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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패키지여행이 흥했던 적이 있었다. 패키지여행이 흥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원래 실패는 한 가지 이유를 특정할 수 있지만, 성공은 자잘 자잘한 여러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흥했던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언어다. 누구나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후에도 많은 이들이 주저하게 한 이유가 바로 언어다. 패키지는 많은 사람들의 자신감 저하의 원인인 언어소통을 해결해 주었다.
이후 해외여행 경험자, 유학 경험자, 어학연수 경험자가 늘어나면서 해외여행이 일상의 이벤트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곳에서 당황스러운 경험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패키지여행을 선호하기도 한다. 낯선 곳을 더 낯설게 하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이다. 또한 소통으로 인한 문제가 원활하게 해결이 되지 않는 곳이 해외이기도 하다.
베트남은 영어가 잘 안 통하는 곳이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거나 부담스러운 사람도 단어와 손짓 발짓으로 통하려면 영어가 베이스가 되어야 하는데, 베트남은 중국이나 일본만큼 영어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의사소통이 너무 잘 돼서 내적 친밀감을 쌓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영어 없이 이렇게 의사소통이 잘 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이유는 스마트폰 때문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AI 번역기 덕분이었다. 대략 묻고 눈치로 소통하던 것을 이제는 매우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편한 것은 관광객만이 아니었다. 호텔리어와 현지인들도 매우 편리해했다.
자국어로 말하고 상대의 글자로 보여주는 패턴은 매우 편했다. 자신의 뜻을 명확하게 입력할 수 있었고, 상대는 글을 읽음으로써 소통의 오류를 줄일 수 있었다. 상대도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같은 방식으로 답을 했다. 리얼타임보다는 약간의 딜레이가 있지만 정확도는 리얼타임보다 확실히 높았다.
통역기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내 말을 이상한 기계음으로 전달하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후졌던 것인지 알게 되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자연스럽고 편리했다. 스마트폰을 하나만 놓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도 현실감 없는 상상에 불과했다.
언어에 스트레스가 없으니 여행지에 대한 만족도나 친밀감이 높아졌다. 의사소통 문제로 일정을 망치지도, 잘못된 오더를 하지도, 불필요한 오해를 살 일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이 더 느긋해지고 여유로워졌다. 물론 관광지이기 때문에 갖는 특수성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앞으로는 한국에서도 외국인이 말을 걸면 번역기부터 켤 것 같다.
언어 장벽을 느끼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나라의 국격 때문이기도 하다. 어디에나 한국어 안내문이 있기 때문에 불편함은 거의 없었다. 이 역시 관광지의 특수성일 것이다. 하지만 예전엔 안 그랬으니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만큼 우리나라와 직항 운행 빈도가 높은 곳이 많아졌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여권은 전 세계 190개국을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으니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와 한글을 만나는 게 낯설지 않다.
언어 소통에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매우 큰 장점이다. 그 에너지만큼 동반자나 자신에게 더 신경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번 여행은 참 한가롭고 여유롭게 기억된다.
물리적 거리와 더불어 인류와 문명을 나누는 거대한 장벽이었던 언어가 무너지고 있었다. 물론 언어라는 것이 단순히 팩트 소통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 문화, 심리, 사회적으로 가지는 의미는 여전히 굳건할 것이다. 하지만 일상의 이벤트로써 낯선 곳으로 친숙함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장벽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변화할 세상이 기대가 된다. 이런 기대감이 삶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하는가 싶다. 다음엔 그 어렵다는 중국 자유여행을 도전해 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