾸 생각난다.
저 멀~리 있어도 뾰족함이 다 보일 정도로 내 눈은 건강했다.
불과 1년 전이다.
토토로가 뛰어다닐 것만 같은 숲
받아들임이라...
앞으로 나는 신체적 정신적 노화를 더 많이 겪게 될 텐데...
켜켜이 쌓이는 불평불만으로 물들어 결국 내 노후가 행복과 멀어지는 건 아닐까..?
오히려 주어진 상황에서 '근시가 생겨 감사하죠!'라는 자족을 느끼며 그나마 행복을 유지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지혜로운 충고였을까?
이틀 후 교회 기도회에 참여했다.
나를 무척 아껴주시는 권사님이 눈 건강에 대해 물어보셔서 시력이 1.5에서 0.6으로 떨어졌다고 말씀드렸다.
주위 사람들은 헉! 하며 어떡해요?라는 반응이었지만 놀랍게도 권사님은 안과 의사 선생님이 빙의된 듯 유사한 답을 주셨다.
"자기 안경 맞췄지?
0.6이 어디야!
그 정도임에 우리 감사하자~"
두 분 인생 선배의 현답이었던 걸 순간 깨달았다.
앞으로 겪을 노화 현상이나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해 불평이나 우울 대신 자족과 감사함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방법 말이다.
m.Claire.
색깔 때문에 더 잘 보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