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지면 가장 첫 번째 느끼는 것이 바로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땅'의 존재다. '이쯤'에서 발바닥에 닿아야 하는 '땅'이 느껴지지 않으면 몸은 곧장 균형을 잃는다. 온몸으로 느끼고 있던 중력이 사라진 몸은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알지 못해 허우적거리게 된다.
발을 딛고 내쉬려 했던 호흡은 들숨과 날숨의 순서가 뒤섞이며 물을 공기처럼 빨아들인다. 한번 들이킨 물은 다음 호흡을 재촉한다. 더 이상 숨을 참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지랄 맞게도 그 와중에도 정신은 맑다. 뒤죽박죽이지만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과 순서가 찰나를 촘촘히 채운다.
'살려달라'라고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뇌의 지시는 성대를 울리진 못한 채 메아리처럼 공허하다. 손끝은 눈도 없는 무척추 절지동물마냥 무언가를 찾아 간절하게 여기저기를 헤맨다.
이 모든 것이 '이쯤'에 있어야 할 '땅'이 느껴지지 않고 나서 몇 초 상간에 일어난다. 마치 발레 '그랑 쥬떼'의 한 동작을 보는 것처럼 순간이고, 짧고, 강렬하다. 하지만 이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인간이 욕심과 이기심으로 파 놓은 '물구덩이'들이 많다. 누구나 빠질 수 있다. 언제든 빠질 수 있다. 어디에나 있다. 꼭 한번 이상은 빠진다.
빠지기 전엔 누구도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한다. 두 번 다시 빠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외가 없다는 것은 겪어야 알게 된다.
그 물구덩이에는 밑이 없다. '이쯤'에서 굳건하게 느껴져야 할 '신뢰'라는 바닥이 없다. 스스로 '이쯤'이라고 예상한 곳에 '신뢰의 바닥'이 느껴지지 않으면 사람은 곧장 '패닉'에 빠지게 된다. 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처음이건, 두 번째 건, 그 이상이던 물구덩이에 빠지는 일은 낯설다. 항상 어색하고, 겪을 때마다 죽을 거 같다. 그래서 도움이 절실하다. 혼자서는 피하는 것도, 헤쳐 나오는 것도, 버티는 것도 어렵다
욕망과 이기심으로 가득 채운 '물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돕는 방법은 '응원'이 아니다. 구덩이 밖에서 울부짖는 '절규'가 아니다. 진심 가득한 '눈물'이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물구덩이 밖에서 '매몰찬 응원'과 '공허한 절규'와 '차가운 눈물'을 보낸다. 그것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말한다. 뻗을 수 있는 '손'은 등 뒤로 숨긴 채.
그 가운데서 물구덩이에 빠진 사람은 끊임없는 불신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깊이만큼 깊게 가라앉는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야 당연하지!"
언제부턴가 가족을 제외한 모든 관계는 '남'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없다. 기본은 '나'고, '우리'는 필요시에만 차용한다.
언제부턴가 너의 '이 정도'와 나의 '이 정도'를 비교하여 남음도 모자람도 없어야 한다. 더 주는 것도 더 받는 것도 싫다.
언제부턴가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도가 보이지 않으면 뭔가 손해보고, 당하는 느낌이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야 당연하지!"라고 말할 수 없음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찰나의 고통이 억겁의 시간만큼 지속되는 기분이다.
언제 다시, 누구에게 이렇게 말해 본담...
"우리 사이에 이 정도야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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