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인의 행복

방글라데시 다카 사원 앞에서 배운 작은 경제학

by 봉마담


방글라데시는 참 재미있는 나라다. 일 년 내내 비가 내리고 한 번 장마 지면 농작물이 모두 쓸려간다. 인구밀도는 세계 1위이며, 다른 나라의 원조가 없으면 먹고살기 힘들다. 그래도 사람들은 쾌활하고 낙천적이며, 자존심이 높고 허풍이 세다.


나는 느긋하고 허풍만 가득한 뒤죽박죽 이 나라가 웬일인지 유쾌하기만 하다.




사원 앞에는 유난히 걸인이 많다. 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10타카(타카는 방글라데시 화폐 단위)를 꺼내 그중 가장 어려 보이는 소년 거지에게 다가갔다. 그때였다.

문 앞에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수염이 성성한 걸인이 나를 보며 외쳤다.


"10타카를 한 사람에게 주느니 1타카씩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게 어떻소?"


딴에는 일리가 있었다. 여러 사람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는 것이 낫겠지.

그러나 내 손에는 잔돈이 없었다. 걸인이 말했다.


"걱정 마시오. 내가 잔돈을 바꿔주리다."




세상에! 잔돈 바꿔주는 거지라니!

그런데 노인으로부터 거슬러 받은 건 1타카 동전 아홉 개뿐.


"이봐요, 계산이 틀리잖아요? 동전 열 개를 줘야지요."


내 항의에 노인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커미션'이라는 게 있는 거요."



방글라데시 다카의 야채시장, 카우란 바자르 2024년 7월 풍경이다



오, 맙소사. 노인은 나처럼 잔돈이 없는 사원 방문객들에게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주는 '환전 사업'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아예 정례화된 일인 듯했다. 사원 문을 나선 신자들은 노인의 돈 통에 지폐를 넣고 동전으로 바꾸어 거지들에게 한 푼씩 나눠주고 있었다. 커미션을 제했음은 물론이다.


사원 문 앞에 모여 앉은 순서에도 깊은 뜻이 있었다. 문 앞에 가장 가까이 앉은 노인이 대장, 그리고 그다음부터 서열 순이다. 이 자리는 결코 바뀌는 법이 없어서 일찍 출근(?) 하나 늦게 출근하나, 오늘도 내일도 동일한 자리에 앉는다.


왕초 노인은 구걸과 환전 사업을 겸한다. 멀리 떨어져 앉을수록 동전의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이쯤 되면, 거의 회사 조직이다!




기막혀 하며 동전을 나눠주고 있는데, 다섯 번째쯤 앉아 있는 걸인이 말했다.


'1년 전만 해도 문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저쪽 끝자리가 자신의 자리였는데, 차츰차츰 서열(?)이 올라 마침내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수입이 늘어나니 몸도 편안해져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그 걸인.


"이 자리에 앉게 되어 나는 참 행복해요."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내내 걸인의 작은 행복을 생각했다. 나는 매일, 어디쯤 앉아있는 걸까.


진흙투성이 길을 삼륜차가 달려가고, 욕설이 난무하고, 알라와 힌두신이 섞여 살고, 절대 미안한 법이 없는 이곳 사람들. 그래서 나는 방글라데시가 좋다.




※ 저작권은 봉마담에게 있으며, 무단 전재와 복재, 배포를 금합니다.





'어딘가에서, 봉마담'

여행의 풍경 너머, 삶의 순간들을 기록합니다.

가볍게 웃고, 뜨끔하게 돌아보는 봉마담의 여행 에세이.
당신의 기억 속 어딘가와 겹쳐지기를.


▶️ 작가 페이지에서 구독하기

▶️ 네이버 블로그에서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