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내맘대로 고전
by 어설픈 글쓰기 Apr 04. 2018

일리아스

호메로스

드디어 일리아스를 완독 했다. 무려 800 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분량의 책이었다.

호메로스의 원작을 읽고 싶은 마음에 얇고 쉬운 책들을 고사하고 집어 든 책이었지만, 밀려드는 후회감을 수 없이 견뎌내야 했다.   



대부분의 세계문학전집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로 시작된다. 서구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인문학을 더듬어야 하고, 인문학의 큰 줄기라 할 수 있는 고전의 시작점을 찾다 보며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라는 뿌리에 닿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래된 두 편의 서사시는 지금까지도 막강한 파워를 뽐내며 세계의 문화 위에 군림하고 있지만, 1만 8천 줄에 달하는 이야기를 읽는 데는 많은 인내심과 이해력이 요구된다.


이처럼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가 '인류 최초의 문학'이라 일컬어지는 반면, 저자인 호메로스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학자에 따라서 당대의 최고 문학이라 칭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단지 구술로 전해지는 내용을 기록했을 뿐 저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부류들이 있어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구름 속에 가려진 미지의 작가일 뿐이다.


고대 그리스의 영웅 서사시 중에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뿐이다. 그리고 이 두 편은 '트로이 서사 시권'의 일부이다. '트로이아 서사 시권'은 총 8편의 서사시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인 <퀴프리아>는 파리스의 심판부터 그리스 군의 트로이아 도착까지를 취급하고, 두 번째가 <일리아스>다. 이후 다섯 편은 전쟁을 노래하고 있으며, 일곱 번째가 <오디세이아>이고, 마지막 여덟 번인 <텔레고노스 이야기>는 오디세이아 이후의 이야기들을 노래하고 있다.


트로이 전쟁의 발단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끝자락에서 시작된다. 신의 제왕 제우스는 여신 테티스를 사랑하지만 그녀가 낳은 아들은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신탁 때문에 제우스는 테티스를 인간 펠레우스와 결혼시킨다. 그들의 성대한 결혼식에 모든 신들이 초대되지만 초대받지 못한 불운의 여신은 자신을 초대하지 않은 것에 앙심을 품고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쓰인 사과를 던져놓고 사라진다. 이 사과로 인해 자신이 아름답다고 자부하던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는 자신이 사과의 주인이라 싸움이 일어나고, 제우스의 중재에 의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결정권을 넘기게 된다. 셋이 공평하게 나눠먹이거나 혼자 먹어버렸어야 할 그 사과를 아둔한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넘기고 인간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헬레네를 받게 된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헬레나는 그리스 스파르타 왕국의 왕비였고, 자신의 여자를 빼앗긴 것에 분개한 메넬라오스 왕은 자신의 형 아가멤논과 동맹국을 꼬드겨 길고 긴 전쟁을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일리아스> 전의 이야기다.



<일리아스>는 십 년간 지속되었던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40일을 다룬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의 동맹군으로 전쟁에 참여하지만, 자신의 여자를 빼앗겼다는 분노 때문에 전쟁을 방관하며 아군을 저주하기에 이른다. 치열해지는 전투 속에서 쫓기와 쫓기기를 반복하는 사이, 아킬레우스의 연인이자 친구였던 파트로 클로스가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에 의해 죽게 되고,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과 화해한 후 전쟁에 참여해 헥토르를 죽이고 만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은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마차에 묶어 끌고 다니며 치욕을 입히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온 헥토르의 아버지의 애원으로 시신을 돌려준다. 마지막 트로이 진영에서는 헥토르의 장례식으로 분주하고, 그리스의 아카이아족에서는 파트로 클로스를 기념하기 위한 스포츠 경기가 진행되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일리아스>는 한없이 보잘것없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영웅들의 서사시'로 각광받는 그들의 이야기란, 그때나 지금이나 싸우기를 좋아하는 수컷들이 미인 하나를 차지하겠다고 십 년이 넘게 싸우는 너무도 어이없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신들의 가문과 명예를 위해서라며 목숨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영웅들은 철딱서니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지만, 집안만큼은 화려함에 극치였으니 부모 중 한 명은 신이거나 제우스의 손자, 증손자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이 전쟁에 올림푸스 신들까지 가세하게 되고, 인간은 물론 신들마저 분열과 상처를 겪으며 전쟁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의 사람이었고, 트로이 전쟁은 그보다 더 오래된 청동기시대의 이야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리아스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아직 국가라는 틀이 확립되기 전이었던 그 당시는 몇몇의 영웅에 의해 지배되었던 시대였다. 때문에 호메로스가 그리는 영웅들은 하나같이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의 권위를 잊고 인간들의 전쟁에 끼어 합세하는 신들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신들의 모습과 많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오래된 서사시를 통해 당시의 세계관과 종교관을 엿볼 수 있고, 인간에 관한 한없는 성찰을 이뤄낼 수 있기에 <일리아스>는 우리가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작품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문학은커녕 문자의 체계화조차 이뤄지지 않은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호메로스는 남긴 두 편이 서사시는 문학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일리아스>는 마치 전쟁을 실제로 보면서 써 내려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전쟁의 양상을 세밀하고 섬세하게 그려내었을 뿐만 아니라, 영웅들을 치켜세우기보다는 그들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을 묘사함으로써 문학의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물론 읽기에 지겨운 면이 없진 않았다. 누가 누굴 죽이고, 누가 누굴 죽였다는 끝도 없는 설명들은 성경구절을 연상시킬 만큼 지루한 부분이 많았고, 죽음을 향해 끝없이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신에 복종하고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순수한 인간 세계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의 묘한 매력으로 인해 길고 긴 이야기를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일리아스는 인학이라는 거대한 빙산으로 향하기 위한 나의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묵직한 책을 다리 삼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다. 철학과 역사, 세상의 모든 지식이 살고 있다는 거대한 숲을 향해 말이다.

keyword
magazine 내맘대로 고전
2017년 에세이문학으로 등단, 미국에서 지낸 10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