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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고전
by 어설픈 글쓰기 May 08. 2018

이방인

알베르 카뮈

오늘 아침 문득, 내가 ‘카뮈’와 ‘카프카’를 오랫동안 혼동해왔음을 깨달았다. 카뮈의 작품 <페스트>를 카프카의 작품으로 오해했던 까닭이었다.

왜 였을까?

같은 ‘카’씨라서? 어디에서 한껏 바람 맞고 돌아온듯한 그들의 외모 때문에?

물론 무지의 소산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 두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국적도 연대도 다르지만,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인간의 불안한 존재감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내친김에 책꽂이에서 <이방인>을 뽑아 들었다. 쓰다가 내팽개친 독서록을 완성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정독은 아니었다. 책상에 걸터앉아 주인공의 이름과 사건들을 회고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무심한 데다 건달끼가 다분한, 모든 사람에게 패륜아로 낙인찍혔던 뫼르소는 여전히 내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스무 살에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나는 무슨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 생각했다. 엄마가 죽었다는데 그렇게 태연하다니, 어떤 사람들은 ‘엄마’ 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거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놀러가? 나는 당연히 그가 죽어 마땅하다고 여겼다.      


서른 살, 두 번째로 읽었을 때는 뫼르소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작 살인의 동기와 과정은 들여다보지 않고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처형장으로 끌고 가는 사회가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사람마다 슬픔의 농도와 표현이 다르지 않은가. 자신들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뫼르소를 미워하는 것으로는 모자라 철저히 부정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기가 질려버렸다.     


마흔이 넘어 세 번째 읽을 때는 두려움을 느꼈다. 책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이방인’이라는 제목을 비롯해, 이방인을 구분하는 그 모든 잣대가 내게 큰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의 시작은 뫼르소를 세웠던 심판대에 똑같이 올려졌었던 나의 오래된 기억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평소에 약주를 많이 하시는 데다 워낙 식사가 불규칙해서 생긴 간경화는 끝내 아버님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은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대성통곡을 하며 들어섰다. 거의 쓰러질 것 같은 통곡과 몸부림을 보며 나는 오히려 두려움을 느꼈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나도 슬펐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하지 않던가. 다른 가족들에겐 엄하시기만 했던 시아버지는 시어머님 몰래 초밥을 사주셨고, 설거지를 도와주셨다. 말씀마다 ‘우리 아가’라고 귀여워해 주시던 시아버님의 죽음은 내게도 큰 슬픔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꺼이꺼이 목놓아 울 수도, 주룩주룩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다. 평소에 슬픈 광고만 봐도 흐느껴 울었던 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댁 어른 들은 어정쩡하게 서있기만 한 나의 모습을 그냥 넘기지 않으셨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가 저 모양이라며 혀를 끌끌 차셨고, 등짝을 후려치기고 하셨다. 모두에게 손가락 짓을 받았던 나의 눈물은 오히려 장례식이 모두 끝난 후에야 터져 나왔다.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횟집 앞을 지나며, 아버님께서 좋아하시던 트로트 노래를 들으며, 그리고 아버님과 처음 먹어본 도가니탕을 생각하며 나는 울었다. 나의 눈물은 메마른 것이 아니라 그처럼 느렸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세상은 나의 느린 눈물을 참고 받아줄 수 있을까.

뫼르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나의 모습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뫼르소와 나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수많은 질문이 나를 흔들었다. 게다가 뫼르소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항의할 의지도, 말주변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런 사실을 떠올린다는 것부터가 내가 이방인이란 사실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란 참으로 모질고 독한 존재이니 말이다.


내가 딛고 있는 땅은 대체 어디일까. 나는 사회 안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뫼르소와 같이 사회밖에 존재하는가. 세상이 지금 내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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