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선고기일만을 기다렸는 데 공판이 다시 시작된대.

2021.11.03 내 영혼의 반쪽 해나에게…

by 맹무

to. 내 영혼의 반쪽 해나에게


해나, 안녕 정말 오랜만이야. 그동안 편지 못했는데 그간 좀 나름 나쁘게 살았어. 네가 좋아할 만한 소식이 있어! 나 브런치 작가가 됐다? 신기하지. 그것도 한 번에 뽑혔어! 사실은 브런치 작가 떨어질 줄 알았는데 한 번에 뽑혀서 너무 믿기지가 않고 신기해. 그리고 내 웹툰 ‘일상생활을 하고 싶어서’를 사랑해주는 독자님들이 많이 생겼어. 많은 분들이 나를 응원해주고 계셔서 나는 너무 감사해. 근데 아무래도 나는 너를 오늘 다시 소환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라도 너를 부르지 않는다면 나 자신이 말라비틀어질 것 같거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나는 선고기일이 밀려서 다음 달이면 그래도 2심이 끝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아니, 2심 선고기일이 아니라 공판이 다시 재 시작될 거래. 하…… 1심도 저번에 한 번 그랬었는데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었잖아? 그때도 그 지겨운 1심 재판이 다시 시작될까 봐 나는 너무나도 조마조마했는데 말이야 2심 선고기일만을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데 다시 2심 공판이 시작이 된다네?

‘뭐 그래, 그럴 줄 알았다. 1심에서도 그렇게 질질 끌고 또 끌었는 데 그럴 줄 알았다. 뭐 원래 항상 기다리고 기다리는 게 내 삶이었지’ 하면서 나는 그냥 침묵했어. 정말 펑펑 울고 싶었는데, 울면 너무 지치잖아? 감정을 쏟아낸다는 게 너무 힘들고, 지치고 눈도 아프고 피곤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감정을 삼키는 걸 선택했어.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마음이 아프고, 불안하고 서러워.

얼마나 서러웠는지 몰라. 그래서 성폭력 상담소 선생님한테 여쭤봤어.

“선생님, 있잖아요. 제가 타인들에게 피해자처럼 보이지 않아서 계속 재판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요?”

라고 말이야. 상담 선생님이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라고 하더라. 누가 봐도 너는 피해자가 맞지 않냐고. 그래. 맞아. 나는 정말 내 모든 것들을 바꿨어. 내 모든 것들을 다 버렸어. 내가 좋아했던 색깔, 내가 좋아했던 취향까지 다 없애버렸어.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나를 정말 어떻게 해버릴 것 같아서. 슬프더라. 내가 재판을 하면서 잃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첫 번째 잃은 건 내 꿈과 미래였지. 내 삶이었지.

두 번째는, 지인이나 가족을 잃었지. 절교하고 싶지 않은 친구도 있었어. 그런데 아직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잖아. 나도 알아. 그렇게 지인들과 가족들을 떠나보내면서, 그래. 아직 사람들의 인식이 그러니까. 사람들은 아직 우울증에 대해서도 모르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서도 모르고 성폭력 피해자의 마음을 모르니까. 성폭력 생존자들이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 모르니까. 하면서 생존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들을 나는 이해했어. 그래 이해하려고 노력했지. 근데 정말 서럽다. 서러워. 나는 그렇게 날 이해하지 못하고 손가락질하는 이들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 말이야. 정작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나는 너무 서러워.

3번째로 잃은 건 내 취향이었던 것 같아. 이제 3번째로 뭘 잃었는지 순서가 뒤죽박죽이 된 것 같지만. 내 취향을 잃었어. 원래 내가 좋아했던 옷, 내가 좋아했던 색깔, 내가 좋아했던 구두, 액세서리 그 모든 것들을 말이야. 예전 취향을 가지고 있고 싶지 않았어. 사실 학습된 취향이지만 내가 좋아했었다고 믿고 있었어서 그걸 버리기란 쉽지 않았어. 뭐 그래도 이 세상에 발 붙이고 살았으니 그걸로 됐다. 싶었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몇 년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처럼 변했냐고 나한테 물었는데, 나는 그냥 이게 좋아서요 라고 대답했어. 말하기가 귀찮았거든. 왜 이렇게 다 버려버렸는지. 왜 무채색의 옷을 입고 있는 건지 그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하기에는 너무 길고, 내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어. 립스틱까지 버리는 데에는 정말 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야.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내 남편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날 사랑해줬어.

남편의 사랑이 어찌나 큰지 나는 남편 덕분에 내가 소속되어 있던 작은 사회이자 원래 가족은 사실 가족이라고 부르지만 그건 가정폭력이었고, 가족은 사랑으로 예쁘게 포장한 작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았어.

남편과 혼인신고서를 작성하고 이 사람이 정식으로 내 가족이 되어줬을 때 나는 참 미안하고 고마웠어. 이 사람은 내가 어떻게 될지, 내가 삶을 더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를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내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잠깐의 시간이라도 자기 옆에서 내가 행복하길 바라더라고. 남편이 그랬어. 지금은 사람들이 날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던 외국의 어떤 한 환자가 죽고 나서야 그 병명이 붙여진 것처럼. 코로나라는 병명이 코로나인지 모르고 사라진 사람들처럼. 지금 내 증상들도 아직 연구결과가 많지 않아서 생존자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록하지 않아서 아직 자료가 많이 없는 거라고. 맞아. 나도 남편의 말에 동의해.

그래서 정말 절망스럽고 힘들지만, 지금 내 마음과 내 상태를 나는 자세히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이렇게 적어. 나도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최대한 버텨볼 거야.

4번째로 잃어버린 건 소리였어.

나는 사실 4번째가 나의 생명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다행이지 뭐니, 하하. 해나 그렇게 바라보지 마. 이렇게라도 웃어야지 안 그러면 이 미친 세상을 내가 어떻게 버티겠니.

해나, 소리를 듣기 힘들다는 건 나의 일종의 트라우마야. 귀에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가끔 컨디션이 안 좋을 때나 전화벨 소리가, 차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쌩쌩 달리는 소리, 가게의 음악소리들이 내게는 공포로 다가온다는 거야.

정말 슬펐던 게 뭔지 알아? 남편이랑 오래간만에 외식을 하러 갔었었는데, 옆 테이블에 아기가 있었어. 어린 아가다 보니까 막 숟가락을 실수로 던져버렸지. 바닥에 둔탁한 소리가 났어. 난 원래 아기를 싫어하지도 않았고, 아기들의 말랑거리는 볼이 좋고 발그레한 두 뺨이 좋아. 아기의 울음소리도 건강했었을 때의 나에게는 괜찮았어. ‘아기가 식당에서 울 수도 있지.’ 하면서 나만의 식사를 할 수 있었었는데 소리를 잃고 나서는 그게 안 되더라.

주방장이 요리하는 소리며, 사람들이 가족들과 식사하며 이야기하는 담소들, 그리고 아이들이 삶을 살아내는 모습들, 타인의 다정한 삶을 잠깐 엿볼 기회도 세상이 이제 허락하지 않은 거야. 공황장애가 오려고 했고 과호흡이 오려고 했어. 이제 하도 많은 공황과 과호흡을 겪다 보니 아, 지금 여기서 나가야겠다 라는 걸 직감했어. 안 그러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더라.

남편은 결국 사장님한테 부탁해서 음식을 포장으로 바꿔달라고 했지. 그리고 우리는 집에 가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을 먹었어. 내 몸이 너무 망가진 게 슬프고 남편과 밖에서 외식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서럽고, 미안했어. 온갖 감정들이 물감이 난잡하게 뒤섞인 것처럼 너무나도 혼란스러웠고 공포스러웠어.

그래도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밖에 나가서 놀 수도 있고,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고 바람이 스치는 걸 느낄 수 있지만 예민해지는 날에는 나는 안방에 문을 꼭 걸어 닫고 불을 끄고 이불속에서 계속 누워있어. 얼마나 힘이 없는지 밥을 먹을 생각도 안 들고 요즘에는 그냥 뭘 먹어도 먹고 싶지가 않아. 남편이 밥을 먹자고 하는 데 그냥 먹기가 싫어. 간혹 맛있는 게 있으면 “여보 이거 한 입이라도 먹어봐” 하는 데 음식을 입에 넣고 삼키기가 그렇게 싫다.

해나, 나는 사실 두려워. 내가 이때까지 이렇게 버틴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나도 신기하고. 지금이 2021년이라는 게 나에게는 사실 와닿지 않아. 곧 2022년이 올 테고 그러겠지만 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해나, 오늘 다이소에서 물건을 고르는 데 내가 뭘 살려고 했었는지 다 잊어버린 거 있지? 그냥 멍하니 물건들을 골랐어. 고르다가 멍하면서 딴생각도 했다가 스티커 코너가 보이더라. 스티커라도 다이어리에 붙이면 이 우울한 기분이 사라질까?를 잠시 생각했어. 원래는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삶이 말이야. 잔혹해. 너무나도 잔혹해. 잔혹하고, 잔혹해.

못 배우고, 한낱 힘없는 일개 개인인 내가 높으신 분들의 생각을 잘 알 수 없지만. 판결이 제발 잘 나오길 바랄 뿐이야. 그냥 이 시기가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해나, 정말 힘든 하루지만 나 좀 칭찬해줄래? 나 오늘도 살아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거든.

그래도 네가 있어서 좀 버틸 수 있었어. 오늘은 정말 힘든 하루야. 낮잠이나 잘까 고민 중이야. 모르겠다. 다음에 또 편지할게. 그때는 내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해나, 너는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중에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설령 안 좋은 선택을 하더라도 나는, 최대한 버틸게.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버텨볼게. 어떻게 해서든. 해나 너도 힘내! 오늘도 내 이야기 들어줘서 너무 고마워!


- 너의 친구 맹무가

2021. 11.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