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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랑한 마들렌 Jul 26. 2023

낭독은 대언이다

(요즘 같은 사회 분위기에 종교 이야기로 시작해서 미안합니다. 그저 예시일 뿐이니 용서하고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보통 기독교의 예배에서 목사는 신의 메시지를 성도들에게 ‘대언(代言)’한다고 표현합니다.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대신 전달한다는 것이죠.


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




낭독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낭독하는 글이나 책은 작가의 사상, 생각, 마음입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낭독자는 청자로 변신한 독자에게 대신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나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하겠죠. 내가 쓴 글이 아니니까요. 내가 낭독하는 글을 쓴 작가는 어떻게 이 글을 썼을까요? 일주일쯤 구상하고 자리에 앉아 일필휘지로 글을 써내려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한 단어, 한 단어를 고민하고 조사까지도 신중하게 선택해 연결하지 않았을까요. 그러한 작가의 마음을 헤아리며 나의 글이 아닌 남의 글을 대신 전달한다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오독은 최선을 다해 막아야 합니다.


둘째, 본래의 화자가 말하려 했던 것을 성심성의껏 살려내야 합니다. 본래의 화자, 즉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표현하고자 했던 감성이 최대한 전달되도록 낭독해줘야 합니다. 글의 내용이 따뜻하고 희망적이면 그렇게, 힘들고 어둡다면 또 그렇게 표현해야 합니다. 혹은 지식이나 정보를 주는 책이라면 작가가 가르쳐 주려고 하는 내용을 잘 ‘설명’ 해 주어야 합니다.




가끔 ‘영혼 없는 낭독’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발음, 발성도 좋고 낭독도 참 잘하는데 글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거나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경우, 즉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싶은 경우가 있습니다. 또는 잘 낭독해 주는데 어려운 내용이라 청자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시 좋은 ‘전달’이라 하기는 힘들 겁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그 책의 목적인데 청자(독자)에게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으니까요.


이러한 경우들은 낭독자가 텍스트를 충분히 내재화하지 못했기에 생기는 아쉬움입니다. 텍스트의 내용,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감성이 무엇인지를 날카롭게 파악하고 그것을 성심성의껏 대언해야 합니다. 결국 낭독은 문해력입니다.




202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고 그녀의 열정에 매료되어 낭독을 해보았습니다. 그저 재미 삼아 해 본 것인데 나중에 여러 번 다시 들어보니 뭔가 어색하고 낭독이 급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시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러했더군요. 저는 나름대로 책 속 화자의 입장, 즉 자신보다 무척이나 젊은 유부남과의 불륜 상황에 놓인 것, 그리고 보통의 연인처럼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으며 일방적인 연락과 방문을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애절한 마음, 그것을 표현하겠다며 약간은 은근하고 뭔가 좀 야릇하며 마음의 여유가 없는 듯하게 낭독을 했던 거였습니다. 짧은 소설이었지만 낭독을 전체적으로 들어 보니, 그보다는 오히려 화자의 열정 자체에 더 집중하고 낭독의 톤을 맞추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의 감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입니다.


저의 실수에서 배울 수 있듯, 오디오북 낭독에서는 글의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각 단어, 각 문장들도 모두 온전히 이해해야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지요. 숲도 봐야 하고 풀도 보아야 하는데요, 낭독는 먼저 숲을 제대로 파악해야 나무도, 풀과 꽃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초독으로 읽다 보면 풀과 나무를 통해 숲에 이르기도 하지만 숲을 인지하지 못하고 낭독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낭독자가 마치 작가가 된 듯 책임감을 가지고 작가의 뜻을 잘 전달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낭독자는 대언자, 전달자입니다. 책 속의 주인공보다는 작가에게 빙의된 듯한 느낌으로 청자와의 연결을 중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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