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거창해 보이지만 쏘 심플
우울증에 약복용한 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처음에는 너무 막막하고 아득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뭐라도 할 힘이 생겼다.
파리에 다녀오고 난 뒤 특히 힘들었지만 또 좋아진 점이 많이 느껴진다.
위의 내용은 약 한 달 전에 쓴 이야기.
고로 이제는 두 달 전의 내가 쓴 이야기.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흐르고 있다.
정말 다행이다. 왜냐 앞으로 여기에 살 날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이제 약 6개월 뒤면 여길 떠날 수 있다.
기아나…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을 곳이다.
아이들 특히 둘째는 여태 수족구를 네 번이나 앓았고
첫째는 퍽하면 기침감기에 걸려 밤사이 마른기침을 하느라 제대로 잠을 못 자는데…. 이건 다 습기와 에어컨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의 열악한 의료상황 때문에 항생제는 둘째치고 무슨 바이러스에 걸렸는지 알지도 못한 채 ‘감기’라는 이름으로 그저 자연 치유되길 기다릴 뿐이다….
내가 이런 곳에 와서 살 줄이야.. 그것도 내 새끼들을 데리고 이 고생을 하며 살 줄이야… 꿈에도 몰랐지.
내가 여기서 코스타리카산 당근을 먹고, 남아프리카산 귤을 먹으며 캄보디아산 쌀로 밥을 해먹을 줄이야….
생 고기는 한 달에 두어 번 먹고 냉동으로 끼니를 해결할 줄이야.. 정말 몰랐다.
혹자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인생에서 한 번쯤 (남의 돈으로 비행기를 타고 선박이사를 해서) 남미에 살아보고, 거의 공짜로 거주하며 겪는 에피소드들이(좋던 나쁘던) 부럽다고.
전혀 아니다.
사는 게 지옥이다 여긴.
그래도 같이 지옥이라고 말해주고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생겨서 다행이다. 그전에는 혼자 앓느라고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라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참 위로가 되는 날들이다.
얼마 전에 김창옥선생님의 유튜브를 보았다.
지금 오늘을 살자. 오늘을 사는 중에 자꾸 내 시간을 내일로, 미래로 앞서가며 살지 말자.
오늘에 내 발을 딛고 서있자.
그리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어볼 것….
예전에는 그럴 수가 있을까? 싶었는데
우울증 약 덕분일까? 내일 하려던 일을 오늘 해보고,
오늘 다 못한 것은 또 ‘그러려니 ‘ 나를 다독이며 괜찮다고 위로하고 또 나아갈 힘을 충전하는 날들을 살아보고 있다.
해보고 있다. 노력하고 있다.
조만간 이력서를 프린트해서 여기저기 내보려고 한다.
아이들 방학 때문에 풀타임으로 일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작은 소일거리라도 하면서 자존감을 좀 높여보고 싶다.
지금도 충분히 집안살림하면서 알찬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남이 주는 급여받는 일을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주에 오랜만에, 파리 다녀온 후 처음으로, 정신과 의사를 만나고…그다음 주에는 심리상담을 하러 간다.
큰아이 방학은 이번 주에 끝이 나니 다음 주에는 좀 더 숨통이 틔이겠지?
아 그리고 나 스스로 목표를 하나 세웠다.
<하루에 프랑스어 문법 2과씩 풀기>
실천 3일째인데…. 작심삼일이라도 좋다.
포기하고 또다시 작심삼일로 이어나가는 릴레이 하면 되니까…
이러쿵저러쿵 중얼중얼 일기 쓰듯 쓰는 브런치다.
이런 것도 시간이 지나면 ‘그때 그랬구나’ 알게 되는 하나의 지표가 되니… 이것만으로도 만족이다.
우울증 약 처방받아서 먹길 잘했다.
훌륭하다. 여기서 이 정도로 정신을 붙잡고 살며 살림하는 것 자체가 매우 큰 일이고 훌륭한 일이다 나를 다독인다.
오늘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