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고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고찰

by 마부자

작가 소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75)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났다. 철학과 신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마르부르크 대학교로 가 볼트만과 하이데거에게 배운다. 거기서 하이데거와 사랑에 빠졌던 그녀는 곧 그를 떠나 하이델베르크의 야스퍼스를 찾아 그의 지도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이란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후 아렌트는 정치적 억압과 유대인 박해가 점차 심해지던 독일에서 시온주의자들을 위해 활동하다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뒤, 1933년에 프랑스로 망명하고 또 거기서 수용소에 갇혔다가 결국 탈출하여 1941년에 미국으로 망명한다.


첫 번째 주저인 <전체주의의 기원>(1951)의 발간과 더불어 그녀는 본격적인 정치사상가의 길을 걷는다. 이후 <라헬 파른하겐>(1957) <인간의 조건>(1958) <과거와 미래 사이>(196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 <혁명론>(1963) <공화국의 위기>(1972) 등 주요 저작들을 연이어 출간했다.


특히 유대인 대학살의 핵심 책임자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되어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자 아렌트는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그 재판에 대한 보고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쓰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설명한 악의 평범성 개념은 수많은 논쟁을 낳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아렌트는 정치적 악을 유발하는 정신의 문제에 집중하여 <정신의 삶>(1978)을 남긴다.


아렌트의 판단이론의 강의내용을 담은 <칸트 정치철학 강의>(1982)가 아렌트 사후에 출간되고, 또 유고들을 정리해 <이해에 대한 에세이>(1994) <정치의 약속>(2005) <판단과 책임>(2005) 등이 출간되었다.



책 선택 이유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최근 읽은 <여르미 작가의 인문학 필독서 50>에서 소개된 두 권의 책 중 하나였고, 단지 줄거리나 서평으로 접하기엔 너무나 강렬하고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처음 내 눈에 들어왔을 때, 그 단어는 머릿속에 박혀 좀처럼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이 질문을 중심에 두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직접 실행한 관료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통해 악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악이 얼마나 평범한 얼굴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유대인을 증오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단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무지한 복종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그의 재판에 관한 이야기 이 대목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악을 특별하고 잔혹한 무언가로 멀리 떨어진 타인의 문제로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그 믿음을 완전히 뒤흔듭니다. 악은 괴물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 충격이 너무 컸기에, 나는 단지 서평이나 요약이 아니라, 직접 읽고 나만의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진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와 나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를 꼭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줄거리&요약

1961년, 이스라엘에서 열린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바탕으로 한나 아렌트는 뉴요커의 특파원으로 예루살렘에 파견되어 이 사건을 취재합니다. 이 책은 그 재판을 관찰하고 분석한 보고서이자, 그 속에서 드러난 인간성과 악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아렌트는 재판을 통해 아이히만이 악의 화신이라기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깊은 반성이나 이해 없이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태도를 보인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녀는 이를 두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끔찍한 범죄도 비인간적인 괴물이 아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며 사고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 저지를 수 있다는 통찰입니다.


1장에서 아렌트는 재판의 의미와 예루살렘 법정의 분위기를 묘사하며, 2~3장에서는 아이히만의 생애와 나치 체제 내에서의 역살을 설명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단지 명령을 수행한 공무원일 뿐이라 주장하지만 아렌트는 그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윤리적 성찰없이 기계적으로 행동했다고 봅니다.


4~6장 에서는 나치의 유대인 정책이 점차 급진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7~8장에서는 반제회의와 ‘법을 따랐다는’ 아이히만의 변명을 통해 개인의 책임과 윤리 문제를 제기한다.


9~13장은 독일과 점령지에서 유대인을 이송하고 학살하는 구체적인 과정을 지역별로 나누어 분석하며 행정적 절차 속에서 비인간적 폭력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자믹 14~15장은 증언과 판결 과정을 통해,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에 도달하게 되는 철학적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책은 단순히 아이히만 개인의 죄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나치 체제하에서 수많은 사람이 어떻게 비윤리적인 시스템에 복종하고 동참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합니다.


아렌트는 도덕적 사고의 결여, 관료주의적 시스템의 무책임성, 법과 정의에 대한 정치적 해석 등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독자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약 11개월동안 진행된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함께한 리포트입니다. 재판을 함께 하면서 당시의 분위기, 판사, 검사 그리고 수많은 증인들의 내면을 지켜본 아렌트의 심정이 담긴 역사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여기서 잠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소개하기에 앞서 아돌프 아이히만의 납치와 관련된 국제적 시선과 현재의 해석을 살펴보는 것은 이 책의 이해에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1960년 5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외에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비밀리에 체포하여 이스라엘로 이송했습니다. 이 작전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동의 없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국제법상 한 국가의 주권을 침해한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공식적으로 항의하며, 이스라엘의 행위가 자국의 주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60년 6월 23일, 이스라엘의 행위가 아르헨티나의 주권을 침해했음을 인정하고, 향후 유사한 행위가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협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결의안 138호를 채택했습니다 .


이스라엘은 초기에 이 작전이 정부의 공식 지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으나, 이후 아이히만의 체포와 재판이 정부의 승인 하에 이루어졌음을 인정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과 아르헨티나는 1960년 8월 3일, 이스라엘이 아르헨티나의 주권 침해를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외교적 갈등을 종결지었습니다.


오늘날, 아이히만의 납치는 국제법과 도덕적 정의 사이의 복잡한 딜레마로 평가됩니다. 한편으로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의 주범을 법정에 세워 정의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주권 국가의 영토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진 체포가 국제법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특히, 이 사건은 국제법상 '보편적 관할권'의 적용 가능성과 한계를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보편적 관할권은 특정 범죄가 전 인류에 대한 범죄로 간주되어, 범죄가 발생한 장소나 피의자의 국적과 무관하게 어느 국가에서든 처벌할 수 있다는 원칙입니다.


아이히만 사건은 이 원칙의 적용과 관련하여 국제사회에 깊은 논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자료 제공: 챗 gpt>



인상 깊은 구절

이 지구를 유대인 및 수많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지 않는

정책을 피고가 지지하고 수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즉 인류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고와 이 이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교슈형에 처해져야 하는 이유,

유일한 이유입니다.


에필로그 중에서 - 382 page



나의 생각&서평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렸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을 바탕으로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직접 취재하고 기록한 책입니다.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강제 이송과 학살 정책, 소위 '최종 해결책'의 실행을 주도한 실무 책임자였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죽음에 직접적인 가해를 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서류 속 행정의 달인’이었습니다.


책은 단순한 재판 기록이나 전범 비판이 아닙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의 말투, 태도, 논리를 통해 우리가 쉽게 규정해온 ‘악’의 개념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아이히만은 재판 내내 시종일관 자신은 “법을 따랐을 뿐”이며 “살인을 명령하거나 저지른 적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자신을 ‘합법적이고 성실한 시민’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윤리적 고민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분노하게 만든 것도 바로 그 태도였습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승진과 임무 수행에만 몰두한 채 책임을 외면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그 일은 그냥 일어난 것"이라는 말은 궤변에 불과합니다.


만약 그런 논리로 악을 평가절하한다면 히틀러조차도 단지 독일 국민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궤변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책의 중반부는 아이히만이 수행했던 ‘세 가지 해결책’(유대인의 추방, 수용, 그리고 학살)이 어떻게 행정 시스템 속에서 질서 정연하게 실행되었는지를 다룹니다.


그리고 아렌트는 유대인 강제 이송이 단지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각국 정부, 지역 행정, 심지어 유대인 평의회까지 참여한 집단적 구조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렌트는 이 책에서 아이히만 개인의 죄에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아이히만을 통해 전체 독일 사회, 나아가 복종과 침묵으로 악을 가능하게 한 모든 사람들에게 묻고자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아렌트는 악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 그 방식과 절차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드러냅니다.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후 도망쳐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고 있었고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그를 비밀리에 체포하여 이스라엘로 데려왔습니다.


국가 간의 정식 송환 협정 없이 진행된 이 일은 명백한 ‘납치’였고, 국제사회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스라엘은 이후 아이히만을 자국 법정에서 재판하고 유죄 판결 후 사형을 집행합니다.


아렌트는 이 과정을 두고 단순히 “잘못된 방식으로라도 정의를 실현했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걱정했던 것은 정의가 감정에 의해 움직일 때 발생하는 위험, 그리고 정의의 이름 아래 행해지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었습니다.


아렌트는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합니다. “악을 저지른 자를 불법적으로 체포하고, 그에게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무거운 역사적 의미를 짊어지게 한 이 재판은, 과연 ‘정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당연히 정치적·역사적 의미가 있었겠지만 철학자 아렌트는 그것이 정의의 본질과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방식은 아니었는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녀는 진정한 정의는 ‘실현’만큼이나 ‘어떻게 실현되는가’, 즉 과정과 형식의 윤리도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결국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처벌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그가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어떤 태도로 심판받는가에 대해서는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의는 또 다른 복수나 감정의 이름으로 타락할 수 있으며, 선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또 다른 악이 만들어질 위험성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저 또한 아렌트의 철학에 너무도 공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전쟁 범죄의 잔혹함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 ‘정의란 무엇인가’, ‘나는 얼마나 스스로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악을 처단한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악이 만들어지는 세계, 그것이 바로 아렌트가 두려워한 ‘악의 평범성’이 아닐까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책이지만 누구나 꼭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책장을 덮는 순간, 우리도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아이히만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해야 한다는 책임을 떠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더 많은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지만 객관적인 서평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보다 주관적이고 더 많은 이야기는 그리고 남은 이야기에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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