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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Jan 04. 2023

마음의 근육

상주에서 서울로 떠나는 날 아침이 되었다. 믿기지 않았다. 이제 다시 스위스로 슬슬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다음에 올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 멀리 있다고 느껴졌는데, 시간은 언제나 가혹하리만치 성실하다.


엄마 아빠도 나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다. 하룻밤을 함께 자고 다음 날 상주로 내려가기로 한 거다. 부모님은 또 딸들 먹을 걸 챙기느라 분주했다. 떠나기 전에 마당의 진돗개 네 마리의 밥을 챙겨주는데, 개들이 내가 떠나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그리고 역시나, 옷을 챙겨 입고 아빠 차를 타기 전에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는데 개들이 평소와는 달랐다. 황진이와 황돌이는 붙잡을 수 없는 이별을 직감한 듯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백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제 집 뒤로 몸을 숨겼다. 백돌이만이 낑낑거리며 상황을 더욱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얘들이 너 다시 가는 거 아나 보다.”

나는 차 뒷좌석에 앉아 그저 차창 밖으로 멀어지는 백돌이의 '어디 가?' 하는 표정과 백진이의 삐죽 나온 코를 보았다. ‘마음의 근육’을 되뇌었다. 그러면 괜히 심장 주위에 근육이 붙는 것 같았다. 울고 싶을 때 마음의 근육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서울에 도착하여 점심은 언니가 시켜 준 짜장면과 햄버거를 먹었다. 크지 않은 거실에 네 식구가 가까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당분간은 또 이렇게 가족들과 식사를 못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또 ‘마음의 근육’을 여러 번 되새겨야 했다. 짜장면을 눈물에 비벼 먹을 순 없으니까.


엄마와 언니와 네 컷 짜리 사진을 찍기도 하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언니와 내가 좋아하는 동네의 훠궈집을 갔다. 부모님은 훠궈를 처음 먹어보는 거라고 했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저녁 먹기 전까지도 배가 불렀다. 그래도 이 집 훠궈를 또 당분간 못 먹겠지, 란 생각해 꾸역꾸역 열심히 먹었다.


식사 후에는 네 식구가 동네를 산책했다. 누가 더 높은지 늘 경쟁하는 빌딩 사이를 지나 작은 공원에 갔다. 밤이면 패딩을 입어야 하는 늦가을이었다. 게다가 그날은 바람도 참 많이 불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조금이라도 밖에서 시간을 함께 보냈다. 부른 배를 소화시키고, 나란히 걷기도 하고 하며, 함께 하는 (아마도) 마지막 밤을 그렇게 보냈다.



다음 날, 부모님이 상주로 다시 내려가시는 날이었다. 돌이켜 보니, 상주에서 보낸 시간이 참 길었다. 부모님이 귀촌하신 후 아마도 가장 오래 함께 붙어 있었던 시간일 테다. 거의 3-4주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으니까. 그래서인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이상했다. 이별은 자주 해도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익숙할 만해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는 그렇다.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었다. 메뉴는 된장찌개였다.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먹었던 엄마 밥도, 한국을 떠나기 전 먹는 마지막 엄마 밥도 된장찌개. 아마도, 별일이 없다면 마지막일 올해의 마지막 엄마 밥이었다. 나는 한 숟갈이라도 더 떠먹으려고 했다.


엄마아빠는 짐을 다 챙겼고,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었다. 가슴이 너무 먹먹했다. 에이, 그래도 금방 다시 한국에 돌아올 텐데, 웃으면서 인사해야지.라고 마음먹었지만 역시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주차장까지 부모님과 함께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부터 눈물이 쏟아질까 봐 ‘마음의 근육’을 읊조렸다.


“잘 다녀와, 건강하게!”

엄마 아빠가 그런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데, 나는 대답도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면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래서 괜히 엄마 아빠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엄한 주차장 벽만 쳐다보았다. 엄마와 살짝 포옹을 하고, 목을 가다듬은 채 겨우 말 한마디 뱉었다.

“조심히 가.”


차가 지상으로 올라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차가 완전히 주차장을 나간 후에야 나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마음의 근육을 아주 빠른 속도로 반복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근육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 방에 돌아와서 남은 눈물을 마저 쏟아내고 있을 때,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 가희야, 어제 매던 가방 앞지퍼에 용돈 하라고 넣었다. 이건 엄마가 주는 용돈ㅋ

부모님 용돈 챙겨드린지도 한참 전인데, 되려 엄마가 용돈 하라고 돈을 주고 간 것이다. 그것도 몰래. 내 가방에 찔러 넣은 채로. 봉투엔 엄마의 짧은 메모도 있었다. 이미 와르르 무너져 내린 마음의 근육이 함께 요동치며 눈물바다가 되었다. 일 년째 수입이 없는 딸이, 엄마는 걱정되셨나 보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고맙고, 미안한 거뿐만이 아니라, 지난 것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앞으로의 것들에 대해서도.


나는 그렇게 나의 서울 작은 방 안에서 눈물과 생각에 잠겼다. 마음의 근육은 제대로 생기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벌써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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