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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나

소비를 촉진하던 마케팅 매니저가 미니멀리스트가 되기까지, 그 서막

by 마담 히유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지만, 나는 프랑스에서 직장인으로 9년째 살아가고 있다.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의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마케팅 인턴(이라고 쓰고, 잡무 담당이라고 읽을 수 있는)으로 일을 시작했다. 현재는 한 일본계 대기업에서 B2B 제품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마케팅’은 단순한 광고나 홍보에 그치지 않는다.

마케팅의 핵심은 시장과 소비자를 분석해 제품을 적절히 포지셔닝하고,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장기적인 소비자 관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이후 소비자와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고, 궁극적으로 기업의 성장과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뭐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사고, 또 사게 만드는 것이 나의 임무이다.




나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프랑스 대학으로 편입을 해서 학사, 석사까지 마친 뒤 현재는 프랑스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1유로가 1,500원을 육박하던 시절 (놀랍게도 최근에 다시 환율을 볼 수 있었다) 그 악명 높은 파리에서 자취를 하려니 꽤나 '쪼들리는' 유학 생활을 했다. 물론 부모님께서 생활비를 보내주시긴 했지만, 잘 다니던 한국 대학교를 때려치우고 다시 맨땅에 헤딩하듯 온 프랑스 유학이라, 남들은 곧 취직해서 독립을 할 나이에 나는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처지가 그저 민망하기만 한지라, 최소한의 금액을 정하고 그 금액을 부탁드렸다. 물론 생활비를 더 보내달라고 하면 당연히 보내주셨을 것이지만, 내가 유학을 시작했을 때쯤 막 아버지가 은퇴를 하셨기에 나는 혼자 죄송한 마음에 나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유학이었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난한 유학생으로 지내다 보니 유학 초반의 목표였던 ‘번역가’는 어느새 희미해졌다. 돌이켜보면, 그만큼 간절하지도 않았던 듯하다. 결국 나는 ‘전업 번역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라는 주변의 우려를 핑계 삼아 스스로와 적당히 타협했다.

나의 새로운 목표는, 그저 최대한 빨리 밥벌이를 해서 경제적 독립을 하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 나는 'Information-Communication', 한국으로 치면 언론정보학, 광고홍보학, 혹은 미디어학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학과로 진학했다. 이후 비즈니스 스쿨에서 마케팅·전략을 전공하며 진로를 마케팅으로 확고히 했다.


빠른 '태세 전환'덕에 나는 금방 밥벌이를 할 수 있었다. '마케팅'으로 처음 돈을 벌었을 때, 재미도 있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마케팅을 위해 태어난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케팅으로 돈을 벌고, 마케팅으로 인해 돈을 쓰며 살았다.


하지만 요즘 생각이 많다.

이미 ‘과잉 생산’으로 인한 ‘과잉 쇼핑’ 상태가 오래전부터 지속되고 있는데, 여기서 물건을 하나 더 파는 것이 정말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될까. 훌륭한 위인이 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세상에 폐를 끼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지구를 죽이는 일에 일조하고 있다.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50년 전과 비교하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윤택해졌다. 하지만 과연 그만큼 더 행복해졌을까? 이제 우리는 5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수많은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고,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삶이 더 만족스럽다고 느껴지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 그렇게 많은 물건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소비한다. 그 결과, 이제는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지고,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속도가 우리가 끝없이 사고 또 사들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지 오래다.

인류는 자원을 너무 빠르고 대량으로 소비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에게 자원을 내어주던 지구는 점점 더 병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바이러스를 여기저기 퍼뜨리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환멸감을 가지고 있는 마케팅인데,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마케팅을 업으로 삼고 있다. (심지어 상사가 내 프로젝트들을 꽤 맘에 들어하는 편인걸 보아 나쁘지도 않은 것 같다.) "돈이면 다 돼"라는 말은 참 싫어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큰 의미를 차지하는 것은 분명하다. 꽤나 확고한 신념이 있는 나 또한, 나와 내 가족이 큰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내 '영혼을 파는 중' 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나 하며 고민 중인 나날들이다.


그 방향을 잡을 수 있을 때까지는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들부터 해보자는 마음으로 천천히 하나, 둘 글을 써 보기로 했다.


언젠가는 내가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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