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방식의 백인카르텔은 시작되었다.
또다른 카르텔 ESG
ESG 코로나 19사태에서도 경제계 뉴스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단어다.
2020년 초에 본격적으로 언론을 통해 언급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경제계는 물론 학계, 출판계까지 ESG에 대한 자료가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 단어가 코로나 19사태 이후
앞으로의 세계 경제 질서를 재정립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할 거 같다는 불안감이다.
그 근거는 거의 대부분의 언론이 ESG에 대해 찬사만 있을 뿐 비판이 없다는데 있다.
정부 정책도 이에 부합하도록 진행되고 있다.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칭이라는 걸 언론을 통해 누구나 알고 있다.
기업을 평가할 때 재무적 성과만 따졌던 과거와 달리
비재무적 부분까지 포함하겠다는 것은 나름 의미심장하다.
언론과 학계, 이를 접하는 시민마저도 동조한다.
ESG는 앞으로 수출입을 위한 업무부터
정부의 지원사업, 소비자의 구매선택, 자금유치를 위한 은행과의 거래나 투자유치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분야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중견기업 이하의 제조업인 경우라면 대기업과의 거래에서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다만,
이렇게 좋아 보이는 ESG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필자의 불안감은
아무런 제약과 부담 없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대기업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대기업은 이미 자본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고 기업의 체질을 변화시키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지출해도
회사 경영에는 큰 변화가 없다. 중소기업은 다르다.
실천하고 싶어도 거기에 필요한 경비를 부담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하다.
현실을 알기에 언론도 정부와 대기업의 중소기업 지원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정책자금 융자나 지원사업 가점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이는 중소기업을 위한다기보다 대기업의 공급망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데 목표가 있다.
대기업도 상생이라는 허울로 ESG에 대응하려는 중소기업에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규제가 강화될수록
대기업들의 독점 내지는 과점형태를 깰 기업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대기업들은 보이지 않는 함박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전개 과정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의 추세로 보았을 때 ESG는
전 세계적으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규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 뜻은 앞으로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는 지구상에서 나올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에 1인당국민소득이 67달러로 전 세계 109위였다.
IMF(국제통화기금)와 IBRD(세계은행)에 가입하는 1955년에 82달러로 106위로 최빈국이던 나라였다.
지난 60여 년간 세계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무서운 성장성을 보인 덕분에 지금은 1인당 GDP가 31,431달러(2019년, OECD기준)로 전 세계 30위 안에 포함될 정도의 국가가 되었다.
각종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성장성을 가진 나라가 다시 나타날 수 있는 확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계층이동 사다리’가 점점 사라지듯이
국가 간의 계층이동 사다리도 사라져가고 있어
아프리카 지역을 비롯한 후진국들의 성장에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가 ESG 카르텔을 버거워하지 않고
과실을 취할 정도의 체력이 되는 국가 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는 이 카르텔 안에서 더욱 성장할 것이고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부상할 것이라는 데에도 의심하지 않는다.
ESG에 대처하기 위해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정부와 미래의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정부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의 지원은 성과의 과실로 돌아올 것이다.
이 단맛을 소수의 대기업이나 이들의 추종세력만이 취하는 게 아니라
사회 곳곳에 있는 국가 구성원들도 맛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화 시기에 분배의 불평등으로 초래된 빈부의 격차를 거울삼아
현 정부가 또 다른 시야의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하는 이유다.