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4
성공의 기회냐 뼈저린 후회냐
금융권을 상징하는 업종을 뽑으라면 보험, 은행, 증권으로 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융감독원도 1999년 1월 2일 ‘금융 감독기구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을 합쳐서 만들어진 기관이다.
대부분의 은행과 증권사는 각 지역에 지점을 설치하고 직원을 채용한다. 직원은 상담창구에서 이뤄지는 금융소비자와의 상담을 통해 금융상품을 권유하고 가입시키는 등의 업무를 본다. 금융회사의 모집과 관리가 대부분의 직원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들은 노동자로 인정을 받아 노조의 설립이 가능하다. 읽는 분들이 보기에 당연한 얘기를 하는 것 일수도 있다. 그러나 보험회사와 대출회사부터는 말이 달라진다. 두 곳의 금융상품을 권유하고 모집하고 관리하는 대부분의 업무는 모집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보험모집인은 보험설계사로, 대출모집인은 대출상담사라는 호칭으로 불리지만 법률에서는 모집인으로 불린다. 두 업종의 성격에 따라 각각의 모집인들은 해당 금융회사의 금융상품을 소비자들에게 권유하고 가입시키지만 이들은 회사의 직원이 아니다, 보험회사나 대출회사와 위탁계약을 체결한 위촉직이다.
위촉이라는 것은 어떤 일에 대해 맡아달라고 부탁한다는 뜻인데 법률에서는 일정 사안에 대한 사무를 의뢰하는 것을 가리킨다. 대출회사나 보험회사로부터 모집과 관련한 업무를 맡아 진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들은 직원이 아니다. 그래서 급여를 받지 않고 수당을 받는다.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노조를 설립할 수도 없다. 결국 이익을 침해받았을 때 하소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본사에서 근무하는 내근직 직원들과 각 지점에 파견되어 모집인들을 관리하는 직원들만이 노동자의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모집인은 노동을 제공하고 있지만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특수고용직’이라는 명칭을 두고 있다. 모집인들이 상품모집과정에서 불법(리베이트)을 저지르고 불완전판매를 해도 회사들은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법과 불완전판매가 회사의 책임이 아니라면 피해는 소비자가 입게 된다.
대출상품은 상품의 구조상 이자율과 상환기간, 상환방식만을 조절하는 단순한 구조라서 문제될 일이 적지만 손해나 질병에 대한 보장을 해주는 보험상품의 경우 내용이 복잡하고 보장의 구성이 복잡해서 자칫 소비자의 의도와 다른 상품을 가입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중간에서 담당하는 모집인이 직원이 아닌 위촉직이다 보니 회사에서는 문제가 되었을 때 손쉽게 해촉하면 된다. 일부의 경우 회사가 상품을 가입한 소비자의 손실을 회사가 보전해주는 경우도 있다. 모든 보험모집인은 보험회사와의 위촉계약을 체결하면서 동시에 보증보험사에 일정한 보험료를 지불하고 보증보험을 가입해야한다. 위촉계약기간동안 모집인으로 인해 보험회사가 입게 된 손실은 모집인이 가입한 보증보험에 청구되어 보험회사는 모든 손실을 보전 받는다. 보증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고 지급사유를 만든 보험모집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게 된다. 결국 손실에 대한 보상책임은 노동자의 지위도 인정받지 못하는 모집인이 감당해야한다.
상황이 항상 발생하지는 않는다. 회사마다 지침과 상황이 달라 대응 정도에 차이도 있다. 변하지 않는 건 희생당하는 게 힘없는 모집인이라는 거다. 매출을 일으키기 위한 과다한 경쟁도 구조적인 문제다. 우연히 부동산중개사로 일하는 분을 알게 되었다. 한때 테헤란로에서 보험회사의 지점장으로 있던 분이다. 왜 관뒀냐는 질문의 답이 모든 것을 답한다. ‘내가 지점장전에 팀장으로 있으면서 15명을 관리했다. 13명이 수당으로 1년에 1억 이상을 받았다. 다른 두 명도 1억에 근접한 돈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만큼 키워낼 자신이 없다. 그럴 시장도 아니다. 잘해야 1~2명 가능하다. 나머지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어 그만뒀다.’ 억대연봉의 화려한 포장지 안에는 덫이 숨겨져 있음을 누군가는 말해줘야겠기에 단편적이나마 적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