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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성심당에서 튀김소보로를
사기 위한 여정.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98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어제 오랜만에 가족들과 다시 만나 울음을 참아가며 끌어안았던 시간이 아직도 가슴 한편에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가족의 온도’가 몸에 다시 배어드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처가에서 하루를 묵었다.


좁은 방이라 잠자리는 불편했지만, 아내와 막내와 한 방에서 함께 누워 숨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일이 너무 오랜만이라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아침에는 장모님께서 정성스레 차려주신 밥상에 둘러앉았다. 따끈한 찌개와 반찬들, 그리고 처형이 만들어온 반찬까지.


중학생 때 본 이후 처음 본 막내는 그새 훌쩍 자라 장모님의 눈에는 더없이 낯설고 신기한 손자가 된 듯했다.


“내년엔 대학생이 되어서 다시 보자.”

장모님의 말에는 그동안 만나지 못한 세월을 향한 아쉬움과, 앞으로는 자주 보고 싶다는 바람이 함께 묻어 있었다.


집을 나오려는데 처형이 강원도에서 가져온 영지버섯과 약초 말린 것을 건넸다.

“차로 끓여 마시면 목에 좋아.”


그 말 속에는 투병 중인 사위를 향한 조심스러운 걱정과, 많이 표현하지 못해 쌓여 있던 애정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장모님은 밑반찬과 이것저것 음식을 바리바리 싸주시며 차가 출발하는 순간까지 계속 건강을 당부하셨다.


형제가 없는 내게 이제 남은 가족은 처가 쪽뿐인데, 그 사랑을 오늘 아침 다시 확인하니 기쁨보다 먼저 울컥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내년 명절엔 완치된 모습으로 다시 보겠다는 말을 끝까지 웃으며 건넸다.


대구로 향하며 차 안에서 어제의 시간을 떠올리고 있는데 막내가 갑자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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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대전하면 성심당 유명하잖아요.

한번 들러볼까요?”


아내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 역시 본점을 간 적이 없었기에 주소를 입력해 방향을 틀었다.


본점 근처에서 두 사람을 내리고 주차를 찾아 몇 바퀴를 돌았다가 겨우 자리를 잡고 합류했다.


생각보다 줄이 길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막내가 인터넷을 찾아보더니 정작 유명한 ‘튀김소보로’는 다른 곳에서 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길로 막내와 함께 그 매장 앞으로 갔는데, 골목을 가득 메운 줄을 보고 우리는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예상 대기시간은 1시간 30분. 나들이 삼아 왔다면 기다릴 수도 있었겠지만, 대구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우리에게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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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본점으로 돌아와 롤케이크 하나만 사서 차로 향했다. 막내는 아쉬운 얼굴로 “친구들한테 성심당 빵 사간다고 했는데…”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난 날 출장길에 KTX로 대전역을 지나던 때가 떠올랐다.


늘 빵 냄새가 은은히 퍼졌고, 많은 사람들이 손에 들고 타던 종이가방이 떠올랐다. 그곳에도 성심당 매장이 있었다.


나는 방향을 돌려 대전역으로 갔다. 본점처럼 긴 기다림은 없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예감대로 줄은 있었지만 10분이면 될 정도였다.


우리는 무사히 튀김소보로 네 박스를 샀다. 한 박스에 여섯 개가 들어있고,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해 조금 놀랐다. 차 안에서 막내가 한 박스를 열었다.


호기심에 한입 베어 물었는데, 바삭한 식감과 달콤한 풍미가 입안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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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이 이 빵을 두고

‘대전의 자존심’이라고 말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빵 하나를 사기 위해 줄을 두 번이나 서고 장소까지 옮기는 어찌 보면 소소하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또 하나의 추억을 뒤로하고 우리는 대전을 떠나 대구를 향해 출발했다.


막내는 뒷좌석에 앉자마자 어젯밤 좁은 방에서 잤던 탓인지 금세 잠이 들었다. 깊이 잠든 아이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차 안에 잔잔하게 퍼졌다.


아내와 나는 그 사이 지난 이틀 동안 쌓인 짧은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 이야기했다.


서로가 놓쳤던 순간과 함께 본 풍경, 그리고 마음속으로만 삼켰던 감정들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문득 5월이 떠올랐다.

입원 날짜를 정하고, 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전한 뒤 대전을 향해 출발하던 그날의 공기는 무거웠다. 차창 밖 풍경은 봄이 한창이었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더 깊은 어둠이 퍼지고 있었다.


나조차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던 ‘암’이라는 단어, 그 단어로 인해 갑자기 중심을 잃어버렸던 그 시절의 나.


그날 대전을 떠나는 길은 끝없이 가라앉는 우울로 가득했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차 안의 공기를 가득 메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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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의 길은 그날과 전혀 달랐다.


비록 ‘완치’라는 단어를 아직 말할 수는 없지만 내 몸 안에서 암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이미 삶의 결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잠시 멈추었던 시간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히 빛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들과 함께 웃고 대화를 나누고, 회복된 모습을 보여드린 뒤 집으로 돌아가는 이 길이 이렇게 가벼울 수 있다는 사실이 큰 기쁨이었다.


햇살은 초겨울답지 않게 따사로웠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는데 차가운 기운보다 온기가 먼저 느껴졌다.


달리는 차 안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마치 “잘 견뎌냈다”고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는 환영처럼 느껴졌다.


창밖으로는 늦가을의 마지막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붉은 잎들은 마지막 불꽃처럼 남은 빛을 최대한 밝게 태우고 있었다.


계절의 끝을 장식하는 단풍숲의 풍경을 바라보며 아내와 나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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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가 바라본 것은 단풍이 아니라

‘서로의 회복’이었는지도 모른다.


병원이라는 국경을 넘어 다시 일상이라는 땅으로 돌아온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그 미묘한 감정들.


두려움 대신 안도가 있고, 불안 대신 감사가 있고, 침묵 대신 웃음이 있는 하루였다.


짧은 여행 같은 하루였다. 기다림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 위에 뜻밖의 기쁨이 조용히 내려앉아 우리의 하루를 단단하게 채워주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가족 덕분에 웃었고, 삶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소리를 선명하게 들었다.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달으며, 묵묵히 달리고 있는 차 안에서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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