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일 아침이었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차가운 공기가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잠에서 깨어 막내의 도시락을 준비하고, 집 앞 수능시험장까지 함께 걸었다.
아이의 뒷모습이 교문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 돌아온 뒤, 밝아온 햇살이 드리운 창가 옆 책상에 앉았다.
훈련과 후회의 갈림길에 선 인간의 삶에 대해 다룬 책을 다시 펼쳤다.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며 읽고 싶었지만, 창밖을 가르는 차의 소음과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강아지의 짖음이 자꾸만 집중을 방해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소리를 의식적으로 무시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그 문장이 오늘 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의식적 노력의 힘으로 생각과 행동을 바꾸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습관이 바뀌고 운명이 바뀝니다.
의식적 생각과 의식적 행동의 습관을 꾸준히 훈련하면 어떤 결과가 펼쳐질까요?
그 불편함의 길 끝에
기적 같은 결말이 있습니다.”
어나더레벨 중에서 - 78page
의식.
불편함의 길 끝에 기적이 있다는 말은 지금 내 삶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병을 마주한 후의 나날들은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상들이 낯설게 느껴지고, 먹는 일과 걷는 일이 노력의 결과로 변해버린 날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니, 조금씩 달라지는 몸의 감각과 마음의 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의식의 힘이었다.
의식이란 단어는 단순히 깨어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며, 삶을 다루는 태도다.
아픈 몸을 관리하는 일도, 매일 글을 쓰는 일도, 체력을 관리하는 일도 모두 의식의 확장이다. 무심히 지나가던 일들을 한 번 더 바라보는 순간, 무의식의 세계가 깨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치료의 과정에서 수많은 ‘의식의 훈련’을 거쳤다. 식사 전후의 감각을 관찰하고, 걷는 속도를 기록하며,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는 일.
처음에는 단지 생존을 위한 행동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다. 몸이 약해질수록 정신은 또렷해졌다.
불편함이 깊어질수록, 그 속에서 발견되는 기적의 조짐은 더욱 선명했다.
아이의 시험을 바라보는 오늘, 나는 그 의식의 힘을 다시 떠올렸다. 공부 역시 의식의 훈련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흔들리는 집중력을 붙잡고, 피곤한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는 일.
그 반복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배우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말해주지 못했지만, 진정한 시험은 오늘 하루가 아니라 매일의 의식적 선택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운명이라는 단어를 신비하게 여겨왔다. 마치 주어진 길처럼, 피할 수 없는 결정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바꾸는 힘은 대단한 지식이나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의식적인 삶이다.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결국 나를 바꾸는 일.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삶을 다시 쓰고, 운명을 새로 그려간다.
의식의 반대는 무의식이다.
무의식은 어쩌면 편안함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습관처럼 반복되는 행동 속에서는 새로운 것이 자라나지 않는다.
그러나 불편함을 감수하며 깨어 있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몸이 기억하지 못하던 움직임을 되찾고, 마음이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살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오늘 아침 교문 앞에서 떠나보낸 막내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또 다른 교문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을 겹쳐 보았다. 삶이라는 긴 시험장 앞에서, 나 역시 매일 의식의 연습을 하고 있었다.
기적 같은 결말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의식하며 살아내는 그 과정 속에 이미 자리하고 있다. 아이의 시험이 끝나면, 다시 일상은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하루의 경험은 단순한 시험날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의식의 날로 남을 것이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사소한 선택의 반복에서 나온다.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불편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불편함이야말로 기적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의식’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의식은 무의식의 습관을 깨어나게 하는 깨어 있음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