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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Jul 12. 2022

기다렸더니 해결된 문제

구름이 철없던 시절

2년 전, 태어난 지 2개월 만에 우리 집에 온 구름이는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었고, 안고 있으면 부드러운 털의 촉감과 살 냄새가 너무 좋아서 코를 박고 한참을 킁킁거렸다. 너무 예쁜 나머지 나도 모르게 꼭 껴안으면 작은 몸이 터져버릴까 봐 순간 놀래서 살짝 힘을 풀기도 했다.


그 시절 계절은 한참 더운 여름이라서 에어컨을 틀지 않을 때면 가만히 앉아서도 혀를 길게 내밀고 헥헥거리며 숨을 쉬다가 어느새 늘어져 자곤 했다. 자는 모습이 얼마나 천사 같은지... 몸을 옆으로 기대고 다리를 쭉 뻗고 누워서 자는데, 그 옆에 나도 같은 모양새로 누워서 살포시 감은 눈과 야무지게 다문 입을 보고 있으면, 이 녀석은 꼭 사람 같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밥은 또 얼마나 잘 먹는지 모른다. 밥그릇에 밥을 담아주면, 그 작은 고개를 밥그릇에 푹 파묻고서 하도 허겁지겁 먹어서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거렸고, 밥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3초! 3초면 충분했다. 밥그릇도 아주 깨끗했다. 설거지도 필요 없을 만큼. 


우리 구름이는 비숑프리제라는 종인데, 낙천적이고 사교성이 많으며 활발하고 성격이 좋다고 했다. 에너지가 넘쳐흘러 하루에 한 번은 꼭 주체가 안 되는 흥분을 발산하는 비숑 타임이 있었고, 비숑 타임이 시작되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왔다 갔다를 반복하면서 거실과 복도, 주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혹시라도 그 작은 몸집이 단단한 식탁이나 의자에 부딪힐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 식탁 다리와 의자 다리 사이를 얼마나 잘 피해 다니는지 그 민첩성에 감탄을 하곤 했다. 




그렇게 낯선 집에 와서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며 아무 걱정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우리에겐 구름이에게 대해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가족들이 놀아주지 않을 때에는 머리를 바닥에 박고서 혓바닥으로 온 바닥을 다 핥으며 돌아다니다가 뭔가 떨어져 있으면 분별없이 다 삼켜버리는 이식증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먹성이 좋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느새 우리 가족의 걱정이 시작되었다.


하루는 우리 집 두 아이가 핸드폰 스탠드를 조작하다가 커다란 나사를 떨어뜨렸는데, 구름이는 바닥에 뭔가 '똑'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어디선가 쪼르르 달려와 홀딱 삼켜버렸다. 그 당시 구름이는 1 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아주 작은 강아지였고, 구름이가 삼킨 것은 몸집에 비해 너무 큰 나사인 데다, 플라스틱과 쇠로 된 'T'자 모양이었다. 하필 그날이 주말이었던 터라 우리가 다니던 동물병원이 문을 닫았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어서 전화를 드려 여쭈어 보니, 응급실이 있는 동물병원에서 근무를 하신 적이 있으셔서 응급실의 상황을 잘 아시는데, 삼킨 것이 확실하고 바로 수술을 할 것이 아니라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하셨다. 주말에 지켜보다가 큰 이상이 없으면 월요일 아침에 데리고 와도 될 것 같다고 침착하게 말씀해주셔서 우리는 놀란 가슴을 일단 쓸어내리고 진정할 수 있었다. 여전히 걱정은 되었지만, 뭣도 모르고 떨던 호들갑은 살포시 내려놓을 여유가 생겼고, 온 가족이 좀 더 조심하기로 했다. 


전전긍긍 주말을 보내고 나서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해야 하는 엄마 아빠 대신 할머니와 내원한 구름이는 상담 후 엑스레이를 찍었다. 찍고 보니 역시 나사는 위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고, 알 수 없는 다른 오물들도 많이 있다고 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나사가 대변으로 나올 수 있는 크기라면 괜찮을 텐데, 몸집에 비해 나사의 크기가 크고 모양도 위에서 장으로 넘어가는 길에 걸릴 위험이 있어 보이니 내시경을 통해 미리 견인하여 제거하는 게 낫겠다고 의사는 판단하고 설명했다. 우리는 의사의 의견에 동의를 했고, 구름이는 태어난 지 4개월도 채 되지 않아 마취를 하고 위내시경을 하게 되었다.


내시경 후 구름이의 위에서 나온 갖가지 오물들은 볼만했다. 바닥을 훑고 다니며 삼킨 머리카락은 말할 것도 없고 가느다란 철길도 있었고, 비닐도 있었고, 고무줄로 된 머리끈도 있었고, 먼지도 있었다. 에효. 이 녀석!! 도대체 뭘 먹고 다니는 거야?!?! 


그 후로 우리는 슬슬 시작될 구름이의 산책에 대한 걱정이 너무 컸다. 이런 녀석을데리고 산책을 해야 돼, 말아야 돼? 아니.. 해도 될까? 녀석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씹지도 않고 그냥 꿀꺽 삼켜버릴 텐데....  그렇지만 강아지들은 에너지 발산과 관절 건강을 위해서 산책이 필수인데...  참 난감한 상황이었고, 이리저리 주변에 물어보고 검색을 하며 알아보았다. 의사 선생님께도 조언을 구했다. 선생님께서는 조금 크면 자연히 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도 하셨지만, 당장의 문제로 걱정이 태산인 우리에겐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우리는 입마개가 효과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산책을 하는 동안 입마개를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입마개도 종류도 크기도 너무 다양해서 뭘 사야 할지 모르겠더라. 입마개 파는 곳을 모르니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주문을 해 보았다. 용도를 잘못 주문한 것도 있었고, 크기가 안 맞아서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시행착오를 겪다가 다행히 맞는 게 찾았고, 그때부터는 입마개를 착용하고 산책을 했다. 안심은 됐지만, 답답한 집 밖에서 바람도 쐬고 바깥 구경도 하며 즐거우려고 하는 산책인데 입마개를 씌운 구름이의 모습은 뭔가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부자연스럽기도 해서 안쓰러웠다. 


철없던 시절

지나가는 사람들은 입마개를 한 구름이를 보고,

 "어머! 강아지도 코로나 걱정되나 봐!! 마스크를 다 썼네?" 하며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했고,  

아무 말 없이 이상한 듯 쳐다보기도 했다. 

우리는 그냥 웃고 지나가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아~ 얘기 뭘 자꾸 주워 먹어서요, 마스크가 아니라 입마개예요."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기도 했다. 뭐 기분 나쁜 상황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속이 상했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나 걱정도 되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고, 구름이도 조금 컸다. 강아지들의 나이는 사람과는 달라서 몇 개월만 지나도 사람의 몇 년과 비슷하다고 했다. 힘도 조금 세어지고, 사춘기에 접들었는지 자신의 의사가 분명해진 구름이는 어느 순간 입마개를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기도 했고, 입을 이리저리 움직여 입마개를 벗어버리기도 했다. 입마개가 소용없게 된 것이다. 




구름이는 여전히 먹을 걸 좋아하고, 잠시 방심하면 가슴을 쓸어내릴 일들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도 한다. 다용도실의 살짝 열린 문틈은 놓치지 않고 들어가 쓰레기봉투를 뒤지기도 하고, '감히 나를 혼자 놔두고 모두 다 나가버렸어? 아! 짜증 나는데 사고 좀 쳐 볼까?'라는 심보가 빤히 보이도록 배변패드를 마구 뜯어놓기도 한다. 가끔씩은 침대 위에 응가를 해 놓고 모른 척 놀고 있거나, 누나가 형아 방에 몰래 들어가 간식을 훔쳐 먹고 나오기도 한다. 마치 어린 아기를 키우는 일과 아주 흡사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경우가 아주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우리는 구름이를 대함에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있다. 


시간은 약이었다. 이제는 철이 좀 들었다. 

다행히도 구름이는 나이가 들더니 철이 좀 들었다. 역시 시간이 가장 좋은 약이었다. 

일단 산책을 할 때 고개를 들고서 한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예전에는 코와 입을 땅에 박고서 다녔었는데, 이제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엉덩이를 쌜룩거리며 주변을 구경하기도 하고, 나무와 풀냄새를 맡기도 하고, 돌이나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은 제법 스스로 골라낼 줄 알게 되었다. 

누나나 형아 방에 들어가기 전에 눈치를 한번씩 보기도 하고, 똥을 누기에 침대 이불보다는 배변패드가 더 적절한 장소 임도 알게 되었다. 



가만가만 구름이의 이야기를 적다 보니,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답을 얻어가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기다렸더니, 해결이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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