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후배 줄 서기 38,389,203번째
와, 자의식이 폭발하는 제목이다. 마치 '공주 마봉 드 포레' 라든가 '용사 마봉 드 포레' 같은 부끄러운 제목이다.
작가 마봉 드 포레. 그래,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고 글을 쓰고 있으니, 작가 맞지. 하지만 출간 작가 아니니까 어디 가서 "댁은 뭐 하는 분이슈?"라는 질문에 "저는 작가입니다."라고 하기엔 좀 부족하다. 마치 성당 가면 서로 다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르고, 서비스 직군에 들어가면 어제 입사해도 다 매니저님이고, 스벅은 다 파트너고, 동사무소 가면 다 선생님인 것처럼(이 비유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브런치에서는 모두가 작가이고 서로의 독자이다.
나는 비록 생업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내 작가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초딩(국딩이다) 때부터 나는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아무런 의미 없는 글이라도 글자를 써서 문장을 만드는 걸 좋아했다. 물론 21세기 신여성인 나는 글씨를 직접 쓰는 대신 키보드를 치거나 아니면 현대인의 발달된 손가락을 이용해서 모바일 기기에서 뭔가 찌그리거나 하지만 - 아무튼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아 왜 이래! 나 초딩때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고! 라고 하면 전국의 백일장 수상자 작가 꿈나무들 백만 명 정도 튀어나올 테니 조용히 해야겠다. 어마어마하게 많이 수상을 해서 담임선생님이 이 애는 무조건 작가 시켜야 합니다,라고 생기부에 쓴 것도 아니었다. 중 2 때 노트에 청춘 로맨스 같은 소설을 좀 써봤다. 도대체가 말도 안 되는 소설이었지만 우리 반 애들은 재밌다던데? 하지만 중 3 때 담임이었던 국어선생님이 문예부에 들어와서 내가 쓴 글을 보고 "뭐야, 다 말장난이잖아."라고 한 이후, 중딩 주제에 자존심은 있어갖고 바로 절필했다(내가 성격이 좀 대쪽 같다).
그리고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부터는 공부를 안 하는 학생도 글을 쓸 수 없게 된다. 왜냐면 공부를 안 하는 학생도 성적 걱정은 하니까. 대학은 공부 잘하지도 않고 못하지도 않는 애매한 성적의 문과 애들이 가는 학교/학과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라떼는 말이야 나같이 학교 안 나가도 졸업할 수 있었다. 요새 대학생들 사는 얘기 들으면 나 같이 살면 1학년 마칠 때 이미 유급했겠더라만은.
너무너무 학교 나가기가 싫어서 정말 학고 맞지 않을 만큼만 공부했다. 책 한 번도 안 보고 시험 보러 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4학년이 되었다. 아 이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학생일 때는 대충 살아도 부모님이 등록금만 대 주면 어떻게든 신분이 유지됐었는데, 이젠 밖으로 나가야 한다. 16년 동안 학생 이외의 신분이었던 적이 없는데, 갑자기 나가라니 어디로 가란 말이오.
시험공부할 때는 서랍 정리, 옷장 정리만 해도 그렇게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뉴스 신문도 개꿀잼인 것처럼, 나가야 할 때가 다가오니 갑자기 공부가 재미있었다. 세상에! 내가! 공부가! 재미있어! 살다 살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나는 갑자기 내가 공부가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수님에게 찾아가서 대학원에 가면 어떨까요, 하고 여쭤 보았다. 교수님이 들려주시는 대학원 이후의 멀고 먼 길에 대해 약 30분 정도 얘기를 들은 나는, 좋은 말씀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교수님 방을 나왔다. 지금도 대학원에 간다는 나를 말려 주신 그분께 감사하고 있다.
당시 어느 정도로 공부가 재밌었냐면, 내가 전과를 하는 바람에 2학점짜리 교양필수 하나를 안 들은 게 있는데, 4학년 때 1학년 애들이랑 같이 그 수업을 들었다. 아니 세상에 내가 맨 앞자리에 앉아서 복학생 형님들이랑 같이 교수님이랑 아이컨택 하면서 수업을 들었다니까. 허구한 날 강의실 맨 뒤에 앉아서 처 자던 내가 말이지. 나같이 대놓고 처 자는 학생은 배구 특기생으로 들어온 애 정도였다고.
4학년이라 수업도 몇 시간 안 들으니 남는 시간에는 도서관에 갔다. 남들 취업준비 하느라고 토익 공부하고 무슨무슨 시험 준비하고 할 때에, 나는 이제 일반인이 되면 못 들어올 자료실에 들어가서 재밌어 보이는 책은 다 주워 읽었다. 1-3학년 때 그렇게 도서관을 자주 드나들었더라면 동기들한테 쓰레기란 소리는 안 들었을 텐데 아무튼 도서관 출입을 못하게 된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나는 매일매일 들어가서 구석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주로 SF를 읽었는데,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SF가 마이너다 보니(각본을 아무리 발로 써도 여전히 양덕들이 환장하는 스타워즈 같은 영화가 우리나라만 들어오면 폭망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책이 많지는 않았다. 작가나 장르 검색해서 SF 같아 보이면 무조건 읽었다.
당시는 정통 판타지(드래곤 라자 등)가 잘 나가던 시대였고 퇴마록도 여전히 미친 인기를 자랑했다. 저물어가는 중이지만 그래도 살아 있던 PC통신 창작 게시판에는 이영도 주니어를 꿈꾸며 초딩부터 직딩들까지 판타지 쓰느라 난리였다. 그래서 나도 판타지도 좀 읽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그렇게 판타지 싫어하던 내가 판타지를 쓰고 있는 걸 보면 세상은 참 예측 불가능한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에서 잠깐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그때 떠돌던 이야기들이 '여행 왔는데, 집에 가고 싶다'의 뮌헨 공항, 피렌체, 룬드 편이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한국 돌아와서 취업을 했다.
왜 아무도 안 가르쳐준 거야, 취업하면 여름방학 겨울방학 없다고. 직장을 몇 번 옮기며 좀 안정되고 괜찮은 회사까지 도달하여 열심히 일했다. 현장 일 하다가 사무직이 됐는데 그땐 일하는 게 어찌나 재밌었는지(!) 자다가 눈 뜨면 회사 메일부터 열어봤다. 낮이고 밤이고 주중이고 주말이고 국내든 해외든 연락 오면 당장 노트북 켜서 일했다. 다들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러니 보람도 있었다. 그땐 이게 정말 천직인 줄 알았다.
번아웃은 정말 오는 줄도 모르게 슬그머니 와 있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아주 간단한 일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내가 이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그냥 하면 되는데, 그 그냥이 안 됐다. 이러다 말겠지, 조금 지나면 괜찮겠지, 하다 보니 어느새 팀장이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일 잘한다고 소문났던 내가, 뭐든지 다 해결했던 내가, 이렇게 간단한 것 하나도 못 하고 있다니, 소리 지른 팀장도 개새끼지만 일을 못 하고 묵혀 두는 나도 문제였다.
결국 나는 셀프 방학을 나에게 선물하기로 하고 마흔의 나이에 겁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다들 내가 다른 회사를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퇴직금을 들고 다시 외국으로 튀었다. 떠돌이 생활을 또 했다. 이번엔 약 두 달 정도. 그리고 집에 가끔 들어왔다가 다시 해외로 나가서 일주일에서 두 주일 정도 있다 들어오는 것까지 합하면 대략 삼 개월 정도 돌아다닌 것 같다.
노후를 생각하지 않고 퇴직금을 마음껏 쓰다가 이젠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돌아와서 다시 취직을 했다. 연봉이 천 이상 내려갔다. 그래도 흔쾌히 받아 주니 그게 어디냐 싶었다. 그게 지금 다니는 회사다.
이와 같이, 대학교 4학년 때 PC 통신 창작게시판에 조금 찌그리다 만 글도 글이라고 친다면, 나는 20년이 넘도록 글을 쓰지 않았다. 손도 못 댔다. 대신에 이메일과 기안문과 보고서를 썼고, 뛰어난 창작력(이라고 혼자 믿는 능력)을 교육자료와 매뉴얼 만드는 데 쏟아부었다.
다시 번아웃 비슷한 게 온 지금, 그리고 임금피크가 멀지 않은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래,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 그동안 회사의 노예로 지내느라 잊고 살았지만, 난 언제나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동안 문송한 문과 주제에 전산 부서에서 Language라고 하면 C언어, 자바, 파이썬, SQL 먼저 생각하는 극 T들에 둘러싸여 일하느라 잊고 있었지만, 나는 작가다.
나는 작가다. 그러니 글을 써야겠다. 이미 썼고 지금도 쓰고 있고 앞으로도 쓸 것이다. 그동안 글쓰기와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지만, 아깝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내가 만약 그때 취직을 하지 않고 바로 글 써서 먹고사는 어떤 직업을 가졌다면, 지금 같은 글은 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같이 대인기피와 낯가림 심한 사람이 어쩌다가 서비스직부터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세상에 나가서 씨게 두들겨 맞은 경험이 있어 나는 (젊었을 때에 비해) 더 풍부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훌륭한 글을 쓰는 데 세상 경험이 필수 조건은 아니다. 내가 존경하는 인물 세 명 중 탑이신 제인 오스틴 언니 - 나는 오스틴 언니의 후배가 되고 싶은데, 세상에 오스틴 언니 후배 되고 싶어 하는 여자 작가 지망생들은 줄 세워도 태평양 가로지를 만큼 많다. 나도 그냥 조용히 줄을 서 본다 - 는 평생 보고 들은 게 영국 시골 동네에서 인간군상 좀 관찰한 것 정도이지만, 탄생 250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위대한 작가 리스트에 빠짐없이 오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아마 집에 그냥 앉아서 글을 썼다면, 평생 말장난에만 그쳤을 것이다. 물론 뭐 그렇다고 지금 내가 엄청 깊이 있는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 염소의 로맨스나 쓰고 있다 - 그래도 세상에 나가서 굴러 본 경험은 틀림없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연료(fuel)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의 진지한 글을 쓰는 많은 작가들에게는 여전히 죄송하긴 하다. 도장 깨기 하듯이 장르파괴나 하고 있으니, 차라리 0과 1로 글을 쓰는 게 세상을 위해서는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에 크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나는 글을 쓰고 싶다. 인생 말년에 우연하게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글 쓰는 게 좋으니까 쓴다. 물론, 나도 출간작가가 꿈이고, 옛날 사람답게 전자책이 아니라 종이책을 내야 성이 차겠다만... 그런 세속적인 욕심을 부리다가는 오스틴 언니가 화낼 것 같으니, 나도 문학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취하는 척이라도 해야겠다.
그러니까, 오늘도 쓴다.
아 물론 지금 진짜로 써야 하는 건 이게 아니라 'ㅇㅇㅇ 시행 결과 보고' 같은 것들이긴 하다... ㅜㅜ 젠장. 빨리 내가 대박을 터뜨려서 J.K. 롤링의 10분의 1만큼만 벌어갖고...(이하 생략).
아, 이놈의 생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