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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Jul 30. 2022

먹을 것에 진심인 편

잘 먹어서 더 이쁜 녀석

#1

우리 구름이는 먹성이 참 좋다. 아기 때부터 그랬다. 

아주 얌전하고, 조용하고, 순한데, 먹을 것만 보면 극도로 흥분을 하고, 밥그릇에 입이 닿으면 하나, 둘, 셋 3초면 끝난다.


구름이 평균 식사시간 = 3초

엄마 : (밥그릇을 내려놓으며) "구름아~ 밥 먹자."

구름 : (밥 소리와 함께 한 자리에서 빙글 뱅글 몇 바퀴를 돌다가 밥그릇이 내려지자마자 머리를 밥그릇에 박고서 심하게 흔들거리며) 씁씁씁~ 끝.


평소 하는 행동이나 표정으로 봐선 참 선비님처럼, 혈통 깊은 집안의 양반 어른같이 점잖은데 먹을 거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게 영~

좀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2

구름이는 벨에 조금 민감하게 반응해서 짖곤 하는데, 작은 아이의 선생님이 집에 오시는 날이면 영락없이 흥분의 도가니다. 벨을 누르고 들어오시는 데다가, 구름이는 같이 놀고 싶은데 오시자마자 방에 쏙 들어가 누나랑 둘이서 하하호호 재밌는 소리만 밖으로 새어 나오니 제법 질투가 나는가 보다.

구름이의 짖음은 간식으로 다스린다

같이 놀자고 자꾸 짖어대는 통에 수업에 방해가 될까 싶어서 선생님이 오시는 날에는 늘 이렇게 평소의 2배나 되는 간식을 준다. 오래~ 먹으라고. 그러면 구름이는 그걸 받아 들고 먹기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아서 이리 씹어보고, 저리 핥아보며 모든 구강 감각을 동원해 한 동안 간식을 음미한다. 그러면 집안이 조용해진다. 수업하기 적당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3

모든 강아지에게도 그렇듯...

구름이에게도 기다림을 훈련시키기 위한 눈앞에 간식은 고문이지만 반드시 견뎌내야 하는 관문이다. 이 관문을 잘 통과하면, 구름이는 또 한 번 성장하여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하나의 기술을 갖추게 된다. 그래서 당장은 힘들 수 있겠지만, 서로를 위해 기다림을 배우는 훈련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건, 간식을 처음 내어준 사람이 엄마라면 엄마가 먹으라고 허락을 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 목소리, 말투를 모두 기억하나 보다. 

기다려! 구름이에게는 고문의 시간...


엄마 : 구름이, 기다려!

구름 : (슬픈 눈빛과 시무룩한 표정으로 시종일관            간식만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끄응~ 

엄마 : 기다려!

누나 : (장난치며) 구름아, 먹어! 

구름 : (움직이지 않고 눈알만 또록거린다) 끄응~

엄마 : 구름이, 먹어! 

구름 : (순식간에 일어나) 날름~





어린 시절 먹을 것을 너무 좋아해서 무엇이든 먹어버리는 이식증으로 고생하던 구름이는 커가면서 다행히 이식증은 사라지고, 좋은 먹성만을 유지한 채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참 고마운 상황이다. 어떤 사료를 주어도 먹고, 사료에 약이나 영양제를 섞어주어도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잘 먹는다. 사람이나 강아지나 잘 먹는다는 건 참 축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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