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후기

|다 알고 있는 역사인데 울게 만드는 영화 대체 뭐길래?

by 마침내

도대체 웃고 우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한 소문을 듣고 동네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이 영화의 특이점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했으나 단종과 세조, 한명회가 아닌 왕과 백성이라는 초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이야기 안에서 사람과 진심 그리고 관계에 대하여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

어린 단종이 한명회에게 말하는 이 낮고 떨리는 대사 하나로 본격적인 영화가 시작됩니다. 유배인지 죽음인지 혹은 그보다 더 긴 침묵인지 모를 이 문장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서 ‘쿵’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미 정해진 길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던질 수 있는 그 물음은 영화의 시작부터 저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염라대왕 앞에 선 영혼이 “저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라고 묻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이 대사는 삶의 끝을 묻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묻는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1. 묵직함의 경계를 낮춰주는 능청스러운 웃음


묵직하게 시작된 질문과 달리 영화 초반은 가볍고 코믹한 장면들이 이어졌습니다. '어? 이거 코미디였나?' 싶을 정도로 능청스러운 대사와 상황들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가벼움으로 관객의 경계를 슬쩍 낮춰놓은 뒤 서서히 가슴 한복판으로 묵직함이 스며 들었습니다.


2. 신분의 벽보다 높은 '사람의 마음'


왕과 평민. 그 사이에 놓인 신분의 벽은 분명히 높고 단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벽보다 더 단단한 인간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은 바람을 맞으며, 함께 외로움을 견뎌내는 두 존재.

거기에는 어떤 이해관계나 계산도 없었습니다. 그저 사람과 사람이 마주 서 있는 가장 본질만 있었습니다.


3. 우리는 왜 관계를 감정으로 소모하는가


우리는 종종 마음 대신 직함이나 조건을 내밀며 살아갑니다.

'누가 더 나에게 필요한가'를 따지며 관계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이어지는 관계는 단단해지는 대신 딱딱해집니다. 부드럽게 휘어지지 못하고 어느 순간 '툭' 부러져 버립니다. 저 역시 감정 소모가 싫다는 이유로 사람을 정리하고, 마음을 접어 넣었습니다.


손바닥 하나로는 박수 소리가 나지 않는 것처럼 관계란 서로의 마음과 깊이가 오가야 합니다. 그것을 알기에 상처받지 않으려고 내 손을 아예 내밀지 않았던 적도 많았습니다.


4. 단종의 죽음을 빌려 쏟아진 눈물


역사가 스포일러이기에 우리는 단종의 끝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사실을 잊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이 담겨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에 빠지게 했고 결국 눈물이 흘렀던 것 같습니다.


이미 알고 있지만 겪고 싶지 않은 마음, 관계들이 생각나 결국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저도 그 안에 있습니까?


영화를 보면서 울게 된 포인트는 관계였습니다. 끝까지 곁에 남으려 했던 마음, 지키려 했던 사람.

저 역시 그런 마음을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을 몹시도 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5.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대체 뭐길래?에서 관람하게 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코믹과 사극의 경계를 오가며 우리를 웃기고 울리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분명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가 되면 오늘을 사는 관객에게 질문을 남겨 놓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나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라는 어린 왕의 목소리를 가슴에 품고 지금이라는 강을 건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6. 조연이 없는 배우들의 연기


마지막으로 영화에 푹 빠질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의 연기였습니다. 특히, 유해진 배우의 연기는 거의 압권이었습니다. 연륜답게 극을 끌어가는 단단한 힘이 있었고, 단종을 연기한 박지훈 배우는 눈빛 연기만으로 충분히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었으며, 유지태 배우는 한명회의 심리를 완벽하게 표현해냈습니다.


그 외에도 조연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

700만이 넘었고 곧 1000만 영화가 될 것 같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가족, 연인, 친구와 관람해도 좋고 혼자 조용히 봐도 좋은 영화입니다.


덧붙이자면, 인간다운 관계가 그리운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잔잔하게 감동하고 포말 같은 여운이 생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