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코드를 디코딩해 보기.
어떤 영화는 그냥 보고 잊히지만, 어떤 영화는 오래 마음속에 남는다.
나한테는 매트릭스가 그랬다.
영화 속 사람들은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코드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언제든 요원 스미스가 들어와 통제할 수 있는 세계.
그걸 보면서 나는 현실을 떠올렸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 욕망, 심지어 선택까지도
누군가의 코드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그런데 영화는 또 다른 길을 보여준다.
네오는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고 느꼈고, 모피어스가 나타나 그걸 확인시켜 준다.
“세상은 허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허상을 뚫고 보면 진실에 닿을 수 있다.”
그 장면에서 나는 예술을 생각했다.
예술도 결국 그런 게 아닐까.
겉으로는 화려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은밀한 코드를 찾아내는 일.
사람들이 사랑 노래에 열광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사랑, 이별, 희망, 그리움.
이건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코드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 선율에 반응하고, 눈물짓고, 웃는다.
하지만 이런 코드를 가지고 활용하는 예술가들은
점차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각자만의 상처와 결핍이 생긴다.
그때부터 예술은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예술가에게는 예술성이 부족하다는 주변 말에 휘둘리게 되어
예술적인 자기만의 무언가를 창조해내기도 하면서
대중적인 울림에서 멀어지고, 자기만의 깊은 경험을 따라간다.
그래서 어떤 예술가는 대중에게서 멀어지고, 오히려 자기 안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에 집중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예술병”도 어쩌면 그 과정일 것이다.
그 과정을 겪지 않은 예술가들은 어쩌면, 깊은 예술의 경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매트릭스를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돈은 군중의 코드에서 나오지만, 진실은 결국 개인의 코드에서 나온다.
현명한 사람은 이 두 가지를 다룰 줄 안다.
겉으로는 대중의 신호를 울리면서도, 속으로는 자기만의 선을 붙잡는 것.
네오가 시스템의 규칙을 이용해 요원을 이겼듯,
예술가도 대중적인 코드를 이해하면서 자기만의 울림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나를 표현하는 예술에 심취해보기도 해야 하며
이를 느끼도록 노력하는 길은 아름답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예술은 매트릭스를 깨뜨리는 도구다.
처음에는 대중적인 예술코드로 표면적인 삶을 영위한다면
그 후에는 공허함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즉, 나를 위해서
보이는 허상을 가르고, 감정을 울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
“지금 내가 울리고 있는 건 군중의 코드일까, 아니면 나만의 코드일까?”
사실 답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질문을 계속 품고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네오를 찾아가는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