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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Maeng Sep 04. 2022

무전, 그러니까 무로 만든 전


지난주에 무를 샀다. 무생채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짬이 나지 않는다는 핑계에 게으름까지 한몫 거들며 시간이 일주일이나 지나버렸다. 정신을 자리고 무 생각을 했을 때에, 무는 이미 냉장고 안에서 쓸쓸하게 시든 뒤였다. 겉이 물렁했고, 군데군데 쪼그라든 게 싱싱함과는 참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일단 무를 꺼내 들었다. 기운이 샘솟아 밀린 것쯤 완벽히 끝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무의 시들시들한 겉을 벗겨내고, 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 안에 이미 바람이 들어 있었다. 희끗한 것들이 무 속에 번져 가고 있었고, 수분이라곤 영 찾아볼 수 없게 말이다.


속상했다. 무 좀 썰고, 마늘 좀 까고 하면 되는 것을 뭐가 그리 어렵다고 나는 또 이것을 잔뜩 미루고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짧고 굵은 잔소리를 했다. 도저히 무생채는 할 수 없는 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렇다고 버리기도 아까워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무전. 무전? 그때껏 들어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메뉴였다. 배추전까지야 먹어보았다. 그것도 부모님이 경북 상주로 몇 년 전 귀촌을 하게 되면서 먹어본 지역 음식이었다. 무전은 대구에서 주로 해 먹는다고 한다. 무를 동그랗게, 혹은 반달 모양으로 썰어서 부쳐내는 꽤나 간단해 보이는 메뉴였다.


그래, 이거라도 해보자. 무전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고, 시들해진 무에게 새로운 역할을 선사했다. 스위스에서 사는 무는 참 굵지가 않다. 가끔은 애호박보다도 두께가 튼실하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동그랗게, 혹은 반달로 썰자니 너무 크기가 작아져 버렸다. 그것은 즉, 전 부칠 때 뒤집을 것이 더욱 많아진다는 이야기. 그래서 나는 무를 어느 정도 길이로 나눈 뒤, 측면을 썰기 시작했다. 동그라미 대신 네모에 가까운 모양으로.


그리곤 부침가루와 밀가루를 섞은 그릇 하나, 계란을 풀어서 소금을 친 그릇 하나를 준비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궈지기를 기다리면서. 썰어낸 무 조각들은 부침가루와 밀가루 그릇으로 가서 온 몸에 가루를 묻히고는 계란 그릇으로 가서 계란 옷까지 입었다. 그리고는 달궈진 팬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사실 맛도 보장할 수 없었고, 무전 이건 꼭 해 먹어 봐야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진으로 본 무전은 너무 심심해 보였고, 굳이 돈 주고 사 먹어 보고 싶은 비주얼도 아니었다. 게다가 무 상태도 갈 때까지 간 마당에 무 본연의 맛 자체에 많은 것을 바랄 수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튀긴 음식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저, ‘튀기면 뭐든 맛있다.’는 진리를 굳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조각들이 노릇노릇하게 익어갔다. 기름과 만나 파르르르 계란 옷이 익어가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불이 너무 세지도, 그렇다고 너무 약하지도 않아 기름이 사방에 튀기지도 않고 적당한 속도로 무전이 익어갔다. 완벽한 토요일 오전의 속도였다. 괜스레 콧노래까지 나왔다. 그리고 전이 완성되었을 때에는 역시 튀김 가루와 계란  덕분에 꽤나 그럴싸해 보였다.


무전의 탄생


조금 긴 무 하나와 조금 짧은 무 하나가 그렇게 무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희끗하게 바람 든 부분이 너무 넓게 퍼지거나, 벌레가 파먹은 것 같은 부분은 빼고 전을 하니 둘이서 먹기 딱 알맞은 양이되었다. 적당히 간장을 찍어 먹으니, 생각보다 먹을 만했다.


아무래도 ‘무’로 만든 전이다 보니 아무리 전이라지만 조금 심심한 맛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불필요한 자극을 쏙 빼낸 맛이었다. 튀김 치고는 깔끔한 맛이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막걸리도 없이 전 한 종류만을 먹었는데도 젓가락을 놓기까지 물리거나 하지도 않았다.


일주일 동안 방치된 무로 인해 발견한 새로운 메뉴, 무전. 무생채로 만들어져 비빔밥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또 이렇게 정 반대의 온도인 뜨거움을 잔뜩 품게 된 무가 된 것이 새삼 대견스러웠다. 물론, 와, 이거 너무 맛있어서 여기저기 좀 알려야겠어! 라든지 다음에 무를 사면 무생채 반, 무전 반 이렇게 해 먹어야지!라는 생각까지 든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행여나 다음에도 나의 귀찮음으로 무가 방치되더라도 무를 버리지 않고 해결한 방법은 찾았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원래 하려던 게 아니더라도, 원래 하려던 것을 못하게 되더라도 괜찮다고 무전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실망할 것 없이, 토라질 것 없이 어찌 되었건 다른 방법이 늘 있다는 사실을 무전이 상기시켜주었다. 마지막 한 조각까지 무전을 꼭꼭 씹으며 마음이 푸근해지는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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