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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후 3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하다.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초이야, 소개팅할래? 근데, 성이 최 씨야."


친구에게 소개팅 상대의 성이 '최'씨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소개팅을 나가지 않으려고 했었다. 이전에도 '최'가와 힘든 연애를 했고 아프게 헤어졌기 때문에 '최'가는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결정적으로 나도 '최'가다. 


친구에게 물었다. 나, 힐 신어도 돼? 남자 키나 신경 쓰는 여자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에둘러서 물었다. 내 키가 167cm이니 힐을 신어도 된다는 이야기는 그 남자의 키가 최소 175cm 이상이 된다는 말일 테니...(아, 머리 아프게 이런 계산까지 했다. 역시 속물이다.) 물론, 무슨 일을 하는지 등 다른 것들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더 속물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이 만남에 정을 주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내 나이 32살 1월의 일이다. 그때 나는 이제는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사람과 남자에 질렸을 때였다. 그럼에도 추운 겨울날 주말, 그 소개팅에 코트와 원피스, 얇은 스타킹을 신고 나갔다. 기대하지 않았다는 건 그냥 나중에 상처받지 않을 나를 위한 장치였다.


저 멀리서 멀끔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일부러 시간을 딱 맞춰서 도착했다. 여자가 먼저 기다리면 안 된다는 나와 사회의 (의미 없는) 정의를 따랐다. 파스타집으로 이동한다. 아마도 소개팅 핫플이었나 보다. 여기도, 저기도, 짝을 찾아 나온 커플들이 테이블을 메운다. 어색한 미소들, 그럼에도 설레고 다정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나는 첫인상이 차갑다는 말을 항상 듣고 살았다. 최대한 미소를 짓는다. 그의 눈에 눈을 맞추고,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참 젠틀한 사람이다. 참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니 재미있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드라마 보듯이 그 사람의 인생 리뷰를 듣는다.


파스타가 나왔다. 원래도 천천히 먹는데, 이날은 더 느리다. 어색한 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냥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파스파 면이 몇 가닥인지 세고 있다. 남자도 조심스럽게 파스타를 먹는다. 그리고 잠시 포크질을 멈춘다. 나를 쳐다본다. 다 먹었나? 싶었는데 다시 포크를 든다. 내 속도를 맞추려는 것이었다.


파스타집에서 나와 퓨전술집으로 이동한다. 목에서 피맛이 나게 소리를 높여 이야기한다. 마치 서로에게 서로를 영업하는 느낌이다. 자신의 성장과정과 삶, 신념을 리뷰하는 기분이다. 다시 역 근처에 대형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긴다. 1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부족하다. 나는 느꼈다. 그가 아쉬워한다는 걸. 그리고 내가 아쉬워한다는 걸.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12시에 문을 닫는다는 직원의 말에 아쉬워하며 서로의 집으로 향한다. 이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 결혼할 때까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고, 하루도 빠짐없이 즐거웠다. 우리는 서로 어떻게 이렇게 잘 맞을 수 있냐고 이야기했다. 이건 9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이다. 




우리는 2013년 1월에 소개팅을 하고, 그해 3월에 결혼을 결심했고, 그해 4월에 프러포즈를 받고, 5월에 상견례를 했으며, 그해 12월에 결혼을 했다. 30년을 넘게 각자의 삶을 살던 두 사람이, 만난 지 1년 만에 서로의 인생에 들어왔다. 아무튼 우리는 결혼을 했다.


이 빠른 결혼에 다들 의아해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 이르다고 했다. 성급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곧 걱정 어린 시선을 거두고, 신중한 사람이니까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 신중한 내가 이런 결정을 한건 이 사람이 그만큼 좋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한다고 나의 선택과 우리의 만남을 지지해줬다. 우리 가족들과 30년 지기 고향 친구들이 그랬다.


"남편분을 만났을 때 확신이 들었어요? 정말 결혼할 사람을 보면 후광이 비치고 다른 게 느껴져요?


"어, 달랐던 거 같아. 처음 만났을 때 저 사람은 뭔가 특별해라고 느껴졌었어."


"아 정말요? 근데 저는 지금 결혼하려는 남자 친구에게 그런 걸 느끼지 못했는데, 이 남자는 저의 결혼 상대가 아니었던 걸까요?(불안불안)"


음... 지금에 와서 고백하지만, 나는 여태 만났던 사람들과의 첫 만남은 다 그 만남대로 특별했다.ㅎㅎㅎ 다 나의 인연이라고 생각했고, 다 나와 결혼할 줄 알았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결혼할 사람은 다르다는 허상을 믿지 말길 바란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자신들의 특별한 만남을 포장하기 위한 장치 정도라고 생각하자. 결과론적으로 보면 나는 지금 남편과 결혼을 했으니 그때 첫 만남의 후광이 결혼할 사람에게서 나오는 후광이라고 생각(착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만약에 남편과 연애만 하고 헤어졌다면 그 이전의 만남과 똑같이 그 특별함이 흐려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만났고, 사랑을 느꼈고, 결혼을 했다. 우리의 사랑은 운명적이고, 서로에게 특별한 후광을 보며 세기의 인연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우리의 만남을 아름답게 포장해 뒀다. 그렇게 정리해두면 우리의 사랑이 더 거룩하고,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사랑을 더 잘 지켜내려고 노력하게 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너무 빨리 결혼하는 게 무섭지 않았어요?"


"말도 마… 너무 무서웠어. 불안하고 두려웠어.

나는 원래 신중한 사람이거든. 내 인생의 절반을, 많게는 2/3을 함께할 사람을 선택하는 건데 얼마나 고심했겠어. 남편과 데이트한 후에 헤어져서 집에 들어오면 행복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했었어. 잠도 잘 안 오고, 먹는 것도 잘 안 먹혀서 오히려 살이 빠지기도 했었어. 그만큼 좋기도 했지만 인생의 큰 결정을 해야 한다는 자체가 스트레스이기도 했던 것 같아.


이 사람에게 내 인생의 절반을 맡겨도 될까. 정말 좋은 사람일까? 연애하면서 잠깐 좋은 사람인척 하는 사람이면 어떻게 하지? 등등 온갖 시나리오를 써가면서 불안과 의심을 키워냈었어.


근데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이 사람이 점점 더 좋아지는 거야. 이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도 커지고, 이 사람이 내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내 생각과 감정을 선택했어. 그 사람을 믿는 내 마음을 믿자.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나의 안목을 믿어보기로 한 거지. 나의 선택을 믿기로 했어. 그리곤 결심했지. 마음껏 사랑하자. 불안과 두려움, 혹시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하는 의심을 거두자.


그 이후론 아주 심플해졌어. 어떻게 하면 이 사랑과 행복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느끼는 사랑과 행복만큼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를 더 고민했던 것 같아.


아직도 우리부부의 결혼생활은 진행형이니까 결과는 아무도 몰라. 하지만 나는 남편을 믿기로 했고, 나의 선택을 믿기로 한 거니까 나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면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고 믿고, 행복하려고 노력할 거야."




자신을 안목과 선택을 믿어보자.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한 나를 믿어보자. 각자의 선택은 그때에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고,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만약 나의 안목과 선택에 자신이 없거나, 상대가 못 미덥다면, 불안정한 누군가에게 내 인생을 배팅하지 말고, 먼저 나의 안목과 선택을 믿을 수 있도록 나 자신에게 올인해서 나를 먼저 미덥게 키우는 건 어떨까?


나는 이렇게 그때 불안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남편과의 결혼을 결심한 나의 선택을 칭찬한다. 

그만큼 나는 그를 사랑한다. 존경한다. 추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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