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마음이 많이 아팠다. 향수병일까?
괜찮은 날들과 전혀 괜찮지 않은 날들이 반복되었다. 괜찮은 날이면 한없이 좋다가도 또 금방 그 괜찮은 날들이 끝날 것 같아 슬퍼졌다. 그러면 무섭게도, 몇 시간 뒤면 다시 무거운 기운이 나를 뒤덮었다. 한없이 가라앉았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데, 그 안엔 빛이 하나도 없어서 컴컴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지루한 날들이 의미 없게 지나가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또 며칠 버티면 괜찮아졌다. 그저 묵묵히 일상을 살아내고 나면 만나는 어느 즐거운 날이었다. 그럼 또 동굴의 이미지는 잠시 덮어둔 채, 찬란한 날들을 즐기는 것이다. 호수도 아름답고, 구름은 또 어찌나 예쁜지. 참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구나 싶었다.
그날도 며칠간의 버팀이 지난 후였다.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 곁의 스탠드 불을 켰다. 침실에 드니가 따라 들어왔다. 옹골차게 침대 위로 뛰어 올라오더니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았다. 드니는 늘 하듯이 마음에 드는 자리에서 꾹꾹이를 하려고 자세를 잡고 있었다.
나는 그런 드니를 멍하니 바라보며 옆으로 돌아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동굴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에너지가 넘치는 날도 아니었다.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이 고였다. 눈을 한번 깜빡이자 눈물이 천천히 흘렀다.
그때였다. 꾹꾹이에 심취해 있던 드니가 내 얼굴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더니 흐르는 눈물을 핥는 것이었다. 눈물이 계속 흐르자 드니는 또 눈물을 핥았다. 고양이 혀의 돌기 때문에 얼굴 피부가 아플 정도가 되었다. 나는 문득 웃음이 나왔다.
“알았어, 드니야. 나 안 울게.”
드니는 내게 얼굴을 여전히 가까이 댄 채 또 눈물이 흐르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거봐! 나 안 울지?”
하며 내가 소리를 내며 웃자, 그제야 드니는 다시 편한 자리를 찾았다. 사실 고양이에게 집사의 눈물은 마치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방울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평소에도 부엌 싱크대나 욕조의 수도꼭지에 물방울이 맺혀 있을 때면 앞발을 가져다 대며 만지는 것을 몇 번 보았는데, 그런 것과 같은 이치였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든 어떠랴, 그것이 나에게 명백한 위로가 되어 주었으니까.
때로는 위로를 하려고 작정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듯이, 의도치 않은 작은 행동 혹은 당연한 습관이 위로를 건네주기도 하는 거니까.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드니가 주는 온기가 느껴졌다. 드니는 나의 다리에 등을 기댄 채였다. 눈물을 흘리다 말아서인지 눈은 부어 있지 않았다. 눈물 대신 웃음이 났다. 며칠 만에 느껴보는 활기찬 웃음이었다. 그 순간 동굴이 조금은 더 멀어졌다. 며칠 뒤면 어김없이 나타날 것이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니가 우리 집에 같이 살고 있다는 게 엄청난 힘이 되어주었다.
나는 드니가 너무 예뻐서 안아주고 싶었지만, 드니가 원하는 건 아침 사료였다. 나는 그저 드니의 머리에 뽀뽀만 재빨리 남기고 아침 사료를 챙겨주었다. 드니는 아침을 배불리 먹고는 쿨하게 돌아섰다. 마치 어제 날 위로해주던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었나 싶게 또 다른 모드로 변해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도 어제의 나와는 완벽히 다른 모드를 장착했으니까.
앞으로 또 나는 몇 번이나 작아질 것이고, 몇 번이나 허우적거릴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또 눈물이 흐를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엄청난 이유로 엉엉 소리를 내며 울지도 모르겠다. 동굴이 늘 예고 없이 찾아오듯 나 또한 나도 모르는 순간에 어둠 속을 헤맬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 버티고, 또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드니가 내게 남긴 위로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