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가 한참 배변 훈련을 하던 시절에, 나에게는 주말이 없었다. 평일에는 일을 하니까 주말에는 조금 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야 조금씩 손이 덜 가는 아이들에게서 해방됨을 느끼기도 전에 신생아가 생긴 기분이었다. 물론 우리들의 선택으로 구름이가 생겼으니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고, 어쩔 수 없음을 몰랐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그땐 너무했다. 사방을 돌아다니며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배변훈련을 시킨다고 시키는 대도 정착이 잘 안 되는 녀석을 보고, '이 녀석은 머리가 나쁜가?'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무튼 난 주말마다 하루 종일 녀석을 쫓아다니며 계속해서 바닥을 닦아대야 했다. 이불이나 카펫에 싸놓으면 빨래는 덤이었다.
구름이를 처음 데리고 오기로 했을 때, 분명 다 함께 하기로 했던 반려견의 뒤치다꺼리는 어느 순간 나의 몫이 되고 있었다. 목욕도 항상 내가 시켰고, 아침밥을 챙겨주기 위해 나는 주말의 꿀 같은 늦잠도 포기해야 했다. 내 새끼 잘 키워야 하고 굶길 수는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왜? 꼭! 나만? 거듭될수록 나에게는 짜증이 조각조각 쌓이고 있었던 것 같다.
한편, 우리 집에는 구름이 말고도 2명의 아이가 함께 산다. 꼴통으로 통하는 까칠하고 예민한 초6 딸아이와 코로나보다 무섭다는 중2 사내 녀석이다. 굳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우리 집안 분위기가 상상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 그렇다. 예상한 바 그대로다. 우린 남들의 예상을 뒤엎을 만큼 화목한 가정이 되지 못함을 새삼 깨달으니 찹찹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구름이가 오던 그 해에는 초4와 초6이었으니 그 당시에는 어떻게든 아이들을 내 손 안에서 해결해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코로나 상황에서의 원격수업으로 인해 무너지는 공부습관도 잡아주고 싶었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고, 결정적으로 핸드폰이나 게임을 제한하고 싶었다. 내 아이들은 착해서 엄마 말을 잘 들어줄 거라고 믿었고, 아직은 엄마 품 안에 있으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건 나의 착각이었고, 고로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엄마였다. 아이들은 이미 한두 발짝씩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자연스레 커가는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그들의 행동이 유난히 눈에 거슬리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나도 모르게 극도로 예민해져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이들을 대하게 된다. 그나마 이성이 지배하는 동안이라면 나의 감정을 의식하며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감정이 이성을 지배해버리는 순간 나는 통제불능이 되어 정성 어린 조언을 넘어 잔소리를 '다다다다'하다 길어지는 일장연설을 늘어놓다가, 순간 감정 컨트롤을 실패하면 소리를 빽 질러버리거나, 나도 모르게 잠시 정신줄을 놓게 되기도 한다. 나는 미치지 않고 싶지만 말이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구름이가 없다.
구름아! 어딨어? 어? 어디 갔지? 혹시 방에 갇힌 거 아닐까?
온 집안을 다 뒤져도 구름 이는 보이지 않았다. 방마다 문을 열어보았는데도 없었다.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던 구름이는 소파 밑에서 있었다. 엄마의 차가운 목소리와무거워진집안의 공기가 달라짐을 느끼고는, 소파 밑으로 숨어버린 것이다. 그 후로도 구름이는 몇 번이나 소파 밑에서 발견되었고, 여전히 마찬가지다. 강아지가 뭘 알겠어? 싶지만,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반려동물들은 다 알고, 느끼고 있었다.
소파 밑은 안전해
그렇게 숨어버린 구름이는 여간해서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불러도 망부석이고, 억지로 나오게 할 요량으로 마치 소파 밑에 굴러들어간 구슬을 꺼내려고 효자손이나 파리채를 넣어 이리저리 휘둘러 보는 것 같은 행동은 어리석을 뿐이었다. 구름이는 더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나는 지금 기분이 안 좋아요. 집안 분위기가 이상하잖아요. 혼자 있고 싶어요. 그냥내버려 두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얼굴을 바닥에 대고서 커다란 눈망울만 또록또록 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직접 보면 실소가 터지면서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잠시 미쳤던 엄마에겐 슬픔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한낱 강아지에게도 기분이 안 좋거나, 우울해서 혼자 있고 싶을 때,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자고 싶을 때, 그리고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잠시 피신하고 싶어 찾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는 게,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요즘 들어 혼자만의 시간을 더욱 갈망하는 나이기에울적할 때 위로가 되고, 답답할 때 숨고 싶은 아지트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지금부터라도 찾아볼까? 구름이의 소파 밑은 나에겐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